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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스토리] - 가수 정단

“낭만적이고 감동스러운 ‘정단’의 음악 들려드려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싱어송라이터

기사입력 2022-03-12 00:05:51

▲ 정단(사진)은 포크부터 록, 라틴, 컨트리 등 많은 장르를 직접 작사·작곡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한 국내에서 흔치 않은 뮤지션이다. [사진=이종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정단스러운’ 음악이란 낭만적이고 감동스러운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 노래를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어머니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약간 애틋하고 낭만적인 정서가 음악에 녹아 있죠. 사랑을 노래할 때도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보단 ‘그대의 눈에 별이 쏟아져요’와 같은 말을 가사로 표현해요. 이러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죠.”
 
정단(본명 김병건, 51)은 다양한 음악을 경험한 국내에서 흔치 않은 뮤지션이다. 포크부터 록, 라틴, 컨트리 등 많은 장르를 직접 작사·작곡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록그룹 부활의 8대 보컬(2003~2005년) 정도로 알려졌지만 탈퇴 이후 2007년부터 현재까지 총 127곡(앨범 31장)을 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하다. 3년 전 펜화, 채색화 등 총 35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음악과 미술을 넘나드는 ‘융합예술인’인 셈이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 위치한 정단뮤직스튜디오로 향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다르게 기자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민감한 질문에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밝혔다.
 
인디밴드로 시작해 라틴음악 밴드, 록그룹 부활 거쳐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음악을 처음 시작했다. 특정 대학교들끼리 나눠 먹는 미술계의 부패와 미대생들의 겉멋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다. 절친한 친구의 소개로 헤비메탈을 접했다. 원래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듣다보니 어느 순간 빠져들었다. 노래를 어느 정도 잘하긴 했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노래를 진짜 잘하는 사람이 돼보자는 생각으로 연습했는데 얼마 후 군대를 가게 됐죠. 규율에 묶인 환경이라서 그런지 그림보다 음악을 더 하고 싶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동력을 받고 좋을 것 같아서 음악에 대한 꿈을 갖고 제대했죠. 이후 음악 위주로 공부했어요. 피아노 등 악기를 익히고 화성학을 배웠죠. 곡을 직접 써보며 싱어송라이터 꿈을 키웠어요.”
 
정단은 허쉬(Hush)라는 밴드로 대중음악에 발을 들여놓았다. 영국의 록그룹 딥 퍼플(Deep Purple)의 ‘Hush’라는 노래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홍대 앞에서 인디문화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크라잉넛, 자우림, 델리스파이스, 노브레인 등 쟁쟁한 밴드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다. 허쉬는 1996년 ‘MBC 배철수의 음악 캠프’ 록 음악제에서 ‘쉽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기왕 나갈 거면 상금이 큰 대회에 나가자고 의견을 모아서 참여했는데 운 좋게 상까지 받았죠. 근데 허쉬는 안타깝게도 3년 만에 깨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밴드로서 내세울 만한 사운드를 제대로 잡지 못 했던 것 같아요. 중구난방 했다는 얘기죠. 이를테면 ‘스키드로우(Skid Row)’ 같은 음악을 했다가 ‘후티 앤 더 블로우피쉬(Hootie & the Blowfish)’ 같은 음악도 하면서 약간 이도저도 아닌 팀 색깔을 갖추는 바람에 해체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어요.”
 
밴드가 해체된 후 그는 대학 전공을 살리며 미술학원에서 돈을 벌었다.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음악을 카피하거나 시흥, 미사리, 덕소 등에 위치한 업소에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1~2년 그런 생활을 보내다가 어느 날 아는 선배로부터 보컬 영입제안을 받았다. 라틴음악 팀에서 음악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코바나(COBANA)’라는 밴드에서 2년 정도 싱어로 활동했다.
 
“코바나는 그때 국내에서 유일한 라틴재즈 빅밴드였어요. 세션뿐만 아니라 댄서들도 있었죠. 미국 록밴드 산타나와 비슷해요. 산타나가 팝(Pop)적인 요소가 많다면 코바나는 아프로쿠반(Afro-Cuban)이라는 쿠바 스타일의 라틴재즈 음악을 추구했어요. 밴드 특성상 춤을 잘 춰야 했는데 몸은 마음처럼 쉽지 않더라구요. 2년 정도 활동하다가 팀을 나왔죠.”
 
