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교초와 흑사병, 그리고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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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7-01 00:02:54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던 대영제국에 이어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졌던 곳은 원나라이다.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친 이 대제국은 쿠빌라이칸이 원나라를 세운 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아 멸망했다.

원나라가 멸망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먼저 쿠빌라이칸 사후 황위 계승을 두고 권력다툼이 극심했다는 점이다. 원의 마지막 황제로 우리에겐 기황후의 남편으로 알려진 순제 토곤테무르가 즉위하기 전 13년 동안 7명의 황제가 바뀔 정도였다. 토곤테무르의 즉위 이후에도 궁정의 실권을 둘러싼 쿠데타가 잇따르는 등 정치적 혼란은 계속됐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럽에 유행한 흑사병으로 추정되는 전염병이 중국에 유행한데다, 천재지변이 속출하면서 경작할 사람이 줄어들자 식량 생산이 감소하는 등 농촌을 황폐화 시켰다.

철저한 신분제를 원인으로 드는 학자도 있다. 원나라는 신분을 몽골인과 색목인, 한인과 남인의 4계급으로 나누고 몽골제일주의를 내세웠다. 숫자가 별로 없는 몽골인이 대다수를 지배하는 데 대한 한족들의 불만이 결국 반란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원나라 지배층의 사치와 향락을 위해 무리하게 세금을 거둔 것도 반란의 원인으로 꼽힌다.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원나라에서는 발행한 공식 화폐인 ‘교초’의 남발이다. 쿠빌라이칸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쓰인 교초는 은 1냥을 교초 10관으로 정한 일종의 지폐였다. 원나라는 지폐만 유통시키기 위해 모든 금은과 동전을 몰수하고 이를 지폐로 바꿔주었고 지폐 받는 것을 거부하면 사형을 당했다.

초기에만 해도 은과 지폐의 교환비율을 철저히 지켜 은을 확보한 만큼만 지폐를 발행했다. 그러나 남송과의 전쟁과 일본 침공, 대규모 토목공사 등 거액의 재정지출이 필요해지자 지폐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원나라는 교초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액면가를 높였지만 오히려 화폐가치의 하락을 부채질했다. 결국 교초는 종이조각으로 전락하게 되고 원나라를 중심으로 한 국제 경제체제가 붕괴하게 된다. 이를 세계 최초의 인플레이션으로 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당시 원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고려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이에 영향을 받은 사대부 계층이 조선을 창업하며 ‘사농공상’의 중농주의를 표방한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이런 원나라의 사례는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위해 발행한 ‘당백전’으로 인한 경제 혼란과 일맥 상통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돈을 풀면서 이렇게 풀려나간 돈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란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주요국의 통화량은 빠르게 증가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년 동안 미국의 통화량은 약 3.8조달러(24.6%) 급증했고, 한국도 260조원(9.3%)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유로존과 일본, 영국과 중국의 통화량 증가율도 각각 11.0%, 9.2%, 14.9%, 10.1%에 이른다. 이에 따라 물가도 크게 올라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5.0% 상승했고 한국도 두 달 연속 2%대 중반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론 행정력이 빈약한 중세 국가와 현대 국가를 비교하는 게 넌센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본 원나라의 사례가 500여년 후 조선에서도 나타났다. 정부는 금융계와 학계 등에서 나오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지 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한원석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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