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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와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28>

지나 역사에 있어서 인구대격감의 이유

사기에 나타난 많은 살육은 상상 초월한 비인도적이었다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1-20 09:55:47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인류의 전쟁역사는 6000년간 1200번의 크고작은 전쟁들이 있었다고 말해지고 있는데, 고대 지나(支那)의 전쟁역사를 보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너무나 잔혹한 사실을 보게 된다. 물론 고대에는 전쟁법규가 없음으로 전쟁은 국가간의 병력적 투쟁, 또는 국가 간 이상한 상태에서는 적병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항복을 하고 비무장한 상태의 사람들을 몇 십만 명을 생매장한 것은 세계전쟁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일로 악마나 할 짓으로 저주받을 일이었다. 
 
물론 지금은 전쟁법규가 있어서 개전에 관한 법규나 교전에 관한 법규와 전시보호법규가 국제적으로 잘 보호되어 있어서 오늘의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지 모르나 고대의 시각으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비인도적 악마같은 짓이다.
 
고대 중원에서의 국가성립기에 지나는 많은 전투를 겪었다. 예컨대 진(秦) 말기 혼란을 종식시키고 통일왕국건설을 목표로 해서 관중(關中)의 패(覇)를 겨룬 항우(項羽;서기전 232~202년)와 유방(劉邦)의 해하(垓下)의 싸움이다. 
  
서기전 202년 예맥과 한(漢)의 싸움, 서기188년 양자강에서 환관(宦官) 조등(曹騰)의 손(孫), 조조(曹操;155~220년)의 80만군과 손권(孫權)과 유비(劉備)의 연합군이 양자강 적벽(赤壁)의 싸움이며, 13세기 5대 80년의 몽골의 정복전쟁, 즉, 1213년 금(金)과 북경의 전쟁을 시작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거의 정복을 할 때도 진(秦)에 항복한 조(趙)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 하는 것과 같은 살육은 없었다.  
  
이외에 당(唐) 현종(玄宗재위736~756년)때 양귀비(楊貴妃;719~756년)의 사랑과 은총을 둘러싼 안록산(安綠山)의 난(亂)이나 후한 말(後漢末) 184년 태평도의 장각(張角)이 신도 수십만을 얻어서 일으킨 황건적(黃巾賊)의 난(亂) 때도 몇 십만의 생매장 같은 무자비한 살육은 없었다. 
  
오늘은 지나가 역대(歷代)의 인구변천에서 크게 격감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으며 원래 순한족(純漢族)인 니므르세족은 사람을 토막 내고 장기(臟器)를 팔아먹는다고 전해지는데 장평(長平)의 싸움 후 40만명이나 생매장한 일은 일본의 학자들도 경악하고 있었다.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58面~66面과 기타 서적을 참조하고 본문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전국시대 말기 장평(長平)의 싸움 후 전율의 40만 매장 
 
서기전 5세기부터 3세기(서기전403~서기전 221년)에 걸쳐서 전국시대(戰國時代)는 문자 그대로 전국(戰國)의 세상이기에 많은 살육이 사실(史實)로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남기고 있는데 너무나 참혹한 것이었다.
 
이미 부분적으로 기술한 바 있는데 전국시대 말기 진군(秦軍)과 조군(趙軍)과 [장평(長平)의 싸움]에서는 진군이 대승으로 조군 40만명이 항복했는데 이 40만을 무장해제 후 생매장한 만행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현지에서는 마을 곳곳마다 인골이 나와서 어린이들이 그 인골로 놀고 있다는 광경이 보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잔혹한 살육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지나에서는 고대에 예사로 행해진 것을 볼 수가 있다. 예컨대 진(秦)나라를 격파한 항우도 항복한 진군 20만명을 생매장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인데도 우마(牛馬)와 같이 살육을 하고 있는 것은 인간성을 부인되고 마비된 것이라 밖에 볼 수 없다. 여기서 공자(孔子;서기전 552~서기전 449년)는 충효(忠孝), 예절을 말하고 인간사회의 윤리나 질서를 회복하려 한 것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일본의 철학자 와쓰지 데쓰로(和辻哲浪)는 그의 저서 [풍토(風土)]에서 지나인(支那人)의 체질에 관해서 몬순(monsoon=여름에 인도양에서 여름에는 남서로 부터 겨을에는 북동으로부터 불어오는 계절풍)적 성격과 사막적인 성격이 결합한 민족이라 했다. 
 
즉, 몬순(monsoon)적 체질인 인종성(忍從性) 속에 전투적인 것이 잠재하고 있다. 사막의 생활에 있어서는 실제적인 사물에 관해서 관찰, 판단이 예리하고 또 이해 타산적이고 의지도 강고해서 야수적인 잔혹함을 가지고 돌진하는 민족이라고 하나 비인도적인 살육은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나에서는 전 왕조(前王朝)를 넘어트리면 신왕조의 왕은 전왕조에 소속하는 인간을 철저하게 살육에 그치지 않고 건물, 비품, 미술품과 분묘(墳墓)까지 전왕조 영향과 보호를 받은 모든 것을 파괴의 대상으로 했다.  
  
