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전문가칼럼
성헌식의 대고구리
중국이 기록한 낙랑은 낙랑군과 같은 곳일까
낙랑, 한사군이라 하기엔 앞뒤 안 맞는 기록 많아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9-30 10:33:59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고구리의 변방제후로 추모대제(고주몽)를 극진히 모셨던 낙랑국은 훗날 대무신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54년에 나라가 망한 이후 줄곧 고구리의 적대세력으로 변모했다. 그러다가 고구리 외 다른 세력이 연결되면 그쪽으로 붙기도 했다.
 
『고구리사초략』엔 “태조황제 26년 정축(137)에 주나(朱那)의 잔당들이 낙랑과 함께 패하(浿河) 하구를 공격해와 화직이 그들을 평정했다”와 “141년 4월 낙랑태수 룡준이 서안평(西安平)을 침입하니 안평태수 상잠이 이를 쳐서 깨고 룡준의 처자 및 병장기를 빼앗아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리가 낙랑국의 잔당을 평정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후한서』동이열전에 “질·환제(質·桓帝) 시대(146~167)에 다시 요동의 서안평을 침범해 대방현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포로로 사로잡았다”는 기록이다. 만약 이 낙랑이 한사군이었다면 자기네가 파견한 태수의 처자를 포로로 잡았다는 기록이 과연 성립될 수 있을까.
 
이후 낙랑국의 잔당들은 위나라와 고구리 사이에서 독자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공손연(公孫淵)의 휘하로 잠시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233년에 위나라가 공손연을 대사마(大司馬)·낙랑공(樂浪公)으로 봉했고 아래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237년 명제(明帝)가 몰래 대방태수 유흔과 낙랑태수 선우사를 파견해 바다(海)를 건너가 대방·낙랑의 두 군(郡)을 평정했다. (생략) 한인(韓人)들이 모두 격분해 대방을 공격하니 태수 궁준(弓遵)과 낙랑태수 유무(劉茂)가 정벌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태수들이 금방 바뀌었다.
 
또 “238년에 사마의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공손연을 죽이고 또 몰래 바다(海)를 건너가 낙랑군과 대방군을 수습했다. 그 후로 해외가 안정되어 동이(東夷)들이 굴복했다”는 이상한 기록이 있다.
 
▲ 낙랑을 잘못 비정해 중원을 중국에게 넘겨준 사학계. [사진=필자 제공]
 
『고구리사초략』에는 “동양대제 11년 정사(237) 3월에 유흔·선우사·오림 등이 대방·낙랑 등 소국들을 침공해 공손연과 한 몸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들은 위나라 파견 태수가 아니라 공손연에게 협조하는 무리들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공손연을 제거하려는 위나라가 대방·낙랑을 공격해 그걸 공손연에게 줄 리가 없을테니 말이다.
 
또 “240년 대방사람 궁준(弓遵)이 위나라의 대방태수를 자칭하며 고구리의 변방을 침략하고 신라·왜와도 소통해 많은 근심거리를 만들기에 장수를 보내 제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낙랑이 한사군이었다면 어찌 그들이 신라·왜와 소통할 수 있었을까. 또 태수를 자칭했다는 말은 위나라 파견 태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12년 무오(238) 정월에 위나라가 사신을 보내 함께 공손연을 토벌하기를 청하기에 5000 병력을 남소(南蘇)로 보내 관망하며 성원하라 했다. 8월에 공손연을 멸한 뒤 약속을 저버리고 교만·방자해지자 상이 대노하며 사마의와의 소통을 끊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토록 살벌한 경계 하에서 위나라가 몰래 낙랑·대방군을 수습했다는 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246년 기록에는 “위장 관구검(毌丘儉)이 침공해오자 낙랑의 유무(劉茂)와 대방의 왕준(王遵)이 남쪽에서 들어와 관구검을 도왔다. 그러자 백제의 고이(古爾)왕이 그 틈을 노려 두 나라를 기습해 변방백성들을 많이 잡아갔다”가 있다. 이것이 1.5년간의 짧은 공손연의 낙랑과 함께 낙랑군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내용으로 보아 이들은 위나라 파견 태수들이 아니라 낙랑국 잔당들에 의한 반고구리 적대행위로 읽혀진다. 참고로 훗날 유무는 흉노족의 전조(前趙)에서, 왕준은 선비족 모용외 밑에서 벼슬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관구검의 침공 당시 위나라 파견 태수가 아닐 것이다.
 
이어지는 『고구리사초략』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서진의 낙랑군은 완전 허구였음을 알 수 있다. “서천대제 5년 갑오(274) 가을 8월 서진이 유주의 다섯 군을 떼어내 평주로 삼았다. 일설에는 범양·상곡·북평·요서라 하고 다른 설에는 창려·요동·대방·낙랑·현토라고 했다. 이 땅들 모두 이미 서진의 소유가 아니었고 교위·태수·참군은 허위로 말한 것이었으니 역시 웃을 일 아니겠는가.
 
이러했던 낙랑은 이상하게도 백제에게 잠시 넘어갔다가 고구리에 의해 완전히 평정된다. 다음 연재에서 이 내용을 다뤄보겠다.
 
(전문가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1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541(청담동) 세신빌딩 9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5일,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조정진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