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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蘇山)의 우리땅 간도대륙

고조선(단군조선)의 건국 기원(서기전 24세기) 불신론의 실체

우리 학계의 고조선(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문제에 대한 관점 분석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08 16:32:30

 
▲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우리 학계의 고조선(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문제에 대한 관점을 분석해보면, 대부분의 민족사학계는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부정하였으며, 다만 주류학계인 강단사학자들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았던 이병도, 신석호의 제자라는 위치의 영향에 있었기 때문에 스승의 이론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조선 시기에 일본학자들의 주장처럼 주체적 세력이 아닌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포함시킨 이들은 이병도, 이기백, 김철준, 이기동, 천관우, 김정배, 노태돈, 서영수, 이종욱, 송호정 등을 들 수 있으며, 단지 이병도는 기자조선 대신에 한씨조선으로, 노태돈은 후기고조선으로, 오강원은 고조선과 위만조선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고조선(단군조선)의 건국기년인 서기전 24세기를 부정하는 이는 이기백(서기전 12~10세기), 노태돈(서기전 12세기), 이종욱(서기전 15세기), 송호정(서기전 10세기), 오강원(서기전 4세기)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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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인성은 1979년 국사교과서(고등학교)의 연표와 1982년 국사교과서(고등학교)의 본문 및 연표에 고조선의 건국이 서기전 2333년을 서술한 것을 “황국사관에 따른 일본의 ‘국사’교육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고조선의 건국기원의 부정으로 노골적으로 비판하였다.
 
위에 언급한 대부분의 강단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영향을 받은 자들로, 고조선의 중심지를 대동강 유역의 평양으로 비정하였으며, 그들은 단군신화를 불신하는 관계로 초기 고조선의 기록조차 믿지 않는다. 대신에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우리 역사 인식 체계에 포함시켰다. 또한 B. C.12세기 전후로 고조선의 국가성립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노태돈은 일제식민주의 사학의 두 축은 ‘지정학적 숙명론’과 ‘정체성론’을 제기하면서 북쪽에는 위만조선과 한군현의 중국식민정권이고 남쪽에는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2백여 년간 지배한 것을 ‘지정학적 숙명성’에 기인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노태돈의 주장은 일제식민사학의 본질을 모르고 있다. 일제식민사학의 두 축은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다. 그가 예를 든 ‘지정학적 숙명론’은 식민사학의 ‘타율성론’을 말하는 것이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추진한 것은 ‘지정학적 숙명론’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와 영토를 압록강-두만강선 이내로 인위적으로 축소시킨 반도사관의 조작이었다.
 
더구나 노태돈은 서안평현을 압록강 하구에 비정한 것과, 요동군의 동편에 위치한 낙랑군이 평양일대라는 억측은 모두 근거 없는 오류일 뿐이다. 송호정은 고조선은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세 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B.C.10세기 이후부터 B.C.108년까지 존속한 역사이며, 『관자』의 기록을 따라 B.C.8~7세기 이후의 청동기문화 개화시기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북경과 가까운 요서지역에 조선이 위치했다는 내용은 없으며, 『전국책』에 따르면 조선이 연의 변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특히 『위략』의 기록에 근거하여 고조선의 칭왕 시기를 B.C.323~318년 사이로 보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 기술하고 있다.
 
더구나 송호정은 “고조선은 단군조선의 역사이다”라고 주장하는 자는 유사역사학자이며, 이들은 한사군의 위치를 만주에 비정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낙랑군은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 지역에 조선현을 두었기 때문에 대동강 유역이 유일하다고 주장하면서 근거로는 ‘점제현신사비’와 한(漢)시대 벽돌무덤 및 수천기의 출토된 낙랑유물을 들었다.
 
또한 송호정은 요임금을 전설상의 인물로 보고 있으며, 요임금이 즉위한 시기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단군기원은 우리가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서 인식해왔음을 알려줄 뿐이며, 그 연대가 역사적 사실성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더구나 송호정은 “단군은 한민족의 조산이 아니다”고 강변하면서 임시정부시기에 단군교와 대종교에서 민족 시조신으로 단군을 내세우면서 본격화되어 부족국가의 대표로서 정치적 군장이자 제사장인 단군이 어느 순간 ‘단군할아버지’로 다가왔다고 서술하고 있다.
 
