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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코로나19 상황에 가려진 근본 문제들

정보·지식 통제와 공포심으로 작동하는 대중 독재 사회

무리한 방역정책의 반작용으로 시민 연대·단합 시작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2-14 09:37:23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지난 주 토요일 (12월 11일) 전국에서는 동시 다발적으로 백신 패스포트 반대 집회가 열렸다. 서울에서만 광화문, 신논현역, 강남역, 그리고 지방에서는 부산, 대구, 대전 등에서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행진을 했으며, 각 단체들이 줄지어 위헌 소송에 나설 태세이다.
 
물론 의학적 지식을 요하는 방역 정책의 결정을 민주주의적으로 행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가 유난히 방역 독재를 강력히 시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가까운 미국, 베트남부터 멀리 유럽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들이 한국보다 더 강력한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국가에서는 (가령 미국 공화당 주들의 경우) 완강한 저항이 있어왔다. 방역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시민들 간의 대립 또는 방역 정책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반대하는 시민들 간의 불편한 감정은 한국 만의 상황은 아니다.
 
미국의 뉴스위크(Newsweek)지에 지난 달 초 (11월 1일) 하버드 의대의 마틴 쿨도르프(Martin Kulldorff) 교수와 스탠포드 의대의 제이 바타차리아(Jay Bhattacharya) 교수가 공동 기고한 칼럼의 제목은 ‘파우치는 어떻게 미국을 기만하였는가?(How Fauci fooled America)’였다. 그 칼럼은 미국의 국립 알러지 및 감염질환 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Anthony Fauci) 박사가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하여 미국을 이끌어왔던 생각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파우치 박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 및 현 바이든 대통령의 수석 의학 자문의로 있으면서 사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현대 의학을 포함해 현대 학문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학계의 영향력은 미국 정치경제의 막강한 힘과 더불어 이번 코로나19 방역에 있어서도 미국이 전세계 수많은 국가들의 글로벌 스탠다드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미국의 방역 정책의 심장부를 겨냥해 비수를 날린 반대파 의사들의 목소리는 이제 미국 최대 주간 잡지 중 하나에 칼럼을 실을 정도가 된 셈이다. 하지만 그 칼럼에서 두 의사가 성토한 많은 내용들은 사실 코로나19에 대해 지난해부터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의 수없이 많은 의사들이 애초부터 지적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노인 사망율이 높은 독감이나 폐렴과 같은 일반적 호흡기 감염 질환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감염병을 인체의 자연 면역의 측면을 무시하고 마스크 강제 착용, 학교 폐쇄 등 봉쇄와 차단 위주로 몰아간 방역 정책은 큰 폐착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2년 동안 주류 권위 의학자들(특히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의사들)에 맞서 반대의견을 가진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비판이었다.
 
문제는 이런 반대 의견(different opinions), 즉 주류 방역 정책의 시각과 다른 시각을 가진 일반인과 전문가들의 의견은 그 동안 철저하게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디어 모두에서 차단, 검열당해왔다. 이들 미디어 회사들이 카르텔처럼 행동하며 코로나19에 대한 이러한 다른 의견들을 처참하게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으로 그 어떤 세력도 그러한 의견에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에서도 여야 할 것없이 모든 정치 집단들이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있어서 (서로 비난하는 모습이긴 했어도) 그 기본 프레임은 공유하고 있었다. ‘코로나19는 죽을 병이다’, 즉 ‘코로나19는 단순 감기가 아니다’라는 프레임이 그것이었다. 그 결과 이러한 프레임 바깥에 있는 목소리들(코로나19는 결국 감기일 뿐이다)은 입법기관을 비롯한 공식적인 정치 영역에서 전혀 다루어질 수 없었다. 이렇게 언론에서 뿐만아니라 정치에서도 전혀 이슈화되지도 못하는 답답한 생각과 주장을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외치고자 해도 그것조차 방역지침 때문에 허가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거의 모든 나라의 정부들이 서로 타국의 확진자 및 사망자 수 통계를 자신의 국가 통계와 비교하며 더욱더 방역정책을 강화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치 전쟁사에서 19세기 중반 크리미아 전쟁 때 전쟁 현장의 기사들이 신문과 사진을 통해 최초로 매일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의료사적으로 볼 때 병원 개혁 (hospital reforms)을 포함한 많은 사회 현상을 초래했듯이, 이번 코비드-19 사태는 인류 의료사에서 최초로 전세계 보건 정책이 소위 확진자수 통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비교됨으로써 보다 강도 높은 방역 정책들이 경쟁적으로 확산되어 나간 첫 사례가 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학자나 연구자들은 연구자금이나 신분 안전성의 이유 등으로 국가의 공식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힘든 사정이 있다. 그 결과 자유로운 학문적 토론이 일어나야 할 학계에서도 주류 학회나 저널에 코로나19와 관련해 다른 의견은 그 목소리가 실리지 못했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의료체계는 미국처럼 사보험 비율이 높지 않고 전국민을 커버하는 건강보험이 공공의료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 시장이 겉으로 볼 때는 민간에서 자유롭게 돌아가는 시장처럼 보이지만 의사들이 자신들의 자금 줄 역할을 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그리고 국가의 보건 정책에 거스르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상충되는 정책이 아닌 이상) 쉽지 않다.
 