다시 혼자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록그룹 부활의 보컬을 뽑는다는 얘기였다. 당시 부활 멤버였던 서재혁의 추천을 받고 공개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부활 음악에 어울리는 보컬은 없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서 그의 목소리는 돋보였다.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의 취향을 저격했다. 성공적이었다. 계약을 맺고 2003년 부활의 8대 보컬로 합류하게 된다.
 
▲ 정단은 음악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07년 첫 앨범을 내고 열었던 콘서트를 꼽았다. ⓒ스카이데일리
 
“정규앨범 1장, 기획앨범 1장 총 2장을 발매하는 계약을 맺었어요. 기간으로는 2년이었죠. 앨범이 잘 돼서 다음 정규앨범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은 태원이형과 당시 사장님한테 있었어요. 짧긴 했지만 노예계약은 아니었죠. 잘 돼서 재계약 제안이 올 경우 할지말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제게 있었으니까요. 근데 안 돼서 예정된 계약기간을 끝으로 팀을 떠났어요.”
 
“부활의 ‘아름다운 사실’이란 곡은 처음 나왔을 때 인기를 끌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영화 ‘내 머릿속에 지우개’의 배너광고로 쓰이면서 컬러링 1위를 차지하는 등 1년 만에 역주행했죠. 천 카이거 감독이 연출한 중국 TV드라마 ‘허니짜이이치(和你在一起)’ OST로도 들어갔어요. 중국 활동도 잠시 했죠. 중국에서 그 노래는 아마 꽤 알려졌을 것이에요.”
 
“부활에서 나온 뒤로는 혼자 계속 하고 있어요. 시행착오가 무지 많았죠. 고독한 싸움이었어요. 특출하거나 상업적인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음반을 제작하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어요. 작사·작곡부터 녹음, 믹싱을 홀로 작업하며 음반을 낼 수밖에 없었죠. 포기할 만한데 포기하지 않았어요. 후배들이 존경한다고 하더라고요. 웃지 못한 이야기죠.”
 
음악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03년 KBS 가요대상에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작사·작곡상을 받았던 모습을 꼽았다. 뮤지션으로서 설렘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2007년 첫 앨범을 내고 열었던 콘서트도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욕심을 부리다가 공연을 아쉽게 끝낸 순간이었다. 15년 흘렀지만 그때 실수를 잊지 못했다. 두고두고 후회할 일로 남았다.
  
“노래보다 공연기획에 너무 신경 쓰다가 무대를 망쳤어요. 사물놀이와 밴드의 협연을 그리는 구상이었죠. 인원이 많고 공연 콘텐츠도 요란했죠. 노래만 해도 버거운 상태에서 공연기획까지 하다보니까 한 달 넘게 준비하면서 스스로 지쳐버리더라고요. 공연 당일 무대 위에서 퍼져버렸죠. 무대에서 내려와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음악을 하면서 처음 울었던 것 같아요. 정말 잘하려고 했던 공연인데 스스로 망쳐버린 것이죠.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강한 록 음악보다는 리드미컬한 록이라고 답했다. 컨트리 등 백인음악에 가까운 음악이었다. 본인의 음악 정체성이 담긴 대표적인 노래로는 2019년에 발표한 정규 4집 수록곡인 ‘오늘부터 잘 될거야’를 꼽았다.
 
“백인 정서가 담긴 음악이 저에게는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컨트리나 백인 팝 냄새가 나죠.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잘 안 팔리는 스타일이에요. 약간 답답해요. 한국인의 정서와 조금 안 맞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장점이라고 얘기하면 속된 말로 ‘꼰대’ 같지는 않다는 것이죠. 올드하거나 시대를 탈 것 같지 않아서 요즘 20대들이 들어도 거부감이 별로 없어요.”
 
