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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삼한정벌의 주체는 일본열도 왜가 아닌 한반도 부여백제다

신공왕후 삼한정벌의 역사적 실체성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2-18 09:03:43

 
▲ 정재수 역사작가
 일본학자들이 ‘역사의 신(神)’으로 떠받드는 기록이 『일본서기』<신공황후기>에 나온다. 4세기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방을 정벌했다는 소위 ‘신공왕후 삼한정벌론’이다. 신공왕후는 일본학자들조차 그 실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다소 불명확한 인물로 2세기 일본 북규슈일대에 소재한 야마대국의 여왕 비미호(히미코)를 모델로 하고 있다. 
 
신공왕후는 가야계의 중애왕(14대)과 부여(백제)계의 응신왕(15대) 사이를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 <신공황후기> 기록은 크게 둘로 나눈다. 전반기는 일본열도 기록이며, 후반기는 한반도 기록이다. ‘삼한정벌론’은 후반기에 포함된 기록으로 기년은 신공왕후 섭정 49년이다.
 
신공왕후 삼한정벌 『일본서기』 기록
 
『일본서기』<신공황후기>이다. ‘섭정 49년 3월, 황전별, 녹아별을 장군으로 삼았다. 구저 등과 함께 군사를 준비해 건너가 탁순국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신라를 습격하려 하였다. 이때 누군가가 말하길 “군사가 적으면 신라를 깨뜨릴 수 없다. 다시 사백, 개로를 보내 군사를 늘려줄 것을 요청해라” 했다. 
 
그래서 목라근자(木羅斤資)와 사사노궤[이 두 사람은 그 성을 모르는 사람으로 목라근자는 백제장수다-필자 註]에게 명해 정병을 이끌고 사백, 개로와 함께 가게 했다. 탁순국에 모두 모여 신라를 공격해 파했다. 이어서 비자발, 남가라, 녹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등 7국을 평정(平定)했다. 거듭 군사를 서쪽으로 이동해 고해진에 이르러 남만 침미다례를 빼앗아(屠) 백제에 줬다. 이에 그 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역시 군사를 이끌고 왔다. 비리, 벽중, 포미, 지반, 고사 읍은 저절로 항복했다. 이리하여 백제왕 부자, 황전별, 목라근자 등이 같이 의류촌(지금 주유류지라 한다)에서 만났다. 서로 보고 기뻐했다. 두터운 예로써 보냈다. 천웅장언(千熊長彦)이 백제왕과 더불어 백제국에 이르러 벽지산에 올라 맹세했다. 또 고사산에 올라 반석 위에 같이 앉았다. 그때 백제왕이 맹세하며 말하길 “만일 풀을 깔고 앉으면 불에 탈 우려가 있고 또 나무를 잡고 앉으면 물에 떠내려갈 우려가 있다. 고로 반석에 앉아서 맹세하면 오래도록 썩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후 천추만세에 끊임없고 다함없이 항상 서번을 칭하며 춘추 조공하겠다” 했다. 천웅장언을 데리고 도성에 이르러 후하게 예우를 더하고 구저 등을 딸려 보냈다(원문 생략).’
 
섭정 49년은 249년 아닌 369년
 
신공왕후의 섭정 49년은 몇 년도일까? 『일본서기』 기년을 적용하면 편년은 서기 249년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주갑(120년)을 인상하며 369년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런데 369년의 단서가 『신라사초』에 명확히 나온다. <신공황후기>기록의 천웅장언(千熊長彦)이 <내물대성신제기> 기록에도 등장한다. ‘7년 왜신 웅언(熊彦)은 잘 생기고 말을 잘했다. 아이(阿尒)가 상통해 그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국인이 이반해 우리에게 또는 고구려에게 귀속했다(倭臣熊彦美而善辯 與阿尒相通 多聽其言 故國人異反 或歸于我 亦歸于麗).’ 『신라사초』의 내물왕 7년은 서기 383년이다. <내물대성신제기>의 왜신 웅언은 <신공황후기>의 천웅장언이다. 서기 369년 삼한 정벌에 등장하는 천웅장언(웅언)이 14년 후인 383년 백제 아이부인(신라출신 근구수왕 처)과 상통하며 백제의 국정을 농단한다.
 
