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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트렌스젠더를 두려워 하랴

스카이데일리 칼럼

박선옥기자(sobahk@skyedaily.com)

기사입력 2020-02-14 00: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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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옥 부장 (국제부)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교라 하면 누구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를 떠올릴 것이다. 이 두 대학은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꼽히기도 한다. 옥스퍼드의 경우 1096년부터 교육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9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지녔고 케임브리지는 이보다는 100여년 뒤인 1209년에 설립되어 8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대학교의 800~900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 입학이 허용된 것은 불과 150여년 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오로지 남성만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여학생에게 입학이 허용된 것은 케임브리지의 경우 1869년이었고 옥스퍼드는 1878년에 여학생을 위한 칼리지가 설립됐다. 런던의 배드포드 칼리지는 이들 보다 조금 앞선 1849년 영국 최초로 여학생을 받아들였다. 민주주의의 발상지 영국의 사정이 그러했다.
 
20세기 세계문학을 대표하는 영국의 모더니즘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버지니아 울프는 런던에서 나고 자라면서 케임브리지를 다니던 두 오빠들과 그들의 친구들과 지적인 교류를 했던 세기의 지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품을 통해 여성에게 문이 활짝 열려있지 않은 옥스브리지 대학(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이름을 이용해 만든 가상의 대학)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여성이 남성중심적 사회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들어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옥스퍼드에서는 1927년 여학생 비율이 남학생의 25%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제한을 걸어뒀고 이 제한은 30년 후에야 폐지됐다. 지금은 세상이 변해서 여학생의 비율이 남학생 보다 높다는 통계가 나온다.
 
영국 대학을 기준으로 볼 때 여학생이 남학생과 동등한 자격을 얻고 이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는 150년이 걸린 셈이다. 이제 대학의 입학 자격에서 남녀불평등을 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3년 전, 새로운 변수가 발생했다. 트렌스젠더 여성의 입학허가가 논의에 오른 것이다. 2017년 10월 영국의 매체 가디언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내 여성 칼리지 중 하나에서 트렌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허가한다는 내용을 다뤘다.
 
케임브리지대학에는 여성만이 입학할 수 있는 칼리지가 세 개 있다. 그 중 하나인 ‘머레이 에드워즈 칼리지’에서 생물학적 성별을 떠나 정체성이 여성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학칙을 개정한다고 발표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도 출연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이 졸업한 이 칼리지는 이 같은 결정을 발표하면서 젠더란 이분법이 아니라는 생각에 동조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 혹은 남성 어느 쪽으로도 자신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젠더 다양성을 위한 활동가들은 이 대학의 결정에 대해 환영을 뜻을 표했으나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자대학이라는 정체성에 어긋나는 “비논리적” 결정이라며 비판을 가했다.
  
2년 반 전에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난 일을 떠올린 것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한 트랜스젠더 여성(MTF)이 원하던 여자대학에 합격했으나 결국 입학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숙명여대에 합격한 A씨는 지난해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법적인 절차를 거쳐 여성의 자격으로 숙명여대 법과대학 정시전형을 통해 최종 합격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A씨의 합격소식에 숙명여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A씨의 입학에 반대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일부는 ‘숙명여대 트랜스젠더남성 입학반대 TF팀’을 꾸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학교 측에 ‘생물학적 여성’만을 입학 허가하도록 학칙 개정을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A씨의 입학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숙명여대를 비롯한 몇몇 여대의 페미니즘 동아리 등 단체는 성명을 통해 “자신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누구든 여자들의 공간을 침범하고 기회를 빼앗아 갈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를 지지하는 편에서도 목소리를 냈다. 숙명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페이스북에 A씨를 환영한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힌 A씨의 결정을 지지하며, 노력을 통해 얻어낸 결실에 축하를 전한다”고 썼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워낙 크고 완강했던 탓인지 결국 A씨는 입학을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무서웠다”고 밝히며 이런 환경에서 입학을 하더라도 학교생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A씨에게 입학을 허가한 숙명여대 측은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A씨에게 입학을 허락한 이상 더 이상의 입장 표명이 필요없다고 판단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가 결정한 일을 두고 재학생과 졸업생들 사이에서 이견이 좁혀질 줄 모르고 한 예비신입생의 인생 행로가 좌우될 사안에 학교가 구경만 하고 있을 입장은 아닐 것이다.
 
머레이 에드워즈 칼리지가 트랜스젠더 여성 입학 허가 결정을 내렸을 때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이 대학의 데임 바버라 스토킹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대학은 모든 뛰어난 젊은 여성들에게 열린 공간이며, 그러므로 (이번 학칙 개정으로)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이들이 우리와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된 일은 법적인 면에서도, 우리 대학의 가치관 내에서도,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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