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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146>

조선사편수회역사는 모두 왜곡사(歪曲史)이다

우리는 환국 때부터 역사를 창조한 민족이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2-15 17:40:25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교수
우리나라 역사는 단군(檀君)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다. 단군조선 이전(檀君朝鮮以前)에 배달국(倍達國)이 있고 그 위에 환국(桓國)이 있었다. 우리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유라시아의 주인이었음은 이미 다 밝혔고 중국의 임해상 박사도 이를 뒷받침 했다.
 
홍콩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임해상(林惠詳) 박사는 오늘날 지구의 땅 40%가 유라시아인데 이 유라시아의 80%가 우리나라 영역이고 지나(支那;中國)는 아주 작은 영토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학식민사관자만이 아직도 왜곡역사를 우리 역사라 하고 있다. 이들은 지나(支那;中國)사서(史書)’에도 없는 우리영역을 한반도로 하고 있다.
 
참으로 못 말리는 인간들이다. 필자는 지나(支那;中國)의 동이전(東夷傳) 그 어디에도 우리영역이 한반도라고 한 기록을 찾지 못하였다. 이런 기록이 있다면 밝혀지기를 바란다. 도대체 언제까지 반민족적(反民族的)인 행태를 보이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나(支那;中國)18사는 사기(史記)’를 위시해서,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북제서(北齊書), 양서(梁書), 진서(陳書), 주서((周書), 수서(隨書), 위서(魏書), 북사(北史), 남사(南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구오대사(舊五代史), 신오대사(新五代史)이며, 그 어디에도 반도기록은 없다.
 
그런데 김일연(金一然)은 백제(百濟), 고구려(高句麗) 패망지역이 오월(吳越)과 제노(齊魯)지역으로 고구려, 백제가 남()으로 오월(吳越), ()으로 유연제노(幽然齊魯)를 다물(多勿)한 사실을 숨겼고 신채호(申采浩)는 이를 따랐는데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 기마민족(騎馬民族)은 고대부터 선진(先進)무기와 기동력으로 유라시아를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한 역사를 지울 수 없다. 우리민족의 역사는 일제가 왜곡한 역사같이 침략이나 받는 약소국가가 아니었다. 인류사상 가장 격렬한 민족투쟁의 역사였다.
 
우리는 12000년 이상의 역사에서 931회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불멸의 역사를 창조한 위대한 역사를 가진 민족임에도 광복된 지 73년이 지났는데 중국의 문헌도 제대로 연구도 않고 중국과 일본의 왜곡한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런 반민족적인 패악을 언제까지 하려는지! 최소한 지나(支那;中國) 18()25(),동이전(東夷傳)의 원전(原典)을 제대로 연구하고 난 후 말을 해줬으면 한다.
 
오늘은 자학식민사관(自虐植民史觀)을 탈피하고 12000년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우리 역사의 진실을 바탕으로 제대로 논하기를 바라며 특히 삼국시대역사 중 백제의 역사기사를 보며 이를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왜곡부분 일부나마 잘못됨을 밝히려 한다.
 
의자왕(義慈王) 전쟁터 명칭에서 본 백제(百濟)
 
우선 백제의 지역과 지명이 반도가 아니고 대륙임을 밝히고 가겠다. 의자왕이 웅진(熊津)은 태산(泰山)서쪽에 있고, 백제(百濟)의 한성(漢城)은 하북성(河北省)에 있었다.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은 현재까지도 웅진(熊津)이 충청도 공주(公州)지역으로 비정(比定)하고 있는데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말을 하라고 하고 싶다.
 
분명한 것은 역사기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한 예로 백제(百濟)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義慈王)이 전쟁터의 명칭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를 연대별로 보면 의자왕(義慈王) 2년에 하미후(下獼猴), 대야성(大耶城)에서 전투가 있었다. 의자왕 3년에는 항성(項城)이었다. 이 항성(項城)은 역사를 왜곡(歪曲)하며 그 지명(地名)도 몇 번이나 바뀐다. 항성(項城)은 당항성(唐項城;黨項城;常項城)으로 바꿔 놓았다.
 
또한 의자왕 7년의 전쟁터는 감물(甘勿)과 동잠(桐岑;桐城;岑山)이었고 그 이듬해인 의자왕 8년에는 요거성(腰車城)과 옥문곡(玉門谷)에서 전투했고, 9년에는 석토성(石吐城)에서 싸웠다. 15년에는 북악오함사(北岳烏含寺)에서 싸운 곳은 한반도가 아니다.
 
