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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정복군주 근초고왕의 실상 (6)

정복군주 타이틀은 만들어진 역사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2-15 18:26:52

▲ 정재수 작가
정복군주 근초고왕의 실상 마지막이다. 지금까지 ‘근초고왕의 정복사업’으로 분류된 역사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렇다.
 
① 고구려 공격(고국원왕 사망), ② 마한연맹 복속, ③ 가야 진출, ④ 일본열도 왜국 지배, ⑤ 대륙 요서지방 경략 등이다. 이 중 근초고왕의실제 정복사업은 ①번이 유일하다. 나머지 ②번~⑤번은 부여백제 여구왕의 정복사업이다. ②번과 ③번은 <일본서기> 신공황후기의 ‘목라근자 삼한정벌’ 기록에, ④번은 칠지도의 현존과 <일본서기>의 칠지도 기록에 근거한다. 또한 ⑤번은 <양서>와 <자치통감>의 요서지방 백제군(요서군/진평군) 설치 기록에 근거한다.
 
근초고왕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근초고왕이 정복군주 타이틀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한반도 신흥강자로 급부상한 부여백제 때문이다. 대륙에서 한반도로 백가제해(百家濟海)한 부여기마족이 본격적으로 한반도 내의 지배력을 확장하면서 백제 근초고왕과 겹치게 된다. 특히 이들 부여기마족은 스스로를 ‘백제(百濟)’라 칭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는 그 존재마저 철저히 외면한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시기 일본과 중국 문헌에 간헐적으로 남아 있는 부여기마족의 실존 기록을 근초고왕 역사로 편입하는 누를 범하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해석이다.
 
근초고왕의 정복사업 외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이다. 모두 <삼국사기> 기록에 근거한다. 첫째는 신라와의 관계 개선이다. 근초고왕은 실질적인 치세가 시작되는 366년(근초고왕21년) 전격적으로 신라에 사신을 파견한다. 이는 단순히 신라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전적으로 부여백제를 견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373년 백제 독산성 성주가 성민 3백을 이끌고 신라로 망명하는데 당시 근초고왕은 신라 내물왕(17대)에게 제대로 항의조차 못한다. 신라를 우군으로 확보해야 하는 절실함 때문이다.
 
둘째는 동진과의 외교관계 수립이다. 372년과 373년 연거푸 동진에 사신을 파견한다. 백제가 중국왕조에 사신을 파견한 최초 사건이다. 이때는 근초고왕이 고구려 고국원왕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자마자 급히 한산(하북위례성) 천도를 단행한 직후이다. 사신 파견 역시 부여백제를 견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활동이다.
 
▲ 근초고왕 업적 정리 [출처=필자 제공]
 
셋째는 백제 역사서 <서기(書記)>의 편찬이다. 근초고왕의 명에 의해 박사 고흥(高興)이 편찬한 <서기>는 시조 온조(*비류)부터 근초고왕까지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록으로 추정된다. 현존하지는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수록된 근초고왕 이전 역사는 상당부분 <서기> 기록을 차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남당필사본 중에 <백제서기>가 있다. 백제 초기 역사를 시조 비류계 중심으로 재구성한 기록이다.
 
<백제서기>가 근초고왕의 <서기>라 단정할 수 없으나, 근초고왕이 시조 비류계 계승자를 천명한 점으로 보아<백제서기> 역시<서기>의 일부 기록일 개연성이 크다. 근초고왕 이후의 역사기록은 <일본서기>가 집중적으로 인용한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 등에 나온다. ‘백제삼서(百濟三書)’로 분류된 이들 사서는 백제 멸망 이후 유민에 의해 일본으로 방출되어 <일본서기>에 적극 반영된 백제역사 기록이다. 그래서 혹자는 <일본서기>를 백제 역사서로 이해하기도 한다.
 
정복군주 근초고왕, 만들어진 역사
 
근초고왕의 ‘정복군주’ 타이틀은 만들어진 역사이다. 방송매체가 사극과 역사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과대 포장하고, 언론출판이 관련기사와 역사 소설 등을 통해 뒷받침한다. 특히 무엇보다도 역사학계가 이를 방임(放任) 또는 방조(幇助)한 과오가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물론 정복군주로 검증된 고구려 광개토왕(19대)과 신라의 진흥왕(24대)과 같은 모델이 백제역사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근초고왕을 정복군주의 표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역사 왜곡이며 오류이다.
 
백제의 정복군주를 꼽는다면 단연코 동성왕(24대)이다. 동성왕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대륙 산동반도로 건너가 요서지방 백제군과 연합하여 북위(北魏)와의 두 차례(488년, 490년)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끈다. 동성왕은 대륙을 호령한 유일한 정복군주이다. 정복군주 근초고왕의 역사는 반드시 재해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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