송호정이 주장하고 있는 위의 서술들을 분석해보면, 단군을 정치적 군장인 제사장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군 할아버지’로 인식하고 있는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송호정의 주장은 양 편을 오가며 “단군은 한민족의 조산이 아니다”라는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이 같은 논증 화법은 이병도와 노태돈의 저서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수법이다. 실제로 그는 단군의 기원에 대해서 송(宋) 시기의 학자 소강절(邵康節) 요(堯)의 개국 시기를 서기전 2357년으로 추정한 적이 있으며, 이 추정을 사마광이 『자치통감』에서 인용하기도 했다고 서술하였다.
 
그리고 서거정 등이 저술한 『동국통감』이 서기전 2357년이라는 연대를 받아들여 서기전 2357년보다 25년 후인 서기전 2333년에 단군이 건국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고 하였으며, 서기전 2333년은 『동국통감』에서만 추정해본 것이고 구체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단군 건국 연대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결국 송호정의 결론은 송(宋) 시기의 학자 소강절(邵康節)의 주장과 사마광의 『자치통감』 주장 및 서거정 등이 저술한 『동국통감』 기록도 부정하고 오직 자신만의 주장이 옳다는 이병도와 노태돈식 논증 방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강절(邵康節), 사마광, 서거정 등이 분석한 요(堯)의 즉위 시기가 서기전 2357년임이 틀림이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즉 청동기 명문(銘文)에 근거하여 작성한 김재섭의 ‘고조선기년표’에 의해 요(堯)의 즉위년이 서기전 2357년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송호정이 주장하는 위의 논리전개 과정에서 마치 임시정부시기에 일본식민사학들이 주장한 단군을 부정하기 위해 ‘단군신화론’을 제기한 듯 한 논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송호정이 주장하는 고조선의 등장시기를 청동기 문화가 개화한 서기전 8-7세기 이후이며, ‘고조선사’는 서기전 10세기 이후 서기전 108년까지의 역사를 말한다고 하면서 서기전 8~7세기에 살았던 ‘관중“의 후대 사람이 저술한 것으로 보이는 『管子』와 유향(劉向)이 『전국책』을 근거로 들고 있다.
 
노태돈도 고조선의 등장시기를 서술할 때 『管子』와 『전국책』을 근거로 들고 있는 점도 송호정과 같은데, 이들은 ‘조선(朝鮮)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산해경』의 기록을 불신해버린다는 점이다. 더구나 『산해경』은 서기전 24세기의 오제식에 왕을 역임했던 우(禹)와 백익(伯益)이 저술한 것이라고 전한(前漢)의 유흠(劉歆)이 언급한 이후 왕충, 조엽, 곽박 등이 인정하였으며, 8명의 학자들이 주(注)와 소(疏) 및 교감(校勘) 했던 자료이다.
 
노태돈과 송호정이 전한(前漢)의 저명한 학자들이 인정한 서기전 24세기에 저술된 『산해경』을 불신하는 저의가 자신들이 주장하는 ‘고조선 초기시기 부정론’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송(宋)의 나필(羅泌,1165~1172)은 그의 저서인 노사(路史)에서 『산해경』 안의 「海內經」을 토대로 복희부터 하우까지의 역사를 복원하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나평(羅苹)은 『산해경』의 「海內經」을 「朝鮮記」로 주석을 달았으며, 삼황오제(三皇五帝)시기를 「朝鮮記」로 서술한 역대 학자는 나평(羅苹) 밖에 없다.
 
이와 같이 송(宋)의 나필(羅泌)과 나평(羅苹) 부자는 『산해경』을 연구하여 「海內經」이 바로 朝鮮의 역사를 기술한 「朝鮮記」 임을 분명히 밝혔는데도 노태돈이 『산해경』의 기록을 어느 한 시기에 쓰여진 것이 아닌 춘추말기부터 전한(前漢)대에 걸쳐 여러 시기에 여러 곳에서 작성된 기사를 모은 것이라고 왜곡시켰다. 노태돈이 이처럼 『산해경』을 왜곡·폄하시킨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고조선(단군조선)의 실체가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며, 이병도 이후 내세웠던 식민사학자인 자신들의 주장들이 모두 허구임이 밝혀지기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태돈의 『산해경』을 왜곡시킨 이후 ‘朝鮮’의 명칭이 최초로 언급한 『산해경』의 연구를 한 학자의 출현은 김재섭 선생 이후 나타나지 않았다.
 
