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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백제 분서(汾西)왕을 죽인 낙랑의 정체는 무엇일까
낙랑을 한사군 낙랑군이라고 주장했던 식민사학계
낙랑은 왕 옹립했던 독립국…고구리와 적대적관계
고구리 정벌에 화친 청했던 낙랑, 정략혼인 맺기도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0-06 18:01:16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분서(汾西)왕 7년(304) 봄 2월 몰래 병사를 보내 낙랑의 서현(西縣)을 습격해 빼앗았다. 겨울 10월, 임금이 낙랑 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돌아가셨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의 낙랑은 과연 식민지 한사군의 핵심 낙랑군이었을까.
 
식민강단사학계는 사서에서 낙랑만 나오면 무조건 중국의 낙랑군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위 기록의 낙랑태수도 중국에서 낙랑군을 다스리라고 파견한 관리로 봤을 것이다. 과연 그럴지 지금부터 『고구리사초략』을 통해 상세히 알아보겠다.
 
먼저 백제 책계왕의 맏아들인 9대 분서왕은 분서에서 태어났기에 그렇게 불렸다. 분서라는 지명은 글자 그대로 분하의 서쪽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임분시 분서현으로 청나라 때 그려진 <대청광여도>에는 산서남부 임분시 북쪽에 그려져 있다. 당시 백제의 영토가 거기까지였다는 뜻이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 “책계왕 원년(286)에 고구려가 대방(帶方)을 치니 대방이 구원을 청해왔다. 이에 앞서 임금이 대방왕의 딸 보과(寶菓)를 부인으로 맞았기에 임금이 말하기를 ‘대방은 장인의 나라이니 그 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병사를 내 구원하니 고구려가 원망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먼저 백제왕이 대방왕의 사위가 됐다는 것은 이 대방이 중국의 군현(식민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중국 파견 대방태수였다면 과연 백제 왕실과 혼인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게다가 대방태수가 아니라 대방왕이라는 문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동안 고구리에게 계속 탄압받았던 낙랑(국)과 대방(국)의 잔당들은 고구리의 적인 공손연에게 의탁했다가 238년에 공손씨 정권이 위나라에게 망하자 떠돌다가 246년에 고구리를 쳐들어온 위나라 장수 관구검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걸 식민사학계에서 중국 군현(식민지)인 낙랑군이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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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하 서쪽에 있는 분서는 임분시 북쪽으로 백제의 시국처와 가깝다. [사진=필자 제공]
 
이후 위나라가 혼란에 빠져들자 결국 잔당들은 고향 낙랑 땅에 정착해 자체 왕을 옹립하고 다시금 고구리의 적대세력으로 대두됐다. 그러나 고구리는 봉산제 때 내정문제로 정벌엔 나서지 못했다. 창조리 등이 맞아들인 을불(미천대제)의 즉위 이후에야 정치가 안정되면서 다시금 낙랑이 토벌대상으로 지목됐다.
 
『고구리사초략』에 “미천대제 5년 갑자(304) 2월에 분서왕이 낙랑의 서도(西都=대방)를 습격해 그곳을 백제의 군현(식민지)으로 만들자 낙랑왕 자술(子述)이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해왔다. 이에 상이 분서와 상통·모의해 낙랑을 쪼개라고 명하니 (낙랑왕) 자술은 화가 치밀어 고구리를 배척했고 분서에게는 원수를 갚고자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낙랑은 낙랑국의 잔당들일까 아니면 중국군현 낙랑군일까.
 
이어지는 기록에 “이해 10월, (낙랑왕) 자술의 신하로 잘 생긴데다가 담력과 용기가 있는 황창랑(黃倡郞)이 예쁜 여인처럼 꾸미고 분서왕을 알현했더니 왕이 그 미모에 빠져 수레 안으로 불러들였다가 자객의 칼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위 『삼국사기』의 간단한 기록이 설명된다.
 
다시 낙랑왕 자술이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고구리에서 파견한 임명 왕이 아니라 낙랑인들이 스스로 옹립한 자체 왕으로 보인다. 즉 일종의 멸망한 낙랑국의 재건인데 이걸 고구리가 가만뒀을 리 있었겠는가. 참고로 이 낙랑이 한사군 낙랑군이었다면 태수 칭호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백제에게 넘어간 낙랑의 서도를 되찾기 위해 미천대제는 9년 무진(308) 5월에 공격을 명해 그 땅들을 빼앗고 남녀 300명을 사로잡았다. 이에 낙랑왕 자술은 아들을 보내 칭신하고는 말과 토산물들을 바치며 화친을 청했다. 선방이 동생을 자술의 딸과 혼인시켜 두 군의 주인이 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낙랑국왕을 끌어내리고 한꺼번에 나라를 멸할 경우 큰 반발이 예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고구리는 먼저 태보 선방을 보내 정벌하는 척했고, 낙랑왕이 굴복하자 일단 정략혼인부터 맺도록 했다. 이미 낙랑(국)과 대방(국)의 실제 주인은 군사력이 월등한 고구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구리는 어떤 방법으로 낙랑을 정벌했을까. 다음 연재에선 재건된 낙랑군이 세상과 이별을 고했던 순간을 다뤄보도록 하겠다.
 
(※전문가 칼럼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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