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순국 100년, 다시 거울 앞에 선 ‘유관순 누나’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09-29 10:32:32

 
▲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애절했던 장례 상황, 미국 선교사 통해 새로 밝혀져
해방 이후 영웅화된 것 맞지만 강력한 상징성 때문
좌편향 역사학계의 폄훼로 한때 교과서에서 퇴출
국민 분노로 다시 주목받고 연구 많이 진척되는 계기
3·1운동의 표상으로 겨레와 함께 길이 기억될 것  
 
3·1운동 하면 떠오르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에 있는 자료들을 통해서다. 최근 간행된 ‘지네트 월터 이야기’(임연철 저, 밀알북스)에는 유관순의 장례에 대해 생생하고도 귀중한 증언이 실려 있다. 한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 지네트 월터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됐다.
 
‘유관순이 감옥에서 사망했다. 우리는 그녀의 시신을 학교로 운구해 왔고 학생들은 그녀를 위해 무명으로 된 옷을 준비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하룻밤 사이에 유관순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해 밤새 비단 옷감을 찾아내 비단으로 그녀의 시신을 다시 입혔다. 우리는 유관순의 학급 친구들만 참석해 조용히 장례 예배를 보기로 일본 당국의 허락을 받았다.’
 
책의 주인공인 지네트 월터는 1919년 3·1운동 때 이화학당 교장 대리를 맡았던 미국인 여성이다. 이화학당 학생인 유관순이 1920년 9월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할 때 소속 학교의 책임자였다. 이화학당은 일제 당국에게 유관순 시신의 인도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세계 여론에 호소하겠다고 강력히 항의한 끝에 순국 2주일 뒤인 10월12일에 겨우 학교로 옮겨올 수 있었다. 그의 증언은 당시 엄혹했던 상황과 함께 ‘진정한 영웅’이라는 주변의 높은 평가를 차분한 톤으로 전달해 준다. 비단옷에 싸여 동급생들의 억눌린 오열 속에서 마지막 길을 떠난 유관순의 최후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유관순의 생애는 일제 때는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고 해방 직후에도 ‘잊혀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식민지 사슬에서 막 풀려난 국민들의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고양하기 위해 ‘상징적 영웅’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1947년 사회 일각에서 이뤄지다가 유관순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18세 어린 나이의 순국 스토리는 너무도 안타깝고 애절했다. 3·1운동 1년 뒤 옥중에서 다시 만세 시위를 주도한 것도 대중적 감성을 자극했다. 그는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면 생각나는 유관순 누나’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은 너무 빈약하고 뒤죽박죽이어서 그의 업적 앞에서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탄생일은 총 50여 종이 발간된 전기(傳記)마다 제각각이었고, 순국 날짜도 달랐다. 순국 50주년을 맞아 치러졌던 남대문의 동상 제막식은 1970년 10월12일에 거행됐는데 실제로는 9월28일이어야 옳았다. 그가 1심 법원에서 언도받은 형량은 교과서에는 징역 7년으로 나와 있었으나 2007년에 이르러서야 사실은 5년이었음이 확인됐다. 과거 제작된 영정 사진 또한 순국 당시 18세의 나이보다 훨씬 들어보였다. 체계적인 조명이 이뤄지지 못했던 탓이 컸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중대 위기’가 2014년 발생했다. 그해 출간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4종에서 유관순이 아예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어이없기 짝이 없는 이 일의 전말은 어느 역사학 교수의 발언을 통해 밝혀졌다.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전부터 “북한에서는 유관순을 모른다”는 수상한 말이 나오더니 “유관순은 과대평가된 인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급기야 교과서에서 이름이 실종된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서 유관순을 뺀다는 건 교실에서 유관순을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고 결국 미래 세대들이 그를 모르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역사 교과서는 대학 교수와 교사들이 집필한다. 이들은 역사교육에서 갑(甲)이다. 자기들이 가르치고 싶은 것은 가르치고, 가르치기 싫은 것은 얼마든지 제외할 수 있다. 어린 세대의 마음은 흰 눈으로 가득 덮인 순수의 들판과도 같다. 이들에게 어떤 역사의식을 심어주느냐 하는 문제는 학생 당사자는 물론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 역사 교과서가 중요한 이유이고,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의 균형감각과 양식이 절실한 이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국내 역사학계에 좌(左)편향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학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성취에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북한의 절대 왕조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운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유관순에 대한 왜곡된 평가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사태는 ‘대한민국 건국’ ‘우파’ ‘반공’ ‘친일’ 같은 단어들에 대한 그들의 원초적인 반감에서 비롯됐다.
 
집필 관계자들은 해방 후 유관순을 부각시킨 것은 이화학당 내에 친일 전력을 가진 인사들이 유관순을 내세워 면죄부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전체 과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당시 구성된 유관순기념사업회에는 김구 이시영 이청천 등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유관순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게 된 것도 유관순의 조카인 유제한과 소설가 전영택 등 이화학당과 관련 없는 지식인들에 의해서였음이 밝혀졌다. 유관순 붐과 더불어 영화 ‘유관순’을 1948년, 1959년, 1966년 세 번에 걸쳐 제작한 윤봉춘 감독은 일제 말기 친일영화 제작을 거부하고 낙향해 버렸던 강직한 인물이다. ‘유관순 퇴출 사건’은 오히려 역사학계의 편협성을 공개적으로 홍보하는 자충수가 됐다.
 
국민들은 교과서 집필자들의 잘못된 시각에 분노했다. “유관순은 친일파들이 발굴한 영웅”이라고 말한 해당 교수는 사죄문을 발표해야 했다. 한국 교과서가 유관순을 외면한 것과는 달리 일본과 북한 교과서에도 유관순이 실려 있음이 확인됐다. 2018년 3월에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일제 식민통치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로 유관순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후 여러 노력들이 합쳐져 유관순의 새로운 사진이나 탄생일 및 순국일 등 생애의 여러 퍼즐들이 바르게 맞춰지고 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어제 28일은 유관순 순국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망각과 시련을 넘어서 우리 앞에 우뚝 선 그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3·1운동 때 유관순 이상으로 활약한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희생자가 7000여명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러나 유관순이 3·1운동과 동의어가 된 것은 불굴의 상징성 때문이다. 누가 아무리 폄하하더라도 이 점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위상은 영원할 것이다.

  • 좋아요
    3

  • 감동이예요
    0

  • 후속기사원해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다음글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이전글 : 증거에 대한 결핍
‘tvN STORY’의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불꽃미남’에 출연 중인 '차인표'의 빌딩이 있는 동네의 명사들
구지은
아워홈
문애란
G&M 글로벌문화재단
차인표
TKC PICTURES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스카이 사람들

more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죠”
방과 후 학교 선생님, 문화센터 강사 등 프리랜...

미세먼지 (2021-02-26 15:00 기준)

  • 서울
  •  
(양호 : 38)
  • 부산
  •  
(최고 : 15)
  • 대구
  •  
(좋음 : 21)
  • 인천
  •  
(좋음 : 26)
  • 광주
  •  
(좋음 : 29)
  • 대전
  •  
(보통 :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