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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 본아트랩

“경력 단절 예술인들에게 재기 기회 만들어주죠”

예술활동과 결혼생활 양립 위한 해결책 모색 단체

기사입력 2021-12-31 00:05:00

 
▲ 본아트랩은 경력단절 예술인들이 다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술인 단체다. 사진은 왼쪽부터 조은영 본아트랩 책임연구원. 배우·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는 이은미 씨. 서희원 본아트랩 대표, 디자이너 박상대 씨. [사진=남충수 기자]. ⓒ스카이데일리
 
“문화 예술 기획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 일정을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알던 예술인들도 비슷한 과정에서 경력 단절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들의 재기를 돕기 위한 거점 공간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최근 결혼·출산 등으로 인해 경력이 끊기고 일터로 복귀하지 못하는 경력 단절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경력 단절을 우려해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풍조로 인해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경력 단절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예술인들도 경력 단절 문제를 겪고 있다. 경력 단절로 인해 활동 무대를 찾지 못하는 예술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단체가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스카이데일리가 서울시 도봉구에 위치한 본아트랩 사무실을 찾았다.
 
경력 단절 예술인에 필요한 것은 기회…자연스러운 현장 복귀 유도
 
본아트랩은 경력단절 예술인들이 다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술인 단체다. 경력단절 예술인들에게 다양한 활동 기회를 제공해 그들의 재기를 돕는다. 이를 위해 경력단절 예술인이나 신진 예술인들을 위한 기획 교육도 제공한다. 조은영 본아트랩 책임연구원(38)이 예술인 지원단체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예술인들은 자기 작업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에는 구조가 많이 바뀌어서 지원 사업을 통해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한번 경력 단절이 되면 어떤 지원 사업을 하는 지도 모르고 기획서를 쓰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요. 전시하는 사람이라면 대관 시스템이나 주기 같은 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는데 한번 쉬면 물어볼 데도 없고 이렇다 할 네트워크도 없어요.”
 
본아트랩 구성원들은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다들 경력 단절을 한 번씩 겪은 경우가 많다.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이은미(38) 씨도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다.
 
“육아 때문에 연습에 참여하기도 어려워지고 촬영을 할 때도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져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 같이 일을 했던 극단을 찾아가면 요즘 극단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데가 별로 없거든요. 갑자기 극단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육아를 한다고 해서 사정을 봐주는 데가 없는 거죠.”
 
▲ 경력 단절 문제를 겪던 디자이너 박상대 씨는 본아트랩을 통해 현장 복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사진은 인터뷰 하는 박상대씨. ⓒ스카이데일리
 
그래픽·편집 디자이너로 7년 동안 근무한 박상대 씨(38)도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다. 박 씨는 한 번 경력 단절이 되면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일을 안 하면 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기업에 취업하려고 해도 포트폴리오가 이미 다 옛날 거잖아요. 요즘 트렌드에 맞춘 포트폴리오를 다시 채워야 하는데 쉽지 않고요. 나이가 많은 것도 문제가 돼요.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사람들 따라가기도 힘들고 기업에서도 젊은 사람들 위주로 뽑는 경향이 있어요.”
 
“경력이 단절된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긴 한데 대부분 여성을 대상으로 해요. 요즘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육아를 하는 남자가 비교적 적잖아요. 경력 단절 남성의 어려움도 있는 거죠.”
 
박 씨는 도봉구에서 운영하는 지역 특성화 예술 교육 사업 ‘삭스클링’에 필요한 디자인을 담당했다. 경력 단절 상태였던 박 씨는 당장의 경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고 포트폴리오에 최근 작업물을 추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본아트랩은 도봉구 예비문화도시 선정 축하 공연도 담당했다. 이 공연에 경력 단절 예술인이 참여하고 연결돼 있던 전통연희 팀도 공연 기회를 잡았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공연할 기회가 좀처럼 없어요. 공연에 참여한 사람들이 경력 단절 예술인들한테까지 기회가 오는 경우가 드물어요. 공연 후기를 봤는데 기회도 기회지만 본인들이 가장 즐겼던 것 같아요. 예술인들은 예술을 하는 것 자체를 행복해해요.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경력을 쌓는 것도 좋지만 예술을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이 낳으면 다 끝난다는 예술인 많아…인식 개선·지원 대책 필요”
 
서희원 본아트랩 대표(38)는 경력 단절 예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는 본인의 능력이 떨어지지 않는 데도 일을 쉬었다는 이유로 겁을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거나 아파서 일을 쉬었다고 해도 그전에 했던 경력이 있고 다들 프로이기 때문에 감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아요. 그런데 경력 단절이 되면 다들 자존감이 떨어져요. 제가 아는 친구 중에 대통령상 받은 전통 연희 전수자가 있는데 애를 낳고 나니까 자기는 이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인간문화재급인데도 그런 말을 해요. 보고 있으면 답답하죠.”
 
