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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미추왕의 즉위를 승인한 옥모

옥모는 신라-고구려 왕실의 공통 분모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05 09:43:46

 
▲ 정재수 역사작가
신라 석씨왕조는 8대 벌휴왕부터 16대 흘해왕까지 대략 170여년간 지속됐다. 이 시기는 신라 중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중간에 김씨왕조의 시조인 13대 미추왕이 갑자기 들어간다. 특히 당시는 석씨왕조의 권력기반이 확고히 구축된 시기여서 미추왕의 즉위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미추왕은 어떻게 해서 왕이 된 걸까?
 
옥모, 신라왕실의 중심
 
미추왕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성이 있다. 바로 옥모(玉帽)이다. 아버지는 김알지의 후손인 구도(仇道·김씨)이고, 어머니는 조문국(召文國·경북 의성) 왕녀인 운모(雲帽)이다. 옥모는 벌휴왕의 며느리가 되면서 석씨왕실과 인연을 맺는다.
 
벌휴왕에게는 2명의 아들이 있다. 첫째 골정(骨正)태자와 둘째 이매(伊買)이다. 옥모는 골정태자의 처가 돼 2명의 아들을 낳는다. 그런데 골정이 병사(病死)하는 바람에 졸지에 과부가 된다. 이때 벌휴왕은 구도를 견제하기 위해 옥모가 낳은 골정의 아들을 제쳐두고 대신 이매의 아들 내해왕(10대)에게 왕위를 넘긴다. 그러나 내해왕이 죽으면서 옥모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옥모는 두 아들 조분왕(11대)과 첨해왕(12대)을 연거푸 옹립하며 왕실권력의 중심에 선다.
 
옥모는 조선왕조의 인수대비와 비슷하다. 인수대비는 세조(7대)의 장자 의경세자가 병사하는 바람에 두 아들(월산군·자을산군)을 데리고 사가로 물러났다가 세조의 차자 예종(8대)이 단명하면서 성종(9대·자을산군)의 즉위와 함께 화려하게 왕실로 복귀한다. 다만 인수대비는 폐비윤씨를 죽게 만든 일로 훗날 손자인 연산군(10대)에게 죽임을 당한다.
 
고구려왕과 인연을 맺은 옥모
 
▲ 고구려 감신총(평안남도 남포)의 ‘중천왕(좌)-옥모(우) 인물상’ 벽화 모사도. [사진=필자 제공]
    
그러나 옥모는 인수대비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옥모는 신라를 떠나 고구려 12대 중천왕과 함께한다. 『고구려사략』에 따르면, 중천왕은 옥모를 위해 계림성모사(鷄林聖母祠)를 짓고 옥모의 초상화를 걸어 놓는 등 깊은 애정을 표시한다. 특히 옥모의 조상인 세한, 아도, 수류, 욱보, 구도 등 김씨 5명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도 지낸다.
 
더욱이 『고구려사략』은 옥모의 이복동생 미추왕이 첨해왕(옥모의 아들)의 뒤를 있기 전에 옥모로부터 추인 받은 사실을 전한다. 이때 중천왕은 미추왕에게 ‘신라국 황제동해대왕우위대장군’의 작위를 수여한다. 미추왕은 옥모의 승인을 통해 신라왕으로서의 정통성을 부여받는다.
 
특히 『고구려사략』은 옥모가 중천왕과 연을 맺어 아들 달가(達賈)를 낳은 사실도 전한다. 달가는 고구려에서 숙신(肅愼)을 정벌한 공로로 안국군(安國君)에 봉해지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조카뻘인 14대 봉상왕에게 자결을 명받고 갑자기 죽는다. 달가의 표면적인 죄는 왕권 도전이지만, 실상은 달가가 신라왕실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달가는 돌고(咄固)를 낳는데, 돌고 역시 봉상왕에게 반역죄로 죽임을 당한다. 훗날 돌고가 낳은 아들 을불(乙弗)이 고구려의 왕위를 잇는다. 우리가 잘 아는 소금장수 출신의 15대 미천왕이다.
 
이후 옥모는 신라로 돌아와 첨해왕 때에 사망한다. 『신라사초』<첨해니금기> 기록이다. ‘옥모(玉帽)태후가 해택에서 죽어 내해릉(奈解陵)에서 장례를 치르고 골정릉(骨正陵)에 분골(分骨)했다. 처음에 운모(雲帽·조문국 묘덕왕 딸)가 구도(仇道)와 사통해 태후를 낳았는데 기이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했다. 꿈에 옥야(玉耶)가 금화(金花)를 낳는 것을 보아서 옥모(玉帽)라 이름했다. 성장하면서 아름답고 가무(歌舞)에 능해 열여섯(16세)에 가선(歌仙)으로 나아가 월가(月歌)를 행했다. 선도(仙徒)들이 옥모를 흠모했는데 골정태자가 집으로 데려가 행(幸)해 임신했다. 이에 옥모가 처로 삼아주기를 청했으나 신분이 미미해 이루지 못하자 스스로 불타 죽으려했다. 벌휴제(伐休帝)가 골정에게 혼인을 명하고 조분제(助賁帝)를 낳았다. 또 내해제(奈解帝)를 섬겨 니금(첨해제)을 낳았다. 태후로 존숭되어 조문국 유신(遺臣)들을 힘껏 도왔다. 당시 사람들이 태후를 마정(馬精)이라 불렀다. 춘추 74세다.’
 
 
▲ 옥모와 후손 계보도. [자료=필자 제공]
    
옥모는 신라와 고구려 왕실의 공통 분모로 「삼국사기』가 기록하지 않은 또 한 분의 위대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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