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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이의 군사이슈

이념적 헤게모니 통한 사회주의 혁명의 그림자

대한민국 가치 수호 위한 진지전 전개로 ‘과정으로서 혁명’ 위험 극복해야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12-22 09:29:50

▲ 박정이
이탈리아의 사회주의 혁명전략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불법 정당 활동으로 투옥돼 수감 기간 중 역사와 정치를 분석한 <옥중수고>를 남겼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하부 구조로 경제를 중요시했으나, 그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의식, 관습, 가치관, 그리고 이런 것을 유지하고 표현하는 정치, 교육, 언론, 문화 등 상부 구조에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강조했다.
 
그람시는 자본주의가 자체 모순에 직면해 붕괴한 뒤 역사의 필연으로 사회주의가 등장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낙관론을 믿지 않았다. 그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모순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도래할 것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을 바탕으로 혁명가들이 사회주의 건설이란 목적을 설정해 놓고 의지를 갖고 행동할 때만 혁명이 달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건설에서 역사적 필연성보다 인간의 주관성과 의지력을 더 강조한 것이다.
 
그람시는 폭력·혁명적 투쟁에 못지않게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란 개념을 만들었다. 그의 견해로는 교육, 언론 매체, 법, 대중문화 따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신념, 가치, 문화적 전통, 신화 등과 같은 상부 구조적 현상이 일반 대중 속에 깊게 각인돼 기존의 권력 체계가 유지되는 한 이에 대한 계급해방투쟁은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대항 헤게모니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창출해내야만 그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봤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 혁명이 하나의 사건 혹은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해가는 하나의 유기적인 과정으로서 파악돼야 하고, 사람들의 의식 변혁은 사회의 구조 개혁과 결코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성공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런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빼앗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등 넓은 분야에 진지를 구축하고 대항 헤게모니를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람시는 혁명을 어느 날 갑자기 극적으로 찾아오는 사건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며, 그는 ‘과정으로서의 혁명(Revolution as Process)’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혁명은 어떤 급격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부에서 시작돼 극적인 변화의 시기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사회 변화의 전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질서는 혁명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신질서가 건설된 다음에 비로소 파괴되며, ‘과정으로서의 혁명’은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그 주체 세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람시의 전략론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기동전’과 ‘진지전’이다. 그에 따르면 기동전이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같은 정면 대결을 말한다. 피아를 구분할 수 있는 두 세력이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격돌하다가 한쪽이 명백하게 승리하는 식의 혁명을 뜻한다. 그람시는 이런 기동전이 먹힐 수 있는 사회는 후진 자본주의 사회라고 봤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발달이 미숙하고 정치권력이 취약하며 노동조합과 압력단체나 정당 조직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단계에서는 이런 폭력적 대결로 승부를 명쾌하게 가르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가 대중적 지지기반 위에 있고 대중조직들이 발달해 있으며, 정부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기동전은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기동전에 대비되는 진지전은 광범위한 전선에서 전개되는 혁명투쟁을 뜻하는 일종의 정치적 참호전이다.
 
그람시는 이런 진지전이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교전 방식이라고 말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에 침투해 진지를 만들고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언론,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분위기, 가치관, 학설, 예술 형태, 논리, 그리고 용어를 확산시킴으로써 진지를 하나씩 확보하는 식으로 장기적인 투쟁을 한다. 대세가 유리하게 기울었다고 판단되면 진지에서 뛰쳐나와 기동전으로 전환해 결정적으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것이 진지전 이론의 핵심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에 소개된 그람시의 진지전 방식의 사회주의 혁명 이론은 많은 사람을 현혹시켰다. 그람시의 전략론에 나오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나 ‘진지전’이라는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꿈꾸던 이들에게 획기적인 전략을 제공해줬다. 그람시의 혁명 전략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시키려면 대한민국이 딛고 있는 헌법적 질서와 대한민국을 뒷받침하는 애국적 가치관과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해야 한다고 봤다.
 
그람시의 이론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분석해보면, 한편으로는 보수·진보의 대결이 치열해지는 현상과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 민주체제가 퇴행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언론계의 진보 성향과 교육계의 전교조 및 촛불로 상징되는 진보 문화 등 이미 광범위한 분야에 진지가 구축돼 보수 우파에 대항하는 심각한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체제가 확립한 역사관과 가치관 및 대북관 등을 ‘우리 민족끼리, 자주평화 통일’이라는 진보의 관점에서 기존의 틀을 해체시키는 이데올로기적 변화가 진지의 저변에서 추진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대한민국 건국과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를 경멸하고 부정하는 목소리가 큰 흐름을 이루기 시작했다. 한반도의 통일도 베트남식 무력 통일이나 독일식 급격한 일방적 합병이 아닌 남북 간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통한 합의에 의한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주장하기도 한다(백낙청). 이런 현상은 일부 사회단체나 정치권, 그리고 언론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좌파가 진지전에서 승리해 사회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징후로, 우리는 주변에서 지금 그람시가 주장한 ‘과정으로서의 혁명’이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보수(conserve)해야 할 가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1948년 대한민국은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건국했다. 건국 이후의 과정은 건국된 대한민국을 지키고 근대 국민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이었다. 이것이 호국과 근대화,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이었다. 한국 보수주의는 건국 이념과 호국 정신, 그리고 근대화 정신과 민주화 역사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 한국 보수주의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수호하고 보수하는 이념이며 애국과 안보는 보수주의자들의 중요한 덕목이다.
 
대한민국이 택한 헌정적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다수의 통치이념이 소수 독재보다 우월하다는 가치를 지킨다. 또 개인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권, 재산권 등은 침해받을 수 없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아울러 시장 자유주의야말로 가장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경제 체제이다. 현 상황에서 이를 보증하는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헌신이 필요하며 국가는 현실적인 실체를 통해서만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담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장기적인 생활 속의 진지전을 적극 전개해 현재 산재해 있는 ‘과정으로서의 사회주의 혁명’ 위험을 극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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