삼한정벌의 역사적 해석
 
신공왕후의 삼한 정벌은 엄밀히 따지면 목라근자(木羅斤資)의 삼한 정벌이다. 목라근자는 먼저 경상남도로 진격해 가야 7국을 평정(平定)한다. 비자발(경남창녕), 남가라(경남김해), 녹국(경남영산), 안라(경남함안), 다라(경남합천), 탁순(경남창원), 가라(경남고령) 등이다. 이어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고혜진(전남강진)에 상륙해 침미다례를 도륙(屠戮)낸다. 침미다례는 전남 영산강 유역의 20개 마한연맹 왕국인 신미제국이다. 이어 북쪽으로 기수를 돌린다. 이때 비리(전북옥구), 벽중(전북김제), 포미(전북정읍), 지반(전북부안), 고사(전북고부) 등 전북지역 마한 5개 소국이 목라근자의 위용에 눌려 항복(降伏)한다. 이 시기 근초고왕이 태자인 아들 근구수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온다. 목라근자와 근초고왕 부자는 의류촌(전북부안·주류성)에 만나 두터운 예를 쌓는다. 이후 근초고왕 부자는 천웅장언과 함께 벽지산(전북김제·모악산)과 고사산(전북고부·두승산)에 올라 연거푸 맹세를 한다. 여기까지가 목라근자의 삼한정벌 전모이다.
  
▲ 목라근자의 삼한정벌 루트. [사진=필자 제공]
 
그런데 이 사건을 해석하는 한일사학계의 시각은 정반대이다. 가장 큰 차이는 백제장수 목라근자를 보내 삼한정벌을 단행한 주체가 누구냐는 문제이다. 일본 학자는 왜의 신공왕후로 보고, 한국 학자는 백제 근초고왕으로 본다. 기존 ‘신공왕후 삼한정벌론’에 대응하는 새로운 해석의 ‘근초고왕 삼한정벌론’이다.
 
삼한정벌 주체는 부여백제(한반도 부여기마족)
 
하지만 목라근자 삼한정벌의 주체는 왜의 신공왕후도 백제의 근초고왕도 아니다. 한반도 부여기마족인 ‘부여백제’이다. 이들은 대륙 부여기마족에 기인한다. 4세기 초반 대륙 요서지방에서 한반도 서쪽지방으로 백가제해(百家濟海)하며 스스로를 ‘백제’라 칭한 부여백제이다. ‘구태백제’ 또는 ‘삼한백제’라고도 한다. 대륙 부여기마족은 위구태(백제 세 번째 시조)를 시조로 하는 서부여 집단이다. 서부여는 2세기 초인 서기 122년, 부여왕족 출신 위구태에 의해 서자몽(하북성 청더)에서 건국되며 이후 요서지역으로 내려와 대방세력(하북성 노룡현)과 녹산세력(요녕성 건창현)으로 분리된다. 이 중 대방세력이 한반도로 백가제해하며 수도를 거발성(居拔城·충남공주)에 정하고 마한 전체를 일거에 흡수하며 한반도 서남부 일대를 장악한다. 바로 369년 단행된 부여백제 목라근자의 삼한정벌이다.
 
특히 『삼국사기』가 기록한 369년 당시의 근초고왕 행적을 보면, 근초고왕은 고구려 고국원왕과 수곡성(황해신계)과 치양성(황해배천)에서 전투 중이다. 이때 부여백제는 막고해를 보내 근초고왕과 연합전선을 펴서 두 곳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다. 그리고 근초고왕은 부여백제 장병들과 전리품을 나눈 뒤 곧바로 남쪽으로 내려와 뒤늦게 목라근자 군대에 합류한다. 이는 삼한정벌에 임하는 근초고왕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초고왕은 삼한 정벌의 주체가 아닌 객체이다. 또한 근초고왕은 목라근자의 삼한 정벌이 완료된 직후 벽지산과 고사산에 올라 맹세한다. 맹세의 대상은 당연히 신공왕후가 아니다. 부여백제 왕이다. 근초고왕의 맹세는 부여백제에 대한 일종의 속국 조인식이다.
 
목라근자의 삼한정벌은 근초고왕의 작품이 아니다. 근초고왕은 단지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얹은 말 그대로 손님이다. 이는 『삼국사기』가 부여백제 존재를 아예 삭제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까닭으로 같은 시기 활동한 근초고왕의 업적에 삼한정벌을 포함시키는 어정쩡한 해석이 만들어진다.
 
또한 『일본서기』가 삼한 정벌의 주체를 신공왕후로 설정한 것도 잘못이다. 그럼에도 『일본서기』<신공황후기>의 삼한 정벌 기록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이 시기 『일본서기』의 한반도 기록은 모두 부여백제의 역사 기록이기 때문이다. 훗날 부여백제는 서기 396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처참히 깨진 뒤 일본 열도로 망명하며 야마토(일본열도 부여기마족)로 재탄생한다. 이런 연유로 한반도의 부여백제 역사는 일본 열도의 야마토 역사로 재구성된다.
 
그렇다면 369년 단행된 부여백제(목라근자)의 삼한 정벌은 신라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신공황후기>는 목라근자가 가라7국 평정에 앞서 ‘탁순국에 모두 모여 신라를 공격해 파했다(俱集于卓淳 擊新羅而破之)’고 적고 있다. 신라 역시 목라근자의 삼한 정벌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언이다.
 
목라근자의 삼한 정벌 사건은 『삼국사기』 최대의 미스터리 기록으로 이어진다. 신라인이 동원된 김제 벽골제 축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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