지나인구 대격감 이유는 대의사상(大義思想)이었다
 
지나에서는 역대 신왕조(新王朝)가 성립할 때는 인구가 격감하고 있는데 때로는 수천만 인구가 격감하는 경우도 있다. 서기2년 전한(前漢)때 5959만4978명이었던 인구가 서기242년에는 763만명이었다. 어찌해서 격감한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의문인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 이유를 보면, 첫째는 정부군과 반란군의 항쟁(抗爭)에 의해서 농업노동의 주역인 남자인구가 군인으로 갹출(醵出)하기에 농지가 황패되기 때문에 대기근에 빠진 것이요, 그것도 작물이 없어지면 메뚜기 등의 곤충은 대량으로 이동하며 먹어치우기 때문에 식량은 점점 부족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장마가 거듭된다든가, 하천의 대홍수가 일어날 때는 오늘날과 같이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고대에는 재해대책도 없었기 때문에 수백만 인구가 기아와 홍수로 죽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둘째로는 전란에 의해서 목숨을 잃어버리는 자의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규모가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대의사상(大義思想)이라는 유교와 결부된 독특한 사상이 크게 관련이 있었다. 
  
여기서 대의사상(大義思想)이란, 일단 신하가 되면 군주(君主)에게 쓰임 당한 자로서 군신(君臣)의 명분을 세우지 않으면 아니된다는 사상이다. 즉 군주를 위해서는 죽는 것도 미학(美學)으로 봤던 것이다.   
  
군주를 위해 죽는 것도 미학으로 보기 때문에 왕조의 교대기(交代期)에는 궁정(宮廷)에서 일하던 관료나 일반역인, 군대의 병사에 이르기 까지 신왕조((新王朝)에 최후까지 저항을 계속했다.
 
신왕조는 저항을 하지 않아도 그들을 철저하게 살육한 것이 지나의 경우 구왕조에 협력했다는 이유에서 일반시민도 살육 대상이 되는 경우는 20세기 초까지도 이 같은 음참(陰慘)한 역사가 반복됐다. 
  
한편 로마시대부터 20세기까지 성곽(城郭)도시 하에서 왕조의 흥망이 있었던 유럽제국에서는 동일민족 간에는 지나 같이 대량학살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역사에서의 학살은 민족이 다른 경우와 종교, 이데올로기가 다른 경우였다.
  
그런데 지나의 대의사상(大義思想)은 유교의 춘추(春秋)에서 유래하고 있고, 지나 송시대(宋時代), 주희(朱熹)에 의해서 대의사상론(大義思想論)으로 완성한 것이라고 하고 있으나 이 대의사상(大義思想)은 2000년 이상에 걸쳐서 자민족의 대량학살에 이용됐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 아니되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 진실은폐를 위해 역사왜곡 있을 수 없다 
  
지나는 삼국시대부터 우리의 사서를 탐내고 도둑질하며 역사를 왜곡해왔다. 그리고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는 때에도 우리의 역사서책이 있는 사고(史庫)를 불태우고 우리 역사를 없애려 하나 세계 학계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진실을 숨기고 없애며 자기들 역사를 조작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나 거짓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나는 역사를 숨길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까지도 자기조상이라고 조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박제상(朴堤上)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는 개벽신화(開闢神話)뿐만 아니라 지나인들이 삼황으로 모신 태호복희(太昊伏羲)가 배달국 다섯번째 임검이신 태우의(太虞儀) 환웅천황(桓雄天黃王)의 12번째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호남성 주주(株洲)시 염능현(炎陵縣)에 있는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는 지나민족의 시조이고 농경문화의 창시자이고 의약을 발명했고 삼베로 옷감을 짜는법과 의상을 만드는 법이며 오동나무를 깎아서 오현금(五弦琴)과, 시장 개설, 교역을 중히 여겨 번성하게 한분이라 하며 삼황의 한분이라 하고 있다.  
  
지금은 삼조당(三朝堂)을 짓고 치우천황, 헌원황제, 염제를 삼황으로 모시고 있는데 과연 모신분이 지나 삼황오제인가. 분명한 것은 삼황오제는 서방에서 온 지나인은 한사람도 없으며 모두가 우리의 민족이요 우리의 선조인 것이다. 
 
필자는 지나인이나 일본인이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인 것이 역사를 연구하며 알게 됐으나 역사를 왜곡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더구나 우리들의 선진 문물과 전해준 것에 감사는커녕 우리를 야만인취급을 한 지나와 일본에게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임을 통감하게 된다. 
 
앞으로 우리는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로 발전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찾아 변질된 가치관부터 바로 해야 한다. 그것은 잘못 왜곡된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자리로 바로 옮겨놓는 일부터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 [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中國の歷史].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書冊, 參照, 本文 引用했음을 밝힙니다.)
  
(※전문가 칼럼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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