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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와 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35>

은(殷)·주(周)민족 어느 나라 민족인가

한족은 우리와 관련 있는 민족이나 역사왜곡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08 10:25:53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지나(支那)와 일본의 사서(史書)들을 보면 우리가 유라시아와 중원(中原)의 주인임에도 서기전 3세기부터 9세기 중엽까지의 1200년간에 흉노(匈奴), 선비(鮮卑), 유연(柔然), 돌궐(突厥), 위굴(回鶻), 토번(吐藩)등의 유목민이 강대한 왕국을 건설해서 한족(漢族)의 왕조에 위협이 되어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10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1000년 동안에는 북아시아와 지나(支那)의 정복왕조(征服王朝)인 요(遼;거란족, 契丹族), 금(金;여진족, 女眞族), 원(元;몽골族) 그리고 청(淸;만주족, 滿州族)이 지나(支那)에 침입하여 흥망을 거듭했다.
 
위의 기마민족들은 모두 동이족(東夷族)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들은 지나(支那)의 역사가 아니고 우리의 역사에 포함시켜해야 할 역사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우리가 대륙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왜곡한 역사를 가지고 이들을 이민족(異民族)으로 분류하여 이들을 오랑캐라고 하며 단군(檀君)도 이민족으로 분류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국민은 이를 모르고 있다. 이들은 우리와 무관한 이민족(異民族)이 아니다. 환국시대부터 축제 때 술과 떡을 나눈, 우리와 관련이 있는 민족들이다.
 
그리고 은(殷)나라도 주(周)나라도 지나(支那)의 한족이 세운 나라들이 아니다.
 
은(殷)은 상(商)이라고도 하는데 <은(殷)>이라는 국호(國號)를 쓴 것은 도읍의 지명을 따른 것으로 <상(商)>이라는 국호보다 더 알려진데서 <은(殷)>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은(殷)>의 시조 설(계, 契)도 한족이 아닌 우리 동이족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은(殷)>의 시조를 설(契)로 하며 지나(支那)역사로 하기 위해 호적도 고치나 설(契)은 그 부(父)가 제곡(帝嚳)이고 모(母)가 간적(簡狄)으로 한족(漢族)이 아니고 우리의 한민족(韓民族)인 것이다.
 
오늘은 은(殷)과 주(周)를 세운 그 주인공도 한족(漢族)이 아닌 한민족(韓民族)으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본기(史記本紀)의 주장이 허구(虛構)임을 살펴보고자한다.
 
은(殷)과 주(周)를 세운 주인공은 모두 한민족(韓民族)이었다.
 
이미 살펴온 바대로 실재(實在)가 확인된 지나(支那)의 왕조(王朝)는 은<(殷)>으로서 서기전 1600년경부터 서기전 1100년 전후(前後)까지 황하 중류(中流)에서 번영한 나라이다.
 
은(殷)의 시조는 설(契)이고 동이족인 제곡(帝嚳)의 아들인데도 이를 숨기고 허황된 말로 그 모(母)인 ‘간적(簡狄)등 세 사람이 목욕을 갔다가 제비가 알을 떨어트리는 것을 보고 간적(簡狄)이 이를 삼켜 임신해 낳았다’고 기록해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역사시대가 된 이 은(殷)시대에는 갑골문자(甲骨文字)에 의해서 은족(殷族) 이외 50여 씨족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후에 나라를 세웠는데 이들이 모두 진출 방향을 보면 낙읍(洛邑;낙양洛陽)이나 호경(鎬京;후에 장안長安), 현재의 서안(西安)으로부터 확대하고 있음은 이곳이 실크로드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자(漢字)의 조형(祖型)이라 할 수 있는 갑골문자(甲骨文字)는 적어도 서기전 1500년경에 발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2004년 7월에 은(殷)보다 먼저 건국한 하(夏)의 궁전적(宮殿跡)에서 발굴된 문자는 은(殷)갑골문자에서 나온 것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고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이 발표하였다.
 
당시 나라들이 이곳에 집결된 이유는 이곳이 교역거점(交易據點)이고 각지의 물산(物産)이 시장에 집결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은(殷)과 주(周)와 서주(西周)도 서기전 1100년~서기전 770년에 이곳으로 진출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역방면으로 부터 황하와 위수(渭水)연안을 따라 동진(東進)해온 한민족(漢民族)이나 부족(部族)이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는 학자들의 학설이 여러 종류가 있어서 흥미진진하나 전혀 불명하다 말하고들 있다.
 