의자왕(義慈王) 16년의 침현(沉峴)과 기벌포(伎伐浦)의 전투와 19년의 독산(獨山), 동성(桐城), 잠산(岑山), 생초진(生草津)20년의 백석사(白石寺), 왕흥사(王興寺), 신구도(神丘道), 우이도(嵎夷道), 성산(城山), 덕물도(德物道), 고마미지(古馬彌未知), 평원(平原), 백강(白江), 탄현(炭峴)44개의 전투지명이 있는데 이곳은 모두 대륙이다.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의 역사무지도 분수가 있지 언제까지 백제가 한반도에 있다 하는가! 이들은 백제 공주(公州)의 백제는 요()의 동쪽 백제의 총독부(總督府)로 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백제의 왕릉은 하나도 발굴되지 않았다.
 
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이 어찌해서 지도와 지명도 조작하고 역사를 왜곡하는지 제대로 알고 기사를 써줬으면 한다.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제아무리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해도 진실은 숨길 수 없는 오늘의 사회이다.
 
굳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하려면 먼저 지나(支那;中國) 18()25()동이열전을 연구하고 난후 백제사(百濟史)를 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지나(支那;中國) 18사에 백제(百濟)18()25()동이열전에 한반도 있었다는 단 한 줄의 기록도 없다.
 
또한 지나(支那;中國) 25()동이전(東夷傳)에는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 가야(伽倻)와 왜()가 대륙에 있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당시의 자연 현상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미 필자는 이 사실을 밝혔다. 아직도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의 왜곡된 글을 볼 때마다 한심함과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도 한반도가 아닌 대륙의 역사이다. 모든 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은 우리삼국도 한반도 있었다고 하고 전쟁역사도 한반에 있는 양 각색하는데 똑바로 역사의 진실을 바로보고 백제사(百濟史)를 논하기를 바라는 바다.
 
대륙 지배한 역사를 욕되게 하지마라
 
일본 학자도 일반지식인도 우리나라 역사를 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역사가 대륙사인 것을 말한다. 필자가 가장 아끼는 후배 지식인도 우리의 장대한 역사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역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어찌해서 자기나라의 역사를 욕되게 하는지 유구무언(有口無言)의 경지(境地)이다.
 
우리역사연구원 오재성원장이 왜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 평생 역사를 가르쳐온 민족사 바로 찾기의장인 원로 P교수에게 우리나라 대륙사를 말하니 P교수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일본에 학술교류 일본에 간 그는 일본학자와의 대화에서 우리역사가 대륙사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이 원로교수는 일본에 가서 일본학자에게 ()가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 하니 일본학자는 책을 가지고와서 보여주며 우리역사가 대륙사인 것을 확인시켜 줬다. 이 정도로 자학식민사관(自虐植民史觀)들도 지나(支那;中國) 18(), 25()와 우리나라 삼국사 권46과 지나(支那;中國) 남제서 권58 원전만 봐도 바로 자신의 잘못됨 알 것이다.
 
지나(支那;中國)는 여러 차례 지명(地名)도 지도(地圖)도 동으로, 동으로 옮겨 왔다. 예컨대 요()는 태원(太原)지방에서 만주(滿洲)로 가져 왔다. ()는 고구려(高句麗) 요동성(遼東城)인데 좌권으로 되어 있다. 백두산경계비는 토문하(土門河);압록강이다.
 
산동성(山東省)에 웅진이 대산(大山)이고 강소성 가운데 해주(海州)와 동해(東海), 해주(海州)로 부른다. 구당서(舊唐書)945년 편찬되는데 신당서(新唐書)는 송()나라 때 서기1060년 다시 만든다. 만든 목적은 신라(新羅)를 밀어내기 위해서 만들었다.
 
신라의 역사도 진평왕(眞平王)26대라 하는데 북사(北史)에는 진평왕(眞平王)30대로 나오고 당서(唐書)에는 김진평(金眞平)이라고 나온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는 알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왕의 능()도 강소성(江蘇省) 오현 호구산에 있다.
 
신라역사(新羅歷史)가 서기전 57년에 건국한 것인가! 사로신라(斯盧新羅)는 서기전 194년에 건국해서 신라건국(新羅建國)은 삼국사연표(三國史年表)에 나타난 것보다 137년 앞서 건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철저히 연구해서 규명(糾明)해야 함에도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은 연구에는 관심이 없는 것은 문제이다.
 
()은 대륙의 신라(新羅)를 반도로 밀어내기위해 왜()를 일본(日本)열도로 가져가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는 서기전 53~500년간 대륙에 있었다. ()는 일본역사로만 봤으나 왜()는 우리역사이다. 72개의 제후국(諸侯國)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나(支那;中國)와 일본(日本)의 역사왜곡은 도를 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조작하는 지나(支那;中國)와 일본의 왜곡역사에서 탈피를 해야 한다.
 
