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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와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23>

한(漢)이 조선 지배했다는 건 조작된 허구다

동주(東周)시대부터 천년간 대륙 지배한 예맥도 한(漢)지배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0-16 10:25:47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우리는 지나(支那)와 일본(日本)이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면서 왜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역사가 그들보다도 유구하고 우월한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옛날 상고시대와 고대에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고조선(古朝鮮)이라는 강대한 독립국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 잊어버리도록 해야만 자기들의 역사를 내세울 수 있기에서 왜곡하고 조작했다.
 
일제강점기 때의 경우를 봐도 그들은 인류 시원국(始原國)인 환국(桓國)과 배달국(倍達國)과, 고조선도 모두 실재가 아닌 신화라는 사상을 퍼트리느라 이에 관한 모든 사서를 불태우거나 변조하고 일본이 일찌기 우리나라를 지배하기도 했다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날조했던 것이다.
 
그들은 삼국지 동이전과 지나 25사(史)와 우리나라 [삼국사기(三國史記)]기록에도 나와 있는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서 우리지배를 받은 것을 숨기며 일본의 첫 왕 진무덴노(神武天皇)가 서기전 660년 일본을 건국했다고 조작한다.
 
그러나 1200년 전의 미야시타 문서(宮下文書;神皇紀)에는 백제인이 왜(倭)에 와서 그들을 가르치다가 그들 왕(王)이 됐다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현 일본 궁내성(宮內省) 소장(所藏)의 상기(上記)에 잘 나와 있다.
 
이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동양사학의 최고권위자라는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동양사의 교수이며 쇼와왕(昭和王)이 황태자시절 스승인 사사가와 린푸(笹川臨風)박사가 100년 전에 최태영 선생이 1918~1924년 메니지대학 유학시절 최선생에게 말한 “일본의 천황은 단군의 73대손이 일본의 첫 왕이 되었다”고 했는데도 우리나라 국공립 대학의 사학과 교수들이 지금도 단군신화를 말하고 있다.
 
지금은 일본사학자들은 “일본의 황통사(皇統史)는 거짓역사다”고 말한다. 가시마 노보루(鹿島 昇)와 같은 분은 “일본의 황통사는 거짓역사이지만 일본이 짧은 기간 내에 과학과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승리는 역사왜곡이었다”고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역사왜곡을 통해 자부심과 용기를 가지도록 함으로 발전한 것은 역사위조 공적(功績)이라고 양심적으로 밝히고 있다. 오늘은 지나와 일본의 역사위조에 우리가 그에 추종하는데 대해 살펴본다.
 
지나(支那)와 일본에 의해 숨겨진 역사 새로 정립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학자들 대다수 학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사서(史書)를 연구하지 않고 지나와 일본의 조작하고 왜곡한 범주를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하루속히 바로 세워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우리 역사가 지나와 일본이 왜곡한 내용을 바로 잡지 않고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을 수치로 알고 역사사실을 검색하고 검증해서 뒤엎어진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임은 슬픈 일이다.
 
즉 지나와 일본이 숨긴 역사의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는 그 대표적인 것이 예맥조선과 낙랑국의 역사를 그대로 두고 단 한번도 예맥조선과 낙랑국을 숨기고 덮은 것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000년 전의 예맥조선과 천년왕국인 낙랑국이 우리역사에서 지워져 있음에도 이를 다루는 것을 볼 수가 없다. 부여(夫餘)이전의 예맥과 삼국이전 낙랑국(樂浪國)이 엄연히 지나의 사서(史書)에도 나온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제왕운기(帝王韻紀)에 고시라(故尸羅), 고례(古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예맥이 단군의 수(壽)라 했다. 이는 모든 부족의 족장을 단국이라 칭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모든 부족의 주체는 예맥조선이다.
 
서전(書傳) 무성편(武成篇)에 화하만맥(華夏蠻貊)이라 했다. 즉 안으로 지나, 밖으로 예맥이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예맥조선이 매우 강대해 지나 이외의 모든 민족을 대표했다고 표시한 것이다.
 
무성편(武成篇)은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을 정벌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예맥조선은 기자조선보다 먼저 건설되고 매우 강대해 지나와 병칭(竝稱)한 것이다. 이 예맥조선은 동주시대부터 한무제까지 1000여년동안 지나를 정복해 유라시아를 지배한 사실이 근래 유물과 역사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예맥조선은 한고조(漢高祖)도 굴복시켜 조공(朝貢)받았다
 
예맥조선은 매우 강대해 위만의 상전인 한고조를 지원하고 위만을 책동해 한고조를 배반케 한다. 이로 인해 한고조가 예맥조선을 침공하게 된다.
 
지나인들이 흉노(匈奴)라고 하는 예맥족으로 동주시대(東周時代)부터 대륙을 지배해 왔다. 그런데 모돈(冒頓)이라는 단우(單于)가 왕(王)이 된 서기전 209년에는 더 강대한 예맥조선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단우라는 것은 예맥족의 수장(首長)의 의미로 왕(王)을 지칭하는 것이다.
 
