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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199>

지나(支那) 역사는 어디까지 진실인가

문헌에 나타난 이면 제대로 보고 말을 해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10 13:00:38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나(支那)와 일본의 역사를 고찰할 때 문면(文面) 그대로 믿고 쓰면 이면(裏面)에 숨어 있는 진실을 왜곡하게 된다. 거의가 왜곡된 허구가 많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사서가 사실을 사실대로 쓰여 있지 않은 것이 역사를 연구하다보면 나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隨)나라의 경우를 봐도 지나와 일본의 사서(史書)는 모두 수(隨)가 지나 대륙을 통일하고 고구려를 침범했다고 하고 있으나 이는 모두가 허구라는 것이다. 수(隨)시대는 서기 581년~618년)까지를 말하는데 이때 중원대륙에는 우리나라 삼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서들은 온통 허구 맹랑한 기록으로 모든 사람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런 허구의 말을 하기 때문에 지나의 역사는 5%도 진실이 아니다고 역사를 가르치는 양심적인 교사도 말을 했는데 이를 감옥에 쳐넣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우리 역사를 가지고 우리가 지나의 속국이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말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항의나 정정을 하도록 말하는 자가 없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지금 교과서에 대동강에다 단동(丹東)이라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항변도 한 번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우리가 언제 지나에 속국이 되었으며 된 적이 있는가. 지나 역사를 검토해보면 우리가 지나를 지배했지, 지나가 우리를 지배한 적이 있는가. 항변 한 번 못하는 우리 학계 및 국민도 그대로 보고 있으려니 기가 차서 붓을 들게 된다. 
 
지나는 서기전 770년 서방의 견융(犬戎)의 압박을 받아 지금까지의 수도 호경(鎬京)으로부터 낙읍(洛邑)에 옮겼다 이때부터 동주(東周)시대라 말한다. 이 때 대륙을 지배한 예맥((銳麥;濊貊)을 흉노(匈奴)라고 호칭하는데 그들의 말하는 흉노는 융족(戎族), 이족(夷族), 적족(狄族), 호족(胡族)을 총칭해 흉노(匈奴)라 하고 있는 것이다.  
 
강희자전(康熙字典)에 의하면 이(夷)는 동방(東方), 명(明), 대(大), 안(安), 열(悅)을 말하는 것이고, 융(戎)은 처음 서방(西方), 대(大), 과(戈), 극(戟)을 말한다. 적(狄)은 북방(北方), 장대(壯大), 유력(有力)을 말한 것이며, 호(胡)는 동제(東齊)와 진(秦)나라와 진(晋)나라 때에 큰 것을 만호(鏝胡)라고 불렀음으로 인해 생겨난 말이다. 
 
오늘은 수(隨)가 중원대륙을 통일했다고 하나 통일하지 않은 것을 살펴보려 한다.
 
수(隨)는 중원대륙을 통일한적 없다. 이는 왜곡일 뿐이다
 
수(隨)가 건국한 때는 서기 581년이다. 이때는 우리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라(加羅;가야(伽倻), 왜(倭)등 중원대륙에 병립(竝立)해 있어서 이런 허구는 용납이 안된다. 따라서 수(隨)가 대륙을 통일했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수(隨)가 대륙을 통일한 양 기록하고 있다. 581년 수(隨)를 건국한 양견(楊堅;541~604)은 북주(北周)의 고급장교이었다. 북주는 국가는 원래 탁발부족(拓跋部族)이 세운 북위(北魏)의 후예이며 양견(楊堅)은 기마민족인 탁발족(拓跋族)이었다.
 
양견은 북방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돌궐(突厥)을 공격해 누르고, 587년에는 호북(湖北)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온 후량(後粱)을 멸하고 또 588년 10월 52만으로 진(陳)을 공격해 적10만을 간단히 격파해서 오호란(五胡亂)이래 280년 만에 이 지역을 통합하였는데 대륙전체가 아니라 섬서성, 감숫성, 사천성 등지를 병합한 것이었다.
 
