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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정말로 모든 것을 바꿨을까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5-11 11:40:41

 
▲이혁재 언론인·전 조선일보 기자
/친원전으로 위기 맞은 메르켈
/日 후쿠시마 사고로 기사회생
/21세기 최대의 난제는 온난화
/멋진 말보다는 할 말을 해야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福島)에서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말했다.
“후쿠시마가 모든 걸 바꿨다.”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2022년까지 독일 원전을 모조리 폐쇄하겠다고 선언한다. 독일 국민은 감동했고, 탈(脫)원전 법안은 순식간에 국회를 통과했다.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은 녹색당보다 더 녹색이 됐고, 메르켈은 지구를 지키는 리더가 됐으며, 독일인은 이상을 먹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후쿠시마가 진짜로 이렇게 모든 것을 바꿨을까. 한번 침착하게 독일의 지난 10여년을 살펴보자.
 
탈원전은 슈뢰더 전 총리가 시동
 
독일의 탈원전 정책을 메르켈 총리가 수립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반핵 단체들도 “독일을 보라”며 메르켈의 독일을 교과서로 삼는다. 하지만 탈원전은 메르켈에 앞서 총리를 지낸 슈뢰더 전 총리의 작품이다. 1998년 정권을 잡은 슈뢰더는 다음과 같은 ‘에너지 전환 정책’을 마련한다.
‘원전을 추가 건설하지는 않는다. 기존 원전도 서서히 폐기한다. 그 한편으로 재생에너지와 가스발전을 통해 탈원전을 완성한다.’
 
나름 일리 있는 정책이었다.
 
슈뢰더에 이어 정권을 차지한 메르켈 총리는 놀랍게도, 그리고 세상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르게 ‘친(親)원전’ 노선으로 나간다. 전 총리의 탈원전 계획을 백지화하고, 원전 가동기간을 일거에 평균 12년 연장한다. 이는 원전을 ‘뱀보다 싫어하는’ 독일 국민을 격노하게 만들며 메르켈은 위기에 빠진다.
 
위기의 메르켈에게 나타난 흑기사
 
친원전 이라는 패착을 둔 메르켈 총리에게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정말이지 백마 탄 흑기사 였다. 지진과 쓰나미로 촉발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메르켈은 탈원전으로 말을 바꿔 탄다. 슈뢰더 식의 일리 있는 탈원전을 추진하면 자신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매우 급진적으로’ 탈원전 깃발을 내건다. 그 때 메르켈 총리가 쓴 표현이 “후쿠시마가 모든 것을 바꿨다” 였다. ‘원전의 비극적인 모습에 충격 받아’ 지구 구원에 나선 선구자처럼 원전 폐쇄를 선언한 게 아니었다.
 
지진도 쓰나미도 없는 안전한 독일에서 원전을 없애기로 결정했고, 2011년 17기였던 독일 원전은 2021년 현재 6기로 줄어든다. 원전을 대체한 건 화력 발전이었다. 하지만 2021년의 세계에서 시급한 과제는 핵 위기보다는, 지구온난화를 막는 이산화탄소 감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메르켈이 원전 대신 선택한 화력 발전은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형편없었다.
 
석탄발전 중지 선언으로 전력수급 위기
 
메르켈은 다시 2038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걸 다른 말로 하자면, 산업선진국 독일의 기반 에너지인 원전과 석탄발전을 모두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독일 전력(電力)의 기본인 석탄과 원자력을 모두 폐기하면 무슨 에너지로 현재의 독일을 유지할 수 있을까. 독일의 현재 상황을 보면 태양열,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기대하는 것 같다.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퍼부은 덕에 재생에너지는 전체 발전량의 40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단점이 있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에너지여도 날씨가 안 맞으면 재생에너지는 전기를 공급하지 못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여기에 재생에너지를 키워낸 ‘보조금’은 국민이 낸 전기요금으로 마련되는 것이어서 독일의 전기요금은 유럽연합(EU)에서 제일 비싸다. 이런 상황을 물리학자 출신 메르켈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독일 국민들도 서서히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 채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독일에서 탈원전, 탈석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적다. 둘 다 국민의 뜻이며, 정면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일 뿐이다.
 
후쿠시마가 모든 걸 바꾸진 못한다
 
독일에서 원전이 사라진다고 독일이 원전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독일 주변에는 원전을 운영 중인 많은 국가들이 있다. 그들 국가에서 원전 사고가 난다면… 구소련 시절의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떠올리면 쉽게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대조적이라고 표현하기는 뭣 하지만 네덜란드는 지난해 9월 원전 3~10기를 새로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원전 신설 이유는 “이산화탄소 삭감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금 네덜란드는 천연가스와 석탄으로 전기의 8할을 생산하고 있다. 원전은 1973년 세워진 1기뿐이다. 이러한 현재의 발전 구조로는 지구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전기자동차 증가와, 수소에너지 보급 등으로 전기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산화탄소를 대량 발생시키지 않고 늘어나는 전기수요를 맞추려면 원전 밖에 없다. 에너지 생산을 원전 위주로 개혁하려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바람과 태양으로 전기의 70%를 만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단언한다.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원전은 2025년부터 건설에 들어간다.
 
전기수요 급증과 원전의 존재
 
후쿠시마를 통해 독일에 탈원전 명분을 줬던 일본은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했다. 문제는 탈이산화탄소 사회가 에너지 절약과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손쉬운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산화탄소 제로’ 목표를 이루는데 가장 주목 받는 수단이 수소에너지인데, 수소 역시 땅 판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일단 물을 분해해야 나오고, 수소를 필요로 하는 곳까지 수송해야 한다. 그리고 두 작업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기다. 3년에 한 번 하는 ‘에너지 기본정책’ 개정 작업과 관련 일본 산업계 대표들이 처음으로 “원전을 중시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메르켈 총리는 “후쿠시마가 모든 것을 바꿨다”고 했고, 우리나라 대통령도 원전 재난영화를 보고 비슷한 말을 했다. 탈원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독일과 우리나라에서 모두 터부이지만, 이제는 국민을 향해 “지구온난화는 원전 사고 이상으로 심각한 과제이며 이상만으론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정치인은 “원전을 반대하는 민의를 존중한다”는 말만 하고 있으면 선거에서는 떨어지지 않지만, 그런 멋진 말만 하는 정치인을 뽑은 국민은 피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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