계백(階伯)장군이 전사한 황산은 어디인가
 
우리역사가 대륙사인 것은 삼국시대 의자왕이 지나(支那;中國)와 싸운 지역(地域)에서 알 수 있다. 황산(黃山), 박성(薄城), 동명(東明), 금연(金漣), 덕안(德安), 웅진(熊津), 마한(馬韓), 주유성(周留城), 임존성(任存城), 갈령도(葛嶺道), 지라성(支羅城), 윤성(尹城), 대산(大山), 사정(沙井), 진현(眞峴城), 치청채(淄靑菜), 가림성(加林城)모두 대륙지명(大陸地名)이지 한반도(韓半島)가 아님을 외국사학자들도 똑같이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의자왕이 지나(支那;中國)44번 싸운 곳은 반도에 없다. 계백(階伯)장군이 싸운 곳도 대륙의 황산(黃山)이지 반도의 황산이 아니다.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싸운 곳도 대륙이다. 황산(黃山)도 대륙에 5개인데 한반도에 황산(黃山)은 하나일 뿐이다
 
대륙에는 곡부 황산, 전황진 황산, 간장진 황산, 곽리진 황산, 산동성(山東省)에도 황산이 있다. 반도에는 공주(公州)에 흐르는 물을 백마강이라 하고 있을 뿐이다. 계백(階伯)장군이 전사(戰死)한 황산(黃山)간장진황산(黃山)으로 추정(推定)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역사가 대륙(大陸)에서 활동한 우리선조들의 지명(地名)을 몇 개만을 명백히 하고 가려한다. 산동성(山東省)에 황산, 대산;태산;대산, 박산;薄城), 백마하, 백마, 치정채(淄靑菜)가 있고 강소성(江蘇省)에 해()가 있다. 하남성에 항성이 있다.
 
안휘성(安徽省)에 독산, 동성, 잠산, 강서성(江西省)에 덕안(德安)이 있고, 그리고 우이도(嵎夷道)는 우이(嵎夷)가 지역을 뜻하는데 우이(嵎夷)는 요동(遼東)의 지명(地名)이지 반도의 지명(地名)이 아니다. 어찌해서 백제(百濟) 패망 때의 지명이 많은가?
 
지나인(支那;中國人)들이 우리의 백제 지명이 좋아서 집중적으로 옮겼겠는가? 아니다. 바로 지도(地圖)와 지명(地名)이 동()으로 옮기기 전의 요동(遼東)의 동쪽에 백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모두 대륙이지 반도가 아닌데도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들은 언제까지 반도사관자로 남으려고 하는지! 수치임을 알아야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쓴 일본의 샤쿠오 슌조((釋尾春芿)도 단군조선역사를 2000년이나 잘라내어 단군에 대한 역사기록도 흠을 낸 그도 의자왕(義慈王)때 지명 이외의 삼국사기에 기록된 지명(地名)에 사자하(泗泚河);백마강(白馬江), 독산성(獨山城), 석문(石門)등의 지명이고 한수(漢水)가 하수(河水)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한족(漢族)의 기록에서도 백제(百濟)의 지명이 있는데 송서(宋書), 남서(南書), 요서(遼書)에 진성(晉城), 고평(高平)이 있다고 했다. 이 지명(地名)은 하북성, 산서성 등에 20여개의 지명(地名)이 오늘날 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이곳은 대륙인가?!
 
의자왕은 웅진(熊津)의 동쪽에 지라성(), 윤성, 대산, 사정(沙井)을 평정(平定)했다. 이는 김부식(金富軾)의 사서와 신구당서(新舊唐書)와 동일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래도 삼국시대의 우리광역이 한반도인가? 분명한 사실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가 모두 대륙에서 건국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수도(首都)도 반도에는 없었다. 삼국시대의 나라들이 모두 대륙에서 건국하고 대륙에서 패망했다.
 
고대 우리는 삼한(三韓)으로 분할통치를 하였는데 변한(弁韓)은 강회(江淮) 유역에 있었다(史記30, 漢書24, 舊唐書199, 唐書220). 마한(馬韓)은 고하수(古河水) 유역에 있었다(史記115, 後漢書85, 三國志30). 이곳이 반도가 아니다. 조선시대 요() 동쪽과 반도는 하나의 민족이었다.
 
역사시대인 배달국의 14대자오지 천황인 천자(天子), 치우(蚩尤)의 능과 치우(蚩尤)의 편비(扁髀) ()도 산동성 태산(泰山)의 서쪽, 동평(東平)과 거야()가 있었는데 이 지명의 주위에 동이국가인 백제가 있었다는 사실도 자학식민사관자(自虐植民史觀者)도 제대로 알기를 바라는 바다. 우리역사는 반도역사가 아닌 대륙역사인 것을 단언한다.
(以上은 최태영,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東夷歷史 集’. 右犂歷史 校勘十八史’, ‘百濟中國에 있었다’. 우리역사(東夷傳, 김부식 찬(),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九犂系 加羅史, ‘斯盧新羅史’. 윤진영 編集 三國史.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더 알씨랑 李進熙, ‘好太王碑’.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歷史’. 많은 書冊參照하고 本文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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