이를 가지고 대륙을 통일했다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지나와 일본은 수(隨)가 대륙을 통일했다고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이때 북주(北周)의 정제(靜帝579~580년 재위)는 양견(楊堅)에게 제위를 물려주자 양견(楊堅)은 연호를 개황(開皇)으로 하고 국호를 수(隨)로 해 581년 문제(文帝)가 된다. 
 
문제(文帝)의 양견(楊堅)은 수(隨)를 건국하자 지금까지의 중앙관제와 지방제도를 대폭으로 개혁함과 함께 새로운 영역이 된 영토에 많은 역원을 파견하는 필요상 [과거제도]를 열어 중앙에 있어서 관리등용시험을 행해 그 합격자를 지방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604년에 식자(息子) 양광(楊廣)이 제2대 황제;양제(煬帝;569~618년)가 되었다. 이 양제(煬帝)는 부(父)인 문제(文帝)를 604년에 죽이고 내치외교의 면에서 적극책을 취하기 시작해 국도(國都) 장안으로부터 황하에 들어가기 위한 운하 광통거(廣通渠)를 만들고 황하로부터 북경방면에 이르는 영제거(永濟渠) 완성 등 경제발전을 기여했다. 
 
그런데 북주(北周)는 요동반도로 부터 만주 남부까지의 영역으로 하고 있었는데 북변에 접하고 있는 것이 고구려와 오래 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북주를 양견(楊堅)이 찬탈한 것으로 고구려는 강한 적대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수(隨)가 영토로 하려는 요서지방에 고구려 군세(軍勢)를 침입시켰기 때문에 수(隨)는 체면상으로도 고구려를 정벌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30만 대군으로 원정했으나 수서(隨書)에 의하면 고구려군의 기마전법(騎馬戰法)에 대해 수군(隨軍)은 보병전법으로 참패했다. 10명중 8~9명이 사망해서 돌아오지 못했다. 
 
수양제는 동양의 패자(覇者) 고구려를 넘지 못해 망한다
 
양제(煬帝)는 612년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또 다시 고구려에 원정군을 보낸다. 원정의 진용을 보면, 해륙으로 113만인, 수송부대로서 200만인을 구성하는 대 부대였다. 그러나 고구려 군에 참패당해 10명 중 8~9인이 사망하는 참담한 모습으로 철퇴했다.  
 
수(隨)나라는 그 이듬해인 613년에도 원정군을 보냈으나 사기(士氣)가 높은 고구려 군에 격퇴되고 만다. 여기서 수(隨)는 패전 이유를 중신(重臣)인 양현감(楊玄感)에 의한 내란(內亂)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하나 이 반란은 3개월 만에 진압됐다. 
 
양제는 614년에도 고구려 원정을 강행하나 이도 실패해 수제국(隨帝國)은 고구려 원정으로 패망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고구려 원정에 모든 것을 건 수(隨)의 30년간 나라의 상황은 크게 변한다. 
 
그것은 동돌궐(東突厥)이 수군(隨軍)이 고구려를 여러번 원정했으나 패(敗)하는 것을 보고서 지금까지 수(隨)와 585년 돌궐(突厥)이 화의(和議)를 맺고 있었으나 이를 깨고 반기(反旗)를 들어서 수(隨)의 북변국경에 침입해 왔던 것이다. 
 
양제는 바로 대군을 이끌고 결전에 임했으나 오히려 역(逆)으로 돌궐군에게 포위되어 부하 이세민(李世民;후에 당태종)에 의해 구해지는 상황이었다. 위험을 느낀 양제는 616년 장안(長安)을 버리고 남쪽에 있는 강도(江都;楊州)로 향했다.  
 
