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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00>

은(殷),주(周)도 지나(支那)역사 아니다

바른 역사인식 하고 지나 허구역사 바로잡아야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17 14:10:43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조선조 때 성리학(性理學)에 심취되어 있어서인지 우리의 역사와 문화보다 지나(支那)역사서나 논어(論語)를 위시해서 사서오경(四書五經), 두보(杜甫)나 이백(李白)을 대표하는 한시(漢詩), 서유기(西遊記), 수호전(水滸傳),등에 세련돼 지나의 역사왜곡이 고대부터 이어진 것을 거의 모르는 실정이다. 
 
4300여년 밖에 아니 되는 지나의 역사가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역사를 가진 그들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우리 역사를 폄하하는데 우리는 그들의 역사가 5%도 안되는 역사임을 바로 인식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지나가 어떠한 역사를 가진 나라인가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있지도 않은 역사를 꾸미고 미화해 제멋대로 구축한 허망(虛妄)의 지나 역사 실상(實像)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앞날을 그르치게됨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필자는 역사를 연구하며 지나라는 나라의 역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잘못되고 있음을 보면서 지나의 잘못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바로 잡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학자도 국민도 이런 사실을 인식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주변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침략과 말살(抹殺), 지나의 국내에 있어서의 왕조교체(王朝交替) 때마다 수천만 명 단위로 반복된 대학살의 참으로 전율(戰慄)의 지나 4300년사(年史)임에 볼 때 경악을 금치 못한다.
 
지나가 수천 년의 역사에 있어서 어떻게 침략하고 지배했으며, 약탈, 학살과, 차별, 학대를 반복했는가를 제대로 보고 고쳐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는 자국의 어린이에게는 이러한 사실을 가르치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고 왜곡만 한다. 
 
가해자로서의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민족을 대량으로 학살, 생매장, 노예로서 매매 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아예 타민족을 절멸(絶滅)시키는 만행으로 대집단의 민족도 무수히 절멸시키고 있으면서 역사왜곡 허구성은 고쳐지지 않고 더 심하다. 
 
대만(臺灣)의 평론가이며 역사가인 백양(柏楊)은 지나 4000년역사와 문화에 관해서 '지나(支那)역사는 정말로 박해의 역사이고, 지나 문화는 인간에 대한 존엄(尊嚴)과 포용력(包容力)이 결여(缺如)되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오늘은 지나가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침략과 말살, 지나 국내에서  왕조교체 때마다 수천만 명단위로 반복된 대학살의 지나 4000년사(支那4000年史)도 모두 왜곡사임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도 허구(虛構)투성이다
 
지나 한시대(漢時代)의 사마천(司馬遷)은 은(殷)나라로부터 한(漢)나라까지의 그 역사를 [사기(史記)]로서 정리하나 그는 그 시대의 권력자에 아부하고 거짓을 쓰고 때로는 거꾸로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다고 하나 지나는 이민족의 사서(史書)를 거의 없앴기에 이민족 국가의 바른 역사를 쓸 수가 없는 실정이다. 
 
또한 이민족 국가의 사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료가 지나에만 있고 주변 이민족 측에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를 기대하기 어렵고 오로지 지나 왕조의 흐름을 중심으로 사마천도 쓰고 있어서 왜곡 역사라는 것이다.
 
즉, 가해자의 자료로부터 피해자측의 사적(事跡)을 깊이 기술(記述)할 수가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필자도 많은 지나서책(支那書冊)과 관련하는 다른 학문서로 부터 해답을 얻기도 하나 지나가 제대로 된 사서는 찾아보지를 못한다. 
 
사서와 지명(地名)과 지도(地圖)도 모두 위조, 조작되어 있어서 헷갈리게 하고 있다. 또한 한민족(漢民族)이라고 하며 그 시조(始祖)도 한족(漢族)이 아닌 우리 선조들을 다 가져다 놓고서 자기들의 시조라는데 그들은 자기조상도 꾸미고 있다. 
 