“저항은 록음악 정신에 부합”…방역패스 반대 집회 참여
 
그는 음악 활동 이외에 ‘정단뮤직스튜디오’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보컬 트레이닝부터 작사·작곡법 등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한다. 또한 미술 활동도 펼치고 있다. 3년 전인 2019년 7월에 한 달 동안 갤러리에서 작품전시회를 열었다. 펜화 6점, 채색화 2점, 펜화를 포토샵으로 마무리 작업한 작품 27점 등 총 35점을 전시했다.
 
▲ 정단은 2019년 7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며 펜화 6점, 채색화 2점, 펜화를 포토샵으로 마무리 작업한 작품 27점 등 총 35점을 전시했다. [사진=정단 제공]
 
“대부분 뮤직비디오에서 쓰인 그림이었어요. ‘보호자’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웹툰 스타일로 직접 제작하면서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잡았죠. 추구하는 그림 스타일은 인물화에요. 사람보다 커다란 크기의 그림이죠. 운 좋게도 당시 전시할 때 그림을 팔았어요. 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희한하게 인물화를 더 잘 그리고 재미도 있어요.”
 
정단은 최근 ‘백신패스 반대 자유문화제’에 참여하며 정부의 강압적인 백신 접종 정책을 비판했다. 일반상식과 과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예술가의 저항정신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작년부터 개인 SNS에 코로나 관련 글을 작성하면서 의문을 제기해왔다. 현 상황에 대해선 공포심에 의해 사람들이 이성을 잃은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코로나가 처음 나왔을 때 ‘저렇게 위험한 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나’ 의심했어요. 그해 3~5월쯤 공개된 데이터를 봤어요. 어떤 치명율도 이전 독감보다 높지 않았죠. 그때부터 ‘이건 사기다’고 주장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2020년 코로나 사망자는 970명이었는데 예년 독감 사망자가 약 2000명인 걸 감안하며 결코 많은 숫자는 아니었죠.”
 
“감기 관련 사망자가 급증한 건 백신을 맞으면서예요. 상식적으로 봤을 때 코로나보다 백신이 더 위험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백신패스를 반대하는 편에 서 있었던 것이죠. 그러던 중 문화제를 주최하는 쪽에서 노래를 해달라는 제의가 왔어요. 이건 분명히 사람들에게 계몽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참여했어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싸움이었다. 백신패스 반대 집회에서 공연한 뒤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도 많지만 신랄하게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백신패스 비판 발언에 레슨을 받으러 오는 사람도 줄었다고 한다. 백신을 옹호하는 편에 서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모는 사회적 분위기가 안타깝다고 전했다.
 
“철저히 상식과 과학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건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만 믿어요. 공포가 일상을 뒤엎은 상황이죠. 우리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문화·예술인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일제강점기 때 서정주 등 예술인들이 일본군에 입대하라고 부추겼잖아요.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발언을 하느냐에 따라서 역사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날 예술인들은 대부분 진영논리에 빠져있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저항은 록음악 정신에 부합하죠. 자유를 억압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정부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억압만 해요. 뮤지션들은 따라가기만 하죠. 자유와 사랑, 평화에 대해서 노래하면서도 정작 우리한테 가해지는 억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죠. 동료 뮤지션들이 좀 깨어났으면 좋겠어요. 공부도 좀 하고 제발 진영논리에 빠져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정단은 음반을 꾸준히 내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회적인 문제에도 열정을 쏟지만 그는 역시 뮤지션이었다. 그는 코로나 상황이 어서 끝나 공연 무대에 서고 싶다고 답했다. 유튜브 채널 ‘정단TV’에도 본인의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길 바랐다. 또한 음악 활동으로 돈을 벌어 전시회를 다시 열고 싶다는 소망도 표했다.
 
“코로나 이후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들다가도 팔리지도 않는 음악을 계속 하는 게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죠. 그래도 왠지 5월부터는 공연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감이 커서 음악을 아예 포기하지는 못하겠어요. 저의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해주는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게 계획이에요. 그걸 토대로 공연을 하고 전시회도 다시 열겠어요.” 
 

 [윤승준 기자 / sjyoon@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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