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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43>

백제지역이 발해 땅 되고 또 요(遼)땅이 되었다

요(遼)나라는 요동군(遼東郡) 서안평(西安平)에 있었다.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3-05 10:52:0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백제본기(百濟本紀)에 의하면 백제가 서기 660년 7월18일 망한다. 그 원인은 이미 오래전 밝힌 대로 대대(代代)로 좌평(左平)이라는 높은 벼슬을 이어서 받아온 웅진성(熊津城)의 성주(城主)인 니식(禰植)의 배신으로 의자왕을 체포해서 소정방(蘇定方)에게 항복하면서 대백제(大百濟)가 대륙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 백제 땅은 신라와 발해말갈(渤海靺鞨)이 나누어 가졌다. 이에 대해서 장안중심(長安中心)의 발해말갈기록(渤海靺鞨記錄)인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 백제항목에서 백제가 패망하고 그 땅을 신라와 발해말갈이 나누어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발해말갈 항목이 있는데 동모산(東牟山), 등주(登州), 천진(天津) 등의 지명이 있다. 그런데 발해에 대한 기록도 연구도 부족한데다 지나(支那)의 사서(史書)에는 당서(唐書)와 구당서(舊唐書)도 왜곡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서(唐書)에서는 발해가 산동성(山東省), 등주(登州) 등을 평정 했는데도 당(唐) 현종(玄宗)32년(서기733년) 7월 발해소속 말갈이 바다 건너 등주(登州)를 침범하여 자기들이 통치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허구다.
 
지금까지 발해사 연구는 1784년 유득공(柳得恭)이 발해가 패망한지 858년 후에 여러 사서(史書)를 참고하여 [발해고(渤海考)]를 발행한 것이 효시라 할 수 있는데 서기전 2세기~서기 9세기의 역사를 반도와 만주에 정착시킨 이후의 연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3월1일 오전10시50분에도 강단학파 원로가 WBS 방송에 나와서 나당전쟁(羅唐戰爭)이 반도에서 벌어졌다 하는데 참으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나당전쟁은 분명히 대륙에서 벌어졌다. 언제까지 허구(虛構)의 사서(史書)만을 읽으며 말도 되지 않는 역사를 말할 것인가.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전쟁터가 대륙에서 벌어진 것 제대로 연구가 이뤄지길 바란다.
 
오늘은 백제가 멸망한 후 그 땅은 신라와 발해말갈이 나누어 가졌고 가장 역사연구가 미흡한 발해와 요(遼)역사를 밝히려 한다.
  
구당서(舊唐書) 자료에서 보는 발해사(渤海史)
 
발해 역사의 사료(史料)로는 송기(宋祈)가 지은 <신당서(新唐書)> 송사(宋史), 유득공(柳得恭)이 지은 <발해고(渤海考)>, 황유한(黃維翰)의 <발해국기(渤海國記)>가 있고, 정혜공주묘지석 정도로서 발해연구의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발해역사를 알려면 발해의 후속국가 요(遼)에 대한 연구가 필수가 되고 있다. 그것은 발해라는 나라의 사료가 너무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역사는 지나(支那)와 일본이 우리사서들을 모두 불태우고 없애고 자기들 멋대로 우리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했기에 우리역사는 뒤집혀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작되고 왜곡된 책을 믿고 왜곡된 역사를 말해온 우리들의 역사무지를 제대로 파악 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지도층의 사람들은 일제가 조작한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역사의 범주를 못 벗어나고 있다.
 
우리역사는 5000년의 역사가 아니라 1만년 전의 환국(桓國)과 배달국 역사이며 삼국시대도 반도가 아닌 대륙에서 정벌하고 정복하여 지배해온 역사와 그 위치를 제대로 알고 구체적으로 검토하면 자명해 지는 것이다.
 
발해역사만 보더라도 9세기 이전의 역사가 하남성(河南省)의 서화(西華)에서 반도(半島)까지 영역이었는데 반도와 만주로 왜곡시킨 역사로는 진실이 밝혀질 수가 없다. 구당서(舊唐書)권(卷)199 하(下) 열전(列傳)의 기록은 허구가 많아서 발해의 역사는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해야 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요사(遼史) 지리지에서 발해의 역사를 찾고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를 계승하였으니 그 흔적에 의해서 발해역사를 연구해야 될 것이다. 그렇다 하면 요(遼)는 어디에 있으며 요(遼)의 수도는 어디이고 발해에 관한 기록은 어디에 있는지, 그 영역 또한 어디인가를 찾아봐야 하며 구당서(舊唐書) 이외의 지나(支那) 사서에는 어떻게 나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우리역사가 지나(支那) 25사(史)의 동이(東夷)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공통부분을 밝힐 수 있는 것에 요사(遼史)가 일부분을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발해사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요(遼)는 황하(黃河) 북쪽의 국가였다
 
사서들은 일반적으로 요(遼)는 황하(黃河)의 북쪽 국가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밝힐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요(遼)의 상경도(上京道)인 상경임한부(上京臨漢府)는 요동군(遼東郡) 서안평(西安平)에 있다고 했다.
 
서안평(西安平)을 왕망(王莽)은 북안평(北安平)이라 하였고, 가탁은 탁군유안평(涿郡有安平)이라 하였으며, 오지(吳志)에서는 안평구(安平口)라 하였다. 바로 하북성(河北省)에 탁(涿)이 있고 남쪽에 안평(安平)이 있으며 안평의 서남쪽에 찬황(贊皇)이 있는데 이는 오(吳)에서보면 안평구(安平口)라 할 수 있다.
 