원래 한족도 우리 동이족으로 한족은 존재하지 않은데도 역사를 조작하느라 한족을 내세우나 유방이 세운 한(漢)나라 이후 한족이라고 하고 있는데 유방(劉邦)도 동이족이기에서다. 한민족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실제 확인되는 지나의 최고왕조(最古王朝)는 그들이 내세우는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맞느냐 이다. 지나 역사는 첫 단추부터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세계사학계는 물론 이를 인정하는 자는 역사를 조작한 자만이 옳다고 하고 있다.  
 
학자에 따라 실재가 확인되는 지나 최고왕조(最古王朝)는 [은(殷)]이라고 하는데 은(殷)은 서기전 1600년경~1100년 전후까지 황하(黃河)중 하류에서 번영한 것이었다. 이 [은(殷)]도 우리 동이족으로 엄밀히 말하면 이 역사도 우리민족에 속하는 것이다. 
 
지나는 2004년 7월에 은(殷)보다도 전왕조(前王朝)인 [하(夏)]의 궁전적(宮殿跡)이 발굴되었다고 지나의 사회과학원이 발표했으나 하(夏)도 고조선의 제후국에 속하는 소수 부족국가이었다.
 
그런데 지나와 일본은 황하(黃河)나 위수(渭水)로 내려온 선주(先住)한 민족이 우리임에도 그들은 어떠한 민족이나 부족인가를 은(殷)시대까지 전혀 불명(不明)하다고 하고 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은시대 이전 유라시아는 우리영역이다.
 
왜 황하유역에 고대국가들이 탄생했나
 
고대 황하(黃河)유역에는 은(殷) 이외에도 50여의 씨족 집단이 후에 나라를 이룬 것을 들 수 있는데 은(殷)의 세력권 확대 방향이나 그 후에 계속되는 후주(後周)의 진출 방향을 보면, 낙읍(洛邑;낙양(洛陽;호경(鎬京)후에 장안(長安), 현재의 서안(西安)에서 확대해 간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선조들의 활동 무대이었다. 
 
이 지역은 교역의 중심지의 거점으로 각지의 물산이 시장에 집적했기 때문이다. 즉 고대국가의 왕들은 농산물이나 어육류가 모이는 곳에 시장의 상권을 장악함에 의해서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갔었기에 이 곳이 중심이 된 것이다. 
 
은(殷)은 황하(黃河) 중유역(中流域)으로부터 하류역(下流域)에 걸쳐서 씨족연합체를 형성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곳의 선주민(先住民)은 몽골계가 주류로서 퉁구스족, 티베트계와 지금의 터이키계, 이란계등 유목, 수렵민족이 융합되어서 형성해 갔던 것이다. 
 
지나의 사서에 의하면 역사시대 최고(最古)의 국가인 은(殷)의 시조 계(契)는 전설의 왕조 하(夏)의 우왕(禹王)에 의한 황하의 치수(治水)사업을 도운 공적에 의해 [상(商)]땅에 봉(封)해졌다고 말해지고 있다. 
 
그런데 은(殷)은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서기전1600년경 부족국가의 연합체로서 화북일대(華北一帶)를 지배했다. 그들은 지나와 일본이 말하는 원주민이 아니라 유목민족인 동이족(東夷族)이었다는 증거 자료가 많이 있는 것이다. 
 
그 증거의 하나는 은제국((殷帝國)에서는 각종의 축제가 있었는데 반드시 제물은 동물을 제단에 희생의 공물(供物)로서 올린 것이었다. 그것도 당초(當初)는 양, 소, 돼지였는데 시대가 내려오면서 은(殷)의 적(敵)이었던 강족(羌族) 사람을 붙잡아서 희생제물로 바쳤던 것이다. 
 
그것은 은제국((殷帝國)의 수도(首都)가 시조로부터 11대 탕왕(湯王)에 이르기 까지 8번이나 천도(遷都)를 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탕왕(湯王)부터 19대가 되는 반경(盤庚)대에 까지는 5번이나 천도(遷都)를 한 것이 강족(羌族)으로 인해서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소나 돼지는 식용으로서 이용되나 양(羊)은 양모(羊毛)를 생산하기 위해서 유목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물이었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원래가 유목민으로 신(神)에 제사를 드리는 제물을 양(羊)에서 강족(羌族)으로 제물로 바친 것이다. 
 
