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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신묘년에 신라·가야를 침공해 백제까지 갔던 왜
세칭 신묘년 기사의 일본식 해석은 오류
백제계 응신, 日최초국가 야마토왜국 세워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1-12-29 08:40:08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세칭 신묘년 기사로 알려져 있는 5년 을미년 기사의 일본식 해석은 다음과 같다.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이라 조공을 가져왔는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가야·신라를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
 
이 문구의 해석에서 중요한 건 깨진 두 글자 □□가 무슨 글자인지다. 『삼국사기』에서는 참고기록을 찾을 수 없었지만 일본궁내청에서 탈출해 나온 『고구리사초략』에서는 □□이 말침(末侵) 또는 갈침(曷侵)이라는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해석은 아래와 같다.
 
“백잔과 신라는 옛날부터 (고구리의) 속민이라 조공을 바쳐왔고 왜는 신묘년(호태왕 즉위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 (조공을) 가져왔다. (8월에 고구리가) 백잔을 깨고 말갈이 신라를 신민으로 삼기 위해 침략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실제로 신묘년에 위 일본식 해석과 비슷한 내용의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내용인지 찾아보도록 하겠다.
 
『고구리사초략』에 “8년(391) 신묘(辛卯) 4월, 왜가 가야·신라를 침공하더니 백제의 남쪽에까지 이르렀는데도 진사(辰斯)는 가리(佳利)와 함께 궁실에 사치해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특이한 새를 기르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더니 나라 서쪽의 큰 섬으로 피해 들어갔고 왜가 물러나자 돌아왔다가 다시금 횡악(橫岳)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비웃음을 걱정해 사슴을 잡는다는 핑계를 댔으니 그의 기세의 허약함이 이토록 심했었다”는 기록이다.
 
위 문구는 391년(신묘) 4월의 기록으로 호태왕비문의 세칭 신묘년 기사와 내용이 아주 흡사하다. 그래서 얼른 보면 세칭 신묘년 기사의 일본식 해석이 옳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 산서성 남부 임분시 북부에 위치했던 신라의 금성. [사진=필자 제공]
 
391년 신묘년 6월은 호태왕이 즉위한 해이기도 하지만 선황인 고국양제가 5월에 붕어한 해이기도 하다. 왜가 신라·가야를 침공해 백제의 남쪽에 이르렀을 때는 신묘년 4월로 고국양제 재위 때인지라 호태왕의 공적비에 새겨질 수 없는 사건이다. 게다가 고구리와 직접 관련도 없는 신라와 백제에서 일어난 사건을 고구리비에 새겼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렇듯 호태왕 즉위를 전후해 왜의 신라 침략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예전의 왜는 지역적으로 가까운 신라의 동남쪽 변방을 노략질하는 왜구 수준에 불과했지만 갈수록 강열해져 아래 두 기록처럼 때로는 신라의 도성까지 포위했다가 쫓겨 돌아가곤 했다.
 
“기림 이사금 37년(346), 왜의 병사가 갑자기 풍도(風島)에 이르러 변방의 민가를 노략질했고, 또 진군해 금성(金城)을 포위하고 급하게 공격했다. (생략) 적들은 식량이 떨어져 물러가려 하니 강세에게 날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도록 명해 쫓아버렸다.”
 
“내물 38년(393) 여름 5월에 왜인이 와서 금성을 포위하고 닷새 동안 풀지 않다가 물러가자 임금이 용맹한 기병 200명을 먼저 보내 돌아가는 길을 막게 하고 보병 1000명을 또 보냈다. 독산(獨山)까지 따라가 양쪽에서 협공해 크게 쳐부수니 죽이거나 생포한 자가 매우 많았다.”
 
왜와 지역적으로 떨어져있던 백제는 왜의 침공을 거의 받지 않았다. 오히려 상호간에 우호관계를 맺고 교류를 지속하다 백제계 응신(応神)이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인 야마토(大和)왜를 세워 왕이 되기에 이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왜(倭) 대신에 왜국(倭國)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6년(397) 여름 5월, 아신왕이 왜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태자 전지(腆支)를 볼모로 보냈다.” 볼모로 보내진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지태자가 훗날 백제로 돌아와 아신왕의 뒤를 이으니 두 나라는 밀착우호관계로 들어갔다.
 
전지는 405년에 아신왕이 죽자 왕의 둘째동생 훈해(訓解)가 정사를 대리하며 전지태자의 귀국을 기다렸는데 막내동생 첩례(碟禮)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됐다. 왜왕이 100명의 병사로 전지를 호위해 귀국하다 바다 가운데의 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백성들이 첩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이해 왕위에 오르게 했다.
 
이처럼 백제와 한 몸이나 다름없었던 야마토왜국은 호태왕 시절 고구리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신라를 노골적으로 침공하고 백제의 아신왕 역시 호태왕에게 도전장을 던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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