서안평(西安平)은 후한(後漢)의 요동군(遼東郡) 서안평(西安平)을 서기146년에 고구려가 습격하여 위(魏)의 대방령(帶方令)을 죽이고 낙랑태수 처자를 사로잡아 왔다. 오호16국의 태동기인 진(晉)말기인 서기311년에는 요동(遼東) 서안평(西安平)을 습격하여 빼앗었다.
 
상경임한부(上京臨漢府)는 분명히 요(遼)는 고구려가 통치하던 지역이며 발해(渤海)땅이 되었던 곳인데 이 곳은 하북성(河北省) 찬황(贊皇)으로 보고 있다.
 
상경도(上京道)에는 발해(渤海)라는 명칭이 17번 등장하고 발해국(渤海國)이라 두 번 등장하는데 이 곳은 하북성(河北省)의 남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동경도(東京道)는 요양부(遼陽府)이며 본래 조선 땅이다. 78번의 발해(渤海)가 등장하고 있으며, 발해국(渤海國)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서안평(西安平)의 지명(地名), 탁(涿) 안평(安平)동쪽에 동경도(東京道)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탁(涿)의 동쪽에 고구려의 장성(長城)이 있고 해주(海州)가 있으며 옛 옥저(沃沮)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경도(中京道)에는 대정부(大定府)가 있으며 발해(渤海)가 6번 기록되어 있는 것도 우리민족이 거주한 것임을 말해준다.
 
또 남경도(南京道)에는 석진부(析津府)가 있는데 광양(廣陽), 어양(漁陽), 밀운(密雲), 범양(范陽), 신창(新昌), 역(易), 탁(涿), 광영(廣寧)등의 지명이 있는데 후한서 고구려 항목에 어양(漁陽), 신창(新昌)이 있고, 밀운(密雲)은 삼국사기에 있으며, 광양(廣陽)은 남제서(南齊書)에서 백제(百濟)의 지명이다.
 
광영(廣寧)은 광영(廣營), 광영(廣靈)과 음이 같은데 진(鎭)묘비에 있는 지명 중 하나로 하북성(河北省)의 북부지역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글을 맺으며-발해사(渤海史)도 삼국의 대륙사임을 입증한다
 
위에서 백제의 지역이 발해 땅이 되고 요(遼)의 땅이 되었음을 밝히기 때문에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 말고는 어려울지 모르나 우리가 알아야 할 지명을 미리 밝혀서 확실히 하려고 백제의 고토(故土)가 발해 요(遼)임을 살펴봤다.
 
그리고 서경도(西京道)에도 대동부(大同府)가 있는데 대동(大同), 운중(雲中), 삭(朔)에 의하여 태행산맥(太行山脈) 서쪽의 지명이 있으니 요(遼) 서쪽지역으로 볼 수 있는데 산서성(山西省)이다.
 
요(遼)지리지에 의하면 태행산맥의 서쪽에 있는 서경도(西京道)를 제외한 4도(道)는 산맥의 동쪽에 있는데 발해의 뒤를 계승을 하였다고 하고 있는데 이곳 상경도(上京道)의 서안평(西安平), 남경도(南京道)의 광양(廣陽), 어양(漁陽), 밀운(密雲), 탁(涿), 광영(廣寧), 신성(新城), 신창(新昌), 광영(廣寧)에 의해서도 이곳은 고구려와 백제를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광양(廣陽)은 백제의 지명인데 백제가 망하고 발해 말갈과 신라가 분할하였다고 했는데 태행산맥의 동쪽에 위의 지명이 있음은 9세기 이전의 민족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부분인 것이다.
 
이는 지나(支那) 25사(史), 동이(東夷)의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공통부분을 밝힐 수 있는데 요사(遼史)가 필수이기에 지나(支那)와 일본이 5세기 이전의 역사를 숨기며 왜곡함이 진실된 역사가 될 수 없고 9세기 이전을 바르게 정립하는데도 필수라 사료 되는데서 백제(百濟), 발해(渤海), 요(遼)의 위치를 살펴 본 것이다. (以上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80面,~92面, 吳在成, 渤海史19面 以下를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參考文獻> 최태영 [한국고대사]. [한국 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한국상고사]. 崔仁, [韓國學講義],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유적지를 찾아서]. 吳在成 [밝혀질 우리역사] 「三國史 高句麗本紀」, 「百濟本紀」,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九犂系史」 [東夷歷史 쇠集]. [(右犂)의 歷史] ‘校勘十八史’, [百濟는 中國에 있었다]. 윤진영 編集 「三國史」「우리역사(東夷傳」. 박종원, [한국인자부심 문화열차]. 한동억, [인류시원(人類始原)의 역사이야기]. 정희철, [중국은 없다]우실하, ‘동북공정넘어 [요하문명론], 반재원,[鴻史桓殷]. [단군과 교웅], 文定昌,[古朝鮮史硏究], 「韓國史の延長」, 「古代日本史」. 智勝, [우리 上古史]. 이명우, 최현호[환단고기]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杉山徹宗, 「眞實の中國四千年史」. 三浦一郞, 小倉芳彦, 樺山紘一 監修 [世界を変えた 戰爭, 革命, 反亂]. 井上 淸, [日本の歷史]. 永原慶二, [絶對中學社會歷史]. 津田秀夫外3人 [‘ひとり で學べる日本史].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張金奎, [匈奴帝國].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西島定生 護雅夫, 木村常三郞, 猿谷 要 編著 [世界歷史の基礎知識]外 多數 書冊을, 參照하고, 本文을 引用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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