노태돈의 제자인 송호정도 거의 이병도와 노태돈의 이론을 계승하고 있다. 송호정의 ‘낙랑군의 평양설’ 등 주요 이론들도 일제식민사관인 반도사관류의 이론과 상통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제식민사학자들은 낙랑군의 유적·유물을 조작하여, 대동강 평야일대가 낙랑군이 420년(서기전 108~313년) 동안 존속하였음을 입증하려고 하였지만 유적·유물의 조작설이 밝혀진지 오래되었다, 용강군에서 발굴한 ‘점제현신사비’는 중국 하북성 옥전현 서무산(徐無山)에서 밀반출되었음이 입증되었다.
 
송호정처럼 일제식민사관에 깊이 경도된 자는 명백한 유적·유물의 조작임이 밝혀졌는데도 이를 긍정하지 않으려는 강단사학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또한 송호정은 종족의 분포나 문화권의 범위에 대하여 정치적 영역으로의 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비파형동검문화’ 분포지역이 고조선의 영토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하며, 요동을 넘어 요서지역에 고조선의 세력권을 설정하는 것은 현재의 문헌 및 고고자료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조인성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한 무제가 한사군의 핵심은 낙랑군인데 그 치소인 조선현이 평양에 위치하여, 313년 미천왕 때 퇴출되기까지 420여년 존속하였다는 것이 강단사학계의 통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주장이 식민사학의 견해가 아니라면서 그 근거로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낙랑군을 평양에 비정한 안정복, 유득공, 정약용, 한진서 등의 조선후기 실학자들을 들고 있다.
 
이와 같이 조인성은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내로 비정한 한백겸, 안정복, 유등공, 정약용 등을 열거하여 강단사학계의 통설이 식민사학계의 학설이 아니라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조선후기의 사대주의가 심화되고 소중화(小中華)이 생겨나면서 단군은 부정되고 기자조선이 우리 역사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자리 잡기 시작했던 시기의 인물들이다. 『동사강목』을 지은 안정복은 기자(箕子)를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보았다.
 
또한 강단사학계의 통설의 근거는 실학자들 이래의 문헌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고 하였다. 위의 정인성처럼 평양 일대에 낙랑군이 420년 동안 존속했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 이는 오영찬과 김병준이 있다.
 
오강원은 위만조선이 평양에 위치하였으며, 처음 준왕 때는 고조선의 북쪽 변경지대인 압록강 ~ 청천강 사이 지역에 있다가 준왕을 축출하고 위만조선을 세웠다. 그리고 B. C.5~4세기 이전 고조선 후대의 중심지를 요하 유역과 요동 지역인 심양과 대련 일대가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그 근거로 전기 비파형동검문화의 주요 분포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병도, 노태돈, 송호정은 모두 사제지간이며, 오강원은 노태돈의 제자다. 공통점은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를 대동강 유역에 비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강단사학계에선 홍산 문화와 고조선(단군조선)과의 관련성을 수긍하려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조선과 홍산 문화의 시간적 공백이 크고 다른 하나는 연구자마다 고조선의 중심지에 대한 인식이 엇갈리고, 그에 따라 고조선의 물질문화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강단사학계는 고조선의 출현을 춘추시기 무렵인 서기전 9세기 이후로 비정하고 있다. 홍산 문화의 소멸은 서기전 3000년경이니 고조선과의 관련성은 희박하기 마련이다. 강단사학계는 고조선의 건국시기인 서기전 24세기마저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산 문화는 5천여 년 전의 역사적 사실이다. 이보다 더 앞선 문화인 흥륭와문화(7천년~8천년)와 조보구문화(6천2백년~6천8백년)가 홍산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고조선(단국조선) 초기 건국 기원을 부정하고 서기전 10세기 이후를 고조선의 실제 활동시기로 보는 식민사학자 노태돈, 송호정 등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 학계의 고조선과 연계하여 진행하려는 홍산문화 연구는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노태돈, 송호정은 있지도 않는 허구의 ‘기자조선’ 신봉자들이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최초의 건국은 ‘기자조선’이라고 우기는 ‘고조선(단국조선) 공정’에 도움이 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이들은 사후 어떤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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