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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춘천조각심포지엄, 쇠붙이와 씨름하는 6인의 조각가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0-15 08:57:30

 
▲ 이재언 미술평론가
쇠붙이 잘 다루는 민족의 재능‧솜씨 엿볼 수 있어
거대한 철기문명에 대한 반성적 인식의 예술가들
너무도 개성적이고 다양한 기법과 조형세계 과시
생명 불어넣는 새로운 철기문화의 패러다임 확인
 
 
우리나라의 ‘1인당 철 소비량’이 압도적 1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9년 6월 10일자 ‘페로타임즈’가 인용한 세계철강협회(WSA)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철강 소비량은 1047.2kg을 기록했다 한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12년부터 줄곧 전 세계 1위를 달렸다. 소비량은 2012년보다 35.2kg 감소했다. 2위는 대만으로 753.5kg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같이 2012년보다 10.6kg 줄었다. 체코(703.0kg), 중국(590.1kg), 일본(514.1kg) 순으로 ‘톱5’를 형성했다.”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철 소비국가라는 것인데, 반도체 및 디지털 외에도 세계문화계의 주목을 받는 소프트파워 강국이라는 사실에 가려져 잠시 잊었던 다른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중공업으로 일어선 나라라는 것이다. 조선, 자동차, 철도, 건설, 기계류, 무기류 등에서 선도적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있는 마크 피터슨 교수 외 많은 이들이 말하기를 고대 금관, 금속활자, 거북선 등을 만든 저력과, 쇠젓가락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배경이 공업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금속을 잘 다루는 민족의 후예답게 우리 조각가들도 다수가 금속을 즐겨 사용하며,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품들을 생산해낸다. 금속을 재료로 쓴다는 것 자체가 정밀한 가공기술, 에너지, 양질의 금속재, 조형 감각 등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소조인 브론즈를 제외하더라도 금속의 판금(板金)작업은 현대조각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10월 4일부터 24일까지 춘천에서 ‘춘천조각심포지엄’이 3주간 열리고 있다.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적인 작품제작과 토론, 완성작 설치를 통한 도시갤러리화(化) 등을 복합적으로 수행하는 행사인데, 여기서도 9명 가운데 6명의 철조 조각가들이 선정되어 제작중이다. 김주환, 박태동, 이상길, 전신덕, 조권익, 주송렬 등, 이상 6인의 작가만은 번득이는 발상과 다양한 기법의 조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작업 내용이 생명이나 평화를 표방하기 보다는 저마다의 경험과 개성에 충실하지만, 철기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철기문화의 패러다임을 어렴풋이나마 드러내고 있다.
 
본래 고대로부터 두 번의 큰 대전을 겪은 20세기까지 철기(鐵器)는 곧 살상, 약탈, 억압의 의미로 통했다.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계, 기차 등도 탐욕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도구가 되어 비극적 전쟁에 동원된 전력이 있었으며, 철기문명의 속성은 언제든 전철을 밟아 반복될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우리의 철 사용은 전통적으로 평화를 위한 도구로 제한해 왔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타 민족이나 국가를 침략한 적이 없는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인류는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하여 ‘생명’ 내지는 ‘평화’를 위해 복무하는 철기문명의 새 지평을 여는 데 예술이 앞장서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6인의 철조작가 작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 김주환 작 [사진=필자 제공]
 
▲ 박태동 작
 
〇김주환/ 박태동= 김주환은 주제가「일적십거무궤화천」(一積十鉅無櫃化川)이다. ‘천부경(天符經)’에 나오는 ‘하나가 쌓여 열이 될 만큼 커지지만, 담을 그릇이 없으니 셋(천,지,인)으로 변화를 한다’는 가르침을 차용해 천(川) 자는 삼(三)자를 90〬 돌린 것이다. 철사를 반복적으로 붙여나가면서 물방울 하나가 만든 동심원을 통해 존재의 근원을 사유하고 있다. 박태동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메커닉한 기하적 각면 구조체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마치 보석 같은 느낌이지만 약간의 비정형으로 바로크 젬(Gem)의 형태로서 정형과의 접점을 보인다. 도심 속에 여러 유닛의 연출이 이루어져 거대한 공깃돌이 흩어지고 쌓이고 하는 느낌의 평화로움을 고조시킨다.
 
 
▲ 전신덕 작
 
▲ 조권익 작
 
전신덕/조권익= 그들은 도시를 노래한다. 전신덕의 도시는 수레 위에 올려진 모습을 띠고 있다. 야간의 화려한 조명에서 보듯 온갖 영화를 누리는 도시, 그러나 수레 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은 그러한 영화도 영원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흥망성쇠의 굴곡을 피할 수 없는 우리 문명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조권익의 작업은 잔 모양의 구조로 비정한 검투사들의 원형극장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건물 같기도 하다. 메커닉한 블록들이 쌓여 있는 성벽 같은 동체에 나무 이미지가 상감되어 있다. 모든 도시(세계)는 열림과 닫힘, 호흡으로 치자면 들숨과 날숨을 부단히 이어 가야 하는 유기체와도 같은 존재임을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 이상길 작
 
▲ 주송렬 작
  
이상길/주송렬= 이상길은 스텐레스 철선을 옆으로 붙여나가지만 다른 점은 입체의 나선형 원추체를 만들어나간다는 점. 천체망원경을 조망하듯 들여다보면 두 세계가 존재한다. 원거리의 현실 공간과 가상적 우주공간이다. 무수히 반복된 용접 얼룩 집합과 작은 구체들이 어울려 나타나는 별자리들, 긴 꼬리를 가진 별똥별의 움직임들을 보노라면 상상과 사색에 빠져든다. 주송렬은 이와는 반대로 넓은 스텐레스 판으로 재단을 하여 가방을 재현한다. 지금은 보기 힘든 우체부의 우편행낭과 우체통이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가는 아날로그식 편지와 행낭, 그 안에 한가득 들어 있을 온갖 애환들을 회고한다. 추억의 우체통 앞에서 청마의 시처럼 누군가에게 행복의 편지를 쓰고 싶다.
  
사실 우리 민족의 솜씨나 손재주가 좋은 게 쇠붙이만이 아니다. 그 어떤 분야인들 마음먹고 시작하면 기어이 정상에 올려놓는 민족 아닌가. 그러나 유독 금속 철조에 주목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오랜 인류사 속에서 약탈과 살육의 상징이 되어온 ‘철기’, 이제 우리 작가들이 그것을 평화의지와 생명을 불어넣고 이롭게 하는 거대한 역사적 프로젝트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 이 점에 의미 부여를 하고자 하며, 예사롭지 않은 행보의 문화사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오랜 ‘철기시대’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철기시대’의 문을 여는 위대한 몸짓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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