그러나 양현감(楊玄感)의 반란 발생 이래 반란은 전국으로 번져 그 수는 200곳을 넘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군웅(軍雄) 중에 한사람이 태원(太原)에 있는 이연(李淵;565~635)으로서 그는 그 식자(息子) 이세민(李世民)과 함께 617년 진양(晋陽)에서 병(兵)을 일으켜 바로 장안(長安)에 입성해서 이곳을 근거로 했다.  
 
양제는 618년 그 비(妃)와 자식들과 함께 호위병사(護衛兵士)에 의해서 살해되어 수(隨)는 겨우 30년 만에 멸망하게 되었다. 수양제(隋煬帝)의 죽음은 패전책임으로 죽임을 당한 그 아들이 수양제를 죽였는데 그는 우문수 장군의 아들 우문화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연(李淵), 친자(親子)가 당(唐)을 건국하기까지의 10년과 건국 후의 10년간은 각지에서 전란이 그치지 않고 기근도 연속하는 상태였다. 그 위에 당(唐)의 2대 황제가 된 이세민(李世民);(太宗)시대에 겨우 전란이 끝나게 되었다.  
  
그 당시(서기626년) 지나의 인구는 1650만명으로 20년 전의 3분의1로 격감한 것이었다. 이 인구 격감은 당군(唐軍)이 수군(隨軍)을 각지에서 살해한 것과 수군(隨軍)이 세운 농(籠)에 있었던 성시(城市)를 탈환한 때, 성내로 도망해온 일반시민을 학살한 숫자의 합계다. (以上은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125~141面 參照. 引用).
 
수제국(隨帝國)의 멸망과 당(唐)의 통일 전후 20년간에 3000만명이나 살육(殺戮)되었다는 계산이 된다. 이러한 인간 도륙(屠戮)은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만행이다. 
 
글을 맺으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隨)나라가 중원(中原) 대륙을 통일했다고 역사를 기록 하고 있으나 다시 단언컨대 수(隨)나라가 대륙을 통일한 적이 없다. 부풀려 말하는 지나의 역사 기록은 거의가 붓끝에서 만들어지는 허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민족이 한족(漢族) 지배를 받은 적이 없고, 우리가 대륙을 지한 것은 환국시대부터 삼국시대도 지배한 것을 숨길 수 없다. 지나와 일본은 우리역사를 말살하며 우리 역사가 기자조선부터라고 왜곡도 하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환국시대부터 유라시아를 지배했고,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반도에 없었다. 고대사도 예맥조선이 동주(東周)시대부터 한족(漢族)을 정벌, 정복, 지배하고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도 예맥조선의 지배하에 있었음을 지나 역사에 판명되고 있다.  
 
지나와 일본은 예맥조선도 다 숨기고 낙랑조선도 덮어버렸으나 예맥조선은 기자조선 위만조선보다 먼저 건설했고 예맥조선이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을 지배한 사실이 드러나고 진(秦)을 예맥과 남월이 타도했음에도 이를 왜곡해서 숨긴다.
 
또한 낙랑조선은 서기전1237년~32년까지 남만주와 반도에 엄연히 존재한 나라였으며 한서(漢書)권28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나라 역사다. 이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樂浪公主)의 애틋한 사랑”으로 각색하나 실제 있었던 고대 우리민족이 세운 나라다.  
 
완전히 왜곡된 역사만 배우고 잘못 알고 있는 우리 역사를 이제는 바로 알고 가야 한다. 사실 지나의 수나라는 지나 역사상 특기할 강국으로 동양의 패자(覇者)이나 이 패자를 이긴 고구려는 동양의 제패자(制覇者)임을 자각했음은 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 符都誌의 실상-’. 한동억, 인류시원의 역사이야기. 유우찬 ‘한국사의 쟁점’.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대야발 원저 ‘단기고사’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황순종, ‘임나일본부는 없었다.’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고대사’.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권진규 ‘조선사’.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이강민 「대한국고대사」.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井上 淸, ‘日本の歷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石井進外,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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