“이런 예술가들은 케어만 잘해주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 알아서 해요. 내가 있으니까, 본아트랩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한마디 해 주는게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물론 자생할 수 있는 기획 수업 같은 것도 하고요.”
 
본아트랩은 경력 단절 예술인들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지만 사업 이름에 경력 단절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경력 단절이라는 딱지가 붙은 시점에서 이미 활동이 제한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이나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경력 단절 예술인들이 만들었다고 하면 그게 바로 프레임이잖아요. 그런 티를 내지 않고 필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평범한 문화예술 기획사처럼 공연도 하고 전시도 열고 하는 거죠. 앞으로는 종류를 더욱 늘려서 경력 단절 예술인들이 복귀할 때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면 좋겠어요.”
 
▲ 서희원 본아트랩 대표(사진)는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카이데일리
 
본아트랩은 사업 규모가 커지면 각 지역마다 거점을 만들고 경력 단절 예술가를 지원할 계획을 하고 있다. 거점에서는 경력 단절 예술인 지원과 보육 지원을 같이 할 계획이다.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른데 모두를 다 케어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본아트랩을 거친 사람들이 자신의 크루를 만들고 지역마다 뿌리내려서 각자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거예요.”
 
“아이를 가졌을 때 일을 쉬는 것도 문젠데 그 아이를 돌보는 것도 문제잖아요. 예술인 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반디돌봄센터가 대학로에 있어요. 그런데 애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맡긴다고 잘 지내지 않잖아요. 지역마다 그런 거점을 만들고 예술인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맡길 수 있게 하면 계속 보는 사람들하고 있으니까 더 편하게 맡길 수 있는 거죠. 아이와 가까운 곳에서 연습할 수 있게 연습실도 만들고요.”
 
본아트랩은 여기에 더해 아이들은 예술 교육을 받고 부모들은 예술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예술인들이 모이면 다들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잖아요. 미술 하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미술 가르쳐 주고 배우들이 연기도 가르쳐 주고 하다보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들어요. 이걸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가 생기면 마음 편히 예술을 즐기기 쉽지 않아요. 아이를 맡길 사람을 찾아야 하고 볼 때도 아이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지요. 부모가 되면 아이 교육부터 신경 써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고요. 부모들이 마음에 안 찔리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경력 단절 예술인 지원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현재 예술인 지원 사업 혜택이 예술인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저희 단체도 지원 연장 평가를 할 때 기준이 정직원이 몇 명이냐 이런 게 있어요. 그런데 예술인이 몇 시간을 일하는지, 정시 출퇴근을 하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9시부터 6시까지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표는 맞지 않아요. 육아를 하면 더욱더 그렇고요. 평가 지표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봐요.”
 
청년에 집중된 지원 정책도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청년 예술가를 육성하는 것은 좋지만 청년만 지원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극단은 10년 전만 해도 역사가 깊은 극단이 있고 선배들이 후배들을 길러주고 그 사람들이 커서 다시 후배를 이끄는 구조가 잘 돼 있었어요. 그런데 청년들이 지원을 많이 받으니까 졸업반 애들이 모여서 하는 졸업 공연 같은 것만 지원이 되는 거예요. 그럼 당연히 예술인들의 수도 줄고 대극장에서 하는 퀄리티 있는 공연들도 줄어들게 되죠.”
 
“또 한가지 문제는 청년 지원을 받다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청년이 아니라 여성으로 분류가 돼요. 청년 지원 대상에서는 빠지는 거죠. 스무 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를 겪는 나이대는 청년층인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서 대표는 이런 식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예술과 결혼이 양립할 수 없는 현실 구조가 속히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아직도 예술인 중에는 계속 예술을 하고 싶으면 결혼을 절대 하면 안 되고 결혼을 해도 애는 낳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희는 예술인들이 이런 걱정 없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런 세상이 빨리 오도록 저희도 더 열심히 노력해야죠.”
 

 [양준규 기자 / sky_ccastle , jgyang@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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