즉 일반인들에게 정부 관료들이나 이들과 연관된 어용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이 아닌 다른 의견을 가진 연구가나 의사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처럼 매우 드물게나 전해질 수 있을 뿐이었다.
 
그 결과, 언론, 정치, 학계 그 어떤 부문에서도 일반인들은 코로나19와 관련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보다 객관적으로 비교 검토하여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지 않다. ‘사회적 합의’는 충분한 정보 제공이 이루어지고 이를 토대로 한 자유롭고 공개된 토론을 전제로 한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상황이 발생한 이래 지금까지 정부에 의해 방역 정책이 결정되고 하달되는 과정에서 한번도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총체적으로 보자면, 그저 명령하는 국가와 그에 복종하는 신민이 있었을 뿐이다. 전제 군주정이 아니라면 이러한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보와 지식의 통제를 통해 조장된 대중의 공포심을 토대로 작동하는 것이 대중 독재 사회다.
 
마치 1920년대 나치의 돌격대 청년 대원들처럼, 마치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기 어린 중국 학생들처럼, 마치 아이돌 연예인의 열성 팬들처럼,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 정당에 대한 팬덤 현상과도 같은 광기 어린 지지는 방역 정책에 대한 비정치적인 의견(가령 코로나19는 죽을 병이 아니다라는 주장)조차 ‘특정 정치 집단에 이용될 수 있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주장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만든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진영 논리는 가뜩이나 코로나19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향된 시각이 더더욱 고집 불통과 소통 거부로 고착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끝이 안보이고 빛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에 최근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바로 최근의 방역 정책이 무리수를 던지는 방향으로 가면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서히 시민들의 연대와 단합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시민들의 귀에 가 닿지 못했던 의료 전문가들의 다른 의견이 비로소 경청되고 있고 인터넷 상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바로 양날의 칼로 기능하고 있는 백신 패스포트 제도, 특히 소아, 청소년에 대한 백신 패스포트 제도가 그러한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온 계기이다. 지금 이 칼은 방역 정책의 폐부를 향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학부모, 교사, 의사 등 다양한 집단의 전문가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재 백신패스포트 투쟁은 정말 시민들의 소극적인 저항일 뿐이며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즉 ‘코로나는 죽을 병이다’라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속에서 이미 지난해부터 마스크 강제 착용에 고분고분 순순히 개인의 권리를 내려놓은 이상 시민들은 계속적인 권리 침탈의 수순을 밟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할 정도의 긴급 상황(코로나는 죽을 병이니까!)이라는데에 국민 전체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결과 방역 전체주의는 이미 예정되었던 셈인 것이다.
 
사실상,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다 고로 코로나는 죽을 병이다’라는 논리는 ‘빈부 격차는 사회악이다 고로 자본주의 시장은 사회악을 조장한다’라는 논리와 별반 다를게 없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없는 사회에서도 인간은 끝없는 탐욕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왔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던 소화기 감염 질환으로 인한 높은 사망자수는 위생의 발전 덕분으로19세기를 지나면서 대폭 감소되었지만,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호흡기 감염 질환으로 인한 노인 기저질환자의 높은 사망율은 슬프긴 하지만 의료사적으로 꾸준히 이어져온 현상이었다.
 
결국 장기화되어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은 ‘정의’를 사회적으로 혹은 의학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매우 이상주의적이고 치기어린 일차원적 사고에 기반한다. 전체론적으로 사고해보면 인간은 불완전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러한 조건 속에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즉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와 육체적 건강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비용(cost)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어떤 한 가지 요소에만 초점을 두고 이를 분절적으로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키면서) 집요하게 추구하게 되면 (가령 호흡기 감염 질환 예방이 전 사회의 지상 최대의 과업인양 집중하게 되면), 전체적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이 부작용에는 경제적 사회적 손실 외에도, 바로 정책의 목표 그 자체였던 국민의 건강 손실도 포함된다.
  
감기에 걸린다고 건강을 잃는 것은 아니다. 면역이 저하되면 건강을 잃는 것이다. 즉 감기에 안걸리겠다고 자연면역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인체의 생명 현상에 분자세포학적 개입(intervention)을 행하는 경우 개인들의 장기적인 건강에 어떠한 심대한 손실을 초래할 지는 감히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마치 특정 시장 (가령 부동산 시장)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정부가 세금 및 지원 정책을 무분별하게 변화시키는 경우 경제 전체에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이 초래할지를 정책 입안자들이 결코 가늠할 수없는 것처럼.
 
이처럼 기본적인 철학적, 의학적, 경제학적 성찰이 결여된 채 일차원적 단순 논리로 인간과 사회에 접근하는 환원론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각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가 싸워서 극복해야할 우리 안의 지적 오만이자 한계일 것이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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