잠시 모돈단우(冒頓單于)에 대해 말한다면 모돈은 그 부왕(父王) 두만(頭曼;?~서기전209년)의 식자(息子)가 모돈(冒頓;?~서기전174년)인데 그의 부(父) 두만(頭曼)이 애첩(愛妾)아들을 사랑해 이를 후계자로 결정하기 때문에 정처(正妻)의 아들 모돈을 사막지방에 있는 월씨(月氏)에 인질로 보낸다.
 
그리고 바로 월씨(月氏)를 공격했다. 여기서 인질이었던 모돈은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기에 모돈은 호구(虎口)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월씨의 말(馬)을 훔쳐서 탈출해 두만이 있는 예맥으로 돌아왔다.
 
모돈 살해의 기회를 놓친 두만은 표면으로는 이를 포장하기 위해 예맥에 돌아온 모돈(冒頓)에게 1만기(萬騎)를 주어 예맥의 사령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아들 모돈은 부친에게 원한을 가지고 부하들에게 자기가 활을 쏘는 목표는 누구든 쏘라고 훈시(訓示)해 최후에는 그 부왕인 두만에 향해 화살을 쏘았기 때문에 두만은 화살을 맞아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모돈은 예맥의 단우(單于)가 되었다. 이리하여 모돈은 40만의 기마군단을 통솔하게 되었다. 이 기마군단으로 동호(東胡), 정령(丁零), 견곤(堅昆)등을 격파하며 춘추시대(春秋時代;서기전 770년~서기전 403년)에 지나를 정벌해 거의 멸망하게 정복한 나라가 예맥조선이었던 것이다.
 
한편 한고조(漢高祖)는 이미 말한 바대로 전한(前漢;서기전 202년~서기8년)을 건국한 지 2년 후인 서기전200년 예맥을 정토(征討)하기 위해서 32만 대군을 화북(華北)에 집결해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대동현(大同縣) 운강(雲岡)의 석굴(石窟)가까운 평성(平城)까지 진군했으나 모돈단우가 이끄는 강력한 예맥조선의 40만 기마군단에 포위돼 여지없이 격파되고 만다.
 
이에 패전을 인정한 한고조는 일족(一族)의 공주나 처녀를 모돈단우에게 보내고 많은 공물(供物)을 바친 후 화의를 맺었다. 이후 한(漢)으로부터 세폐(歲幣)조공(朝貢)을 서기전141년까지 60년간을 계속했던 것이다. (以上은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94~95面 ).崔仁, [韓國學講義],94~95面參照)
 
글을 맺으며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는 한무제가 우리 민족을 정복하고 사군을 설치했다는 지나의 위조를 그대로 번역해 한무제가 우리 민족을 지배했다고 했다. 그러나 한무제가 우리 민족을 지배치 못한 것이 지나 역사에 명기되어 있다.
 
한무제가 위만조선을 정복해 사군(四郡)을 설치하니 우리 한민족과 한족이 분리됐다고 했다. 지나 민족은 사군(四郡)에 예속되어 한무제의 지배를 받았지만 우리 동이족은 한무제의 지배를 받는 지나민족과 분리되어 한무제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이 당시 우리 민족 중에 천하를 호령하는 강대한 예맥조선을 고찰하면 지나와 일본이 왜곡하는 기자조선(箕子朝鮮), 위만조선(衛滿朝鮮), 한사군(漢四郡)등 지나집단이 우리 민족의 영토나 지배 할 수 없었던 것을 잘 알 수가 있다.
 
오히려 고대에 예맥이 한(漢)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한 내용을 보면 그 의문이 해소된다. 그 예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보면, 한고조(漢高祖)의 시대에 노관(盧綰)과 위만이 한고조를 배반하다가 실패하니 예맥에 망명한다.
 
또한 한고조 4년에 북맥(北貉) 연인(燕人)이 침범했을 때 예맥조선에게 도와 달라고 하자 용감한 기병(騎兵)을 보내어 한(漢)을 도와주고 있었고 노관(盧綰)과 위만이 예맥을 등에 업고 한고조(漢高祖)를 배반하다가 예맥에 망명했다. 이는 예맥이 그 어느 나라의 국력보다도 강대한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以上은 漢書, 卷之一, 高帝紀 第一上. 三國志 第三十 東夷傳, 史記 卷之九十三 列傳第三十三 參照)
 
러시아 사학자로 고조선을 연구한 푸틴은 그의 저서 ‘고조선연구’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조선의 중원대륙(中原大陸)을 지배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뒤집어 마치 지나가 단군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고 말한다.
 
또한 “기자조선설(箕子朝鮮說)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정형적인 예(例)라고 말하고,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영역은 한 번도 지나의 제후국이 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연(燕)나라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외국의 학자인 푸틴의 역사연구사실도 외면할 것인가.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거짓역사에 매달리지 말고 세계석학들이 우리 학계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소리를 제대로 귀담아 들었으면 한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 [鴻史桓殷]. 文定昌), [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 [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전문가 칼럼 내용응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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