한민족(漢民族)의 선조(先祖)에 대하여 옥스퍼드 대학의 박스돈 교수는 한민족의 선조는 다리무분지(盆地)에 살았다고 하는가 하면, 프랑스의 학자 라크배리는 바빌로니아에서 온 ‘셈족’의 일종이라 하고 있고, 독일의 학자 리이토 휀은 백인의 고향이라 말하는 이란이 한족(漢族)발생지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은족(殷族)이 황하중류역(黃河中流域)에서 하류역(下流域)에 걸쳐서 씨족연합체를 형성하기 시작할 무렵 지나(支那)각지에 각각 선주민이 있었던 것이 알려지고 있다. 이는 환국시대 환족이 이미 정주하고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以上은 杉山徹宗,「眞實の中國四千年史」. 35면~55面外 書冊 參照,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주(周)나라 시조(始祖)는 동이족 후직(後稷)이 다
 
사마천은 한제국시대(漢帝國時代), 황제로부터 요순(堯舜)을 거쳐 하(夏), 은(殷), 주(周)로 각기 역사 <사기(史記)>를 만들었으나 그가 당시의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허구의 거짓역사를 쓰고 왜곡한 것임을 주(周)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주(周) 시조(始祖)는 후직(後稷)인데도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주(周)나라 후직(後稷)은 이름이 ‘기(棄)’이고 그 모(母)는 원래 유태(有邰)씨의 딸로 강원(姜原)이다.
 
여기서 ‘기(棄)’라는 이름은 강원(姜原)이 달이 차서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가 불길하다고 여겨 좁은 골목에 버렸는데 말과 소가 골목을 지나가면서 아이를 피하여 밟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숲속에 버렸지만 마침 산속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었다.
 
이에 다른 곳으로 옮겨 도랑의 얼음에 버렸으나 새들이 날아와 날개로 아이를 덮고 깃을 깔아주었다. 그러자 강원(姜原)은 신기하게 여겨 아이를 양육하였다. 때문에 처음 아이를 버리고자 했기 때문에 이름을 ‘기(棄)’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周)나라도 한족(漢族)나라가 아니고 우리 동이족(東夷族) 나라라는 것이 증명된다.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는 후직(後稷)의 어미 강원(姜原)이 제곡(帝嚳)의 원비(元妃)였다고 주장한다. (姜原爲帝嚳元妃).
 
여기서 믿을 수 없는 것은 사마천은 후직(後稷)의 출생에 대하여 강원(姜原)이 들에 나갔다가 거인(巨人)의 발자국을 보고 마음이 혼연히 끌리어 그 발자국을 밟고 싶어져 거인의 발자국을 따라갔는데 몸에 태동이 있어 아기를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마천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주왕실(周王室)이 그들의 한족(漢族)의 시조라 하는 황제와 혈연적 관련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설령 황제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헌원(軒轅)황제는 한족(漢族)이 아닌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며 
 
지나(支那)는 대국몽상주의(大國夢想主義)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나라이다. 그들의 역사는 상고사가 없고 역사도 4000년 밖에 아니 되는데도 마치 상고시대부터 있었던 것 같이 우리의 역사 조작과 왜곡을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나(支那)의 역사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주변 이민족에 대한 침략과 말살(抹殺), 국내에 있어서는 왕조가 교체할 때마다 수십만, 심할 때는 수천만 단위로 반복해서 대학살을 자행한 참으로 전율(戰慄)의 역사가 지나(支那)4000년의 역사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역사만이 아니라 지나(支那)의 역사들도 제대로 알아야 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다. 지난날 수천 년 역사에 있어서 그들이 어떻게 침략하고, 지배했으며 약탈, 학살, 차별, 학대(虐待)를 반복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들의 억지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지나(支那)역사는 대집단의 민족도 무수하게 절멸(絶滅)시키고 있기에 대만의 역사평론가인 백양(柏楊)은 지나(支那) 4000년 역사와 문화에 관해서 “지나사(支那史)는 4000년의 역사와 박해의 역사이며, 지나(支那)문화는 인간에 대한 존엄과 포용력이 전혀 결여되어 있다”고 분석하고 있을 정도다.
 
그들이 말하는 한민족(漢民族)의 시조(始祖) 헌원황제(軒轅黃帝)는 지나(支那) 56민족 16억 인구의 공통의 조선(祖先)으로 하고, 여진족(女眞族), 금조(金朝), 몽골족의 원조(元祖), 한족의 명조(明朝), 만주족의 청조(淸朝)는 그 어느 것도 자부심을 가지고 매해 제전(祭典)을 열며 보호해 왔다고 하며 이 전통을 계승해서 엄숙히 예배해야한다며 허구역사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다.
 
지나(支那)의 정부가 이에 의해서 현재 56민족은 동일의 형제를 갖는 형제와 같은 것이라 말하고 동시에 소수민족압박의 구실로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漢民族) 이외의 국내 55민족 중, 이를 받아들이는 민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우리도 역사를 보는 대립적 관점보다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산다.
 
(以上은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정희철, [중국은 없다]. 반재원,[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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