서울 
수원 
겨울 강
하얗게 지워지는 오후
실어증의 안개만 자욱한 빈 거리
바람은 불어와
맨살을 가른다.
어디에든 떠나도 가 닿지 않는
그대 작은 빈손에
하얀 내 달빛 담아
겨울을 녹이고 싶었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피에 젖은
승리자의 웃음만 떠 돈다.
붉게 물든 겨울 하늘
"오" 와 "열" 이 질서정연한 무덤은
증오와 미움으로
살아남은 자들에 던진
무거운 침묵의 교훈.
어디선가
그리운 이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深頌(심송) 안호원>
☞ 승자와 패자
삶의 기록에서 승리의 역사만이 깃발을 흔들어 댄다고 표현한다면 패자는 어떤 단어로 그 의미를 써야할까. 말을 잃어버린 “실어증의 안개만 자욱한 거리”는 패자들의 침묵이라는 아련함으로 절절하기에 패자는 곧 침묵이라고 시인은 썼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오와 열이 질서정연한 무덤”의 주인들은 “무거운 침묵의 교훈”만 있다고 되풀이 썼다. 패자는 시인에게 침묵이다.
침묵을 통한 교훈이란 게 무엇일까. 승리자는 시인의 언어처럼 꼭 피에 젖어 있어야만 하고 또 웃어야만 하는 어색하고 엇박자가 나는 괴물 같은 모습인가. 패자의 침묵이 그것을 웅변한다. 교훈이다. 피 묻은 승리를 영웅으로 옹립하는 이상한 군상들이 건재하는 한 저마다의 내가 자신도 언젠가는 승리자의 옷가지에 피를 묻힐 수 있음을 모른다면 교훈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내재된 뿌리 깊은 감정에 항상 두려움이 자리하는 것은 승리에 대한 무작정 추종과 패배에 대한 고통스러운 예단이 음율한 음율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분노, 슬픔, 복수심, 증오심, 이기심 등이 모두 두려움의 뿌리에서 커진 영혼을 갉아 먹는 악령의 줄기들이다. 그 줄기를 따라 마구 뻗어 나가는 가지들이 승리와 패배 그 영광과 두려움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니 시인은 그것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지만 딱히 갈 데는 없다. 그 순간 “어디선가 그리운 이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며 갈 곳을 정하고자 한다. 싸움과 갈등이 없는 그곳에는 그리운 이들이 목소리가 넘칠 듯 한데도 채 들리지 않는다. 현실의 냉정한 싸움터에서 발을 온전히 떼기 어려운 우리들이다.
<스카이데일리 문화팀=안호원 시와 시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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