은(殷)은 서기전 1300년경에는 이미 정교한 청동기를 제작했으며 또한 한자(漢字)의 조형(祖型)인 갑골문자를 발명하고 있다. 갑골문자는 하남성 안양현(安陽縣) 소둔촌(小屯村) 은허(殷墟)로 전해지는 땅에서 1899년 발견되었다. 
 
글을 맺으며
 
이 갑골문자가 나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출토한 문자 3000개중 800자(字)는 해독되었으나 이 일로 인해서 은(殷)시대의 제사, 사회, 정치, 경제 등이 해명되기 시작됐다. 그것은 지금까지 전설의 성(城)을 못 벗어난 은제국의 존재가 들어나서 역사시대로서 인식하게 됐던 것이다 
 
지나는 우리 동이(東夷)의 기마민족이 중원대륙을 환국시대부터 선주(先住)해 타민족이 1만년 때 석기시대의 범주에 속하고 있을 때 우리는 신석기시대로서 문화의 꽃을 피운 자랑스러운 민족으로 문명을 일으킨 것을 숨길 수가 없다.
 
한편 은(殷)의 뒤를 이은 주족(周族)도 지나는 자기들 민족으로 보나 주족(周族)은 고고학적, 고인류학적으로 봐도 몽골의 대초원지대로 부터 오르도스 지방에 들어가 계속해서 황하동쪽 분수(汾水)부근에 정주해 씨족연합체를 형성하고 있었던 동이족이 세운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또한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황하(黃河)는 여러 명칭으로 말해지고 있다는 것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예컨대 하(夏)나라 때는 하수(夏水), 한(漢)나라 때는 한수(漢水), 진(陳)나라 때는 진수(陳水)로 불리는 황하(黃河)가 덕수(德水)이다. 
 
그런데 주(周)시대의 진출 방향을 보면, 은(殷)시대의 후반 주(周) 13대의 고공단부시대(古公亶父時代)가 되어서 은족(殷族)의 침공을 받았기 때문에 황하(黃河)서쪽을 건너가서 협서성(陜西省) 기산(岐山)으로 가서 도시국가연합(都市國家聯合)을 형성했다.
 
그리하여 주(周) 15대의 문왕(文王)은 티벳 강족(羌族)의 현자(賢者)인 태공(太公) 여상(呂尙)을 왕사(王師)로 맞아들여 은타도(殷打倒)의 준비를 개시하고서 자신의 일족을 산채로 신에게 제사에 제물로 바치게 한 원한이 깊었던 여상(呂尙)은 주(周)의 16대 무왕(武王)을 도와서 은(殷)을 격파하고 서기전 1100년 주(周)를 수립했다. 
 
여상은 이때의 공적으로 무왕의 배려로 산동성에 [제(齊)]를 건국했던 것이다. 주(周)는 서기전 770년 서융(西戎)의 침공을 받아 수도 호경을 버리고 동쪽의 낙읍(洛邑)에 옮기고 호경(鎬京)후에 장안(長安), 현재 서안(西安)에서 330년간을 칭해서 서주(西周)라 하고 서기전 256년 진(秦)에 멸하기 까지 514년간을 칭해서 동주라고 한다.
 
이상은 이미 기술한바 있으며,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지나가 자기나라라고 말하는 은(殷)이나 주(周)나라도 제(齊)나라도 모두 우리 동이족이고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위안텅 페이(袁騰飛)가 “지나 역사는 5%도 아니 된다”는 말을 빌릴 필요 없이 우리가 대륙의 주인이었을 제대로 알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확인하고 세계로 뻗어 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以上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반재원, ‘鴻史桓殷’.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文定昌 「韓國史の延長」, 井上 淸, ‘日本の歷史’.  .劉泳,海燕,‘赤蜂博物館’.‘各國別 [世界史の整理]. 貝塚茂樹, ‘中國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井上 淸, ‘日本の歷史’. 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引用했음을 밝힙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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