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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46>
백제 건국과 패망까지 대륙에 있었다
의자왕은 반도인 아니고 산동성 태산서쪽 웅진사람이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3-26 12:05:57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우리나라 지도층도 너무 우리 역사를 모르고 있다. 상고시대는 물론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가야는 물론 심지어 왜(倭)도 대륙에서 건국하고 발전하였는데도 반도 안에서 건국하고 패망한 것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우리 역사를 5000년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 종교인과 지식인 지도층들이 말하는 것을 듣노라면 일본이 왜곡하고 변조한 반도식민역사만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도대체 이들은 언제 제나라 역사를 제대로 알 것인지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 역사는 세계 석학들도 1만년이 넘는 역사를 말하고 세계 5대 문명을 주도한 우리 민족임이 밝혀짐에도 아직도 조선총독부가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16년에 걸쳐서 왜곡하고 변조한 35권의 역사 아닌 소설을 말하고 있음은 수치다.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은 1922년 조선총독부가 고등경찰에게 지시한 것, “조선인들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조선민족의 혼(魂), 조선민족의 문화를 상실하게 하라. 그들의 조상과 선인(先人)들의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되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 그들의 부모 조상들을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이 기풍이 되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서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갖게 하고,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하라. 그럴 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帝國)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이 악랄한 흉계가 조국 광복이 된 지 70년이 지나서도 아직도 김유신(金庾信) 장군과 최치원(崔致遠), 장보고(張保皐)도 반도사람 아니고 대륙인인데도 반도에 가두고 아직도 허구의 식민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오늘은 이미 다 아는 바와 같이 백제는 건국부터 패망까지 대륙에서 명멸하였음과 백제 의자왕이 반도인(半島人)이 아니고 대륙 웅진의 왕임을 밝히려 한다.
 
백제의 지명(地名)과 역사에서 보는 백제 역사
 
역사를 가르쳐온 원로 교수가 백제가 잠실의 위례성에서 멸망했다는 글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백제는 반도에 없었다. 백제의 건국과 멸망도 대륙에서 건국하고 멸망한 사실임을 숨길 수가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백제가 멸망할 당시 백제(百濟)는 대륙을 지배하는 강대한 대제국(大帝國)이었다. 백제가 반도가 아니고 대륙에 있었음은 그 지명과 백제가 지배한 그 많은 성(城)들을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백제 건국은 하북성(河北省), 위례성이지 현재의 잠실 풍납토성의 위례성이 아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백제가 건국하자 말갈이 3000명의 병력으로 쳐들어 왔을 때 온조왕(溫祚王)과 백제군이 이를 물리친 곳은 이곳이 아니다.
 
말갈 3000 병력이 잠실 풍납토성의 위례성에 온 적이 없다. 언제까지 이 같은 어리석고 유치한 허구 역사로 국민을 속이려고 하는지! 이제는 상식 이하의 소설은 통하지 않는 세상인데도 변함이 없음은 통탄할 일이다.
 
그리고 의자왕은 산동성(山東省), 태산(太山) 서쪽 웅진(熊津)에 살았던 임금인데도, 반도의 임금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당시 백제는 반도에 있는 웅진(熊津)이 아니다. 대륙의 웅진(熊津)임을 제대로 모르고들 있다.
 
대륙의 태산(太山·大山·岱山) 주위에는 의자왕 시대의 지명이 현재도 남아 있다. 예컨대 하북성(河北省)에 평원(平原)이 있고, 산동성(山東省)에 동명(東明)·황산(黃山)·박산(薄山)·제성(諸城)·백마하(白馬河;白江)가 있으며, 하남성(河南省)에 항성(項城)이 있는 것 이미 밝힌 대로이다.
 
또한 안휘성(安徽省)에 동성(桐城)이 있고, 강서성(江西省)에 덕안(德安)·무주(撫州)가 있으니 전쟁터의 지명과 의자왕, 부여(夫餘) 융(隆)의 묘(墓)에 의하여 의자왕이 반도인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반도에는 전쟁 지명이 없다.
 
서화(西華) 동쪽의 동이(東夷) 백제가 있음을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나(支那)25사(史) 동이전(東夷傳),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이를 밝혀주고 있다. 또한 무강왕(武康王)은 과부의 아들로 반도의 총독이다.
 
반도에 있는 자칭(自稱) 백제왕(百濟王)이라는 왕(王)이 있다. 즉, 정통(正統) 왕이 아닌 과부의 아들인 무강왕으로 백제 총독부(總督府)의 총독과 같은 지위인데 왕으로 자처했다.
 
또 하나, 공주(公州)에는 능(陵)에 의한 백제 사마왕(斯摩王)이 확인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무령왕(武寧王)의 휘가 사마(斯摩)라 했는데 사마(斯麻)와 사마(斯摩)는 음(音)이 같다.
 
그러나 익산미륵사를 창건한 무강왕(武康王)은 과부의 아들이라고 했고 삼국유사에서는 무강왕(武康王)을 무왕(武王)으로 고쳤으나, 삼국지(三國志) 30에서는 자칭 무강왕(武康王)이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과부 아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부의 아들이라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나라를 건국하는 건국자(建國者), 즉 시조(始祖)나 별지(別地)에 두는 총독일 때만이 가능하다.
 
당시엔 총독이라는 말은 없었고 통치를 하는 본국이나 별지 모두 왕이라고 불렀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익산(益山)의 무강왕은 총독이며 반도 공주(公州)를 중심으로 백제 본국 외의 땅, 즉 식민지(植民地)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한편, 사마왕(斯麻王)에 대해서는 서화(西華) 동쪽에서 이동해온 반도의 총독인지, 아니면 난을 피해 반도 공주(公州)로 온 것인지, 이렇다 할 기록이 없으나 그 무덤이 대륙의 벽돌로 이뤄진 것을 보면 왕으로 보인다. 백제 왕국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도 연구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구당서(舊唐書)에 의하면 웅진(熊津)의 동쪽에 지라성(支羅城)·윤성(尹城)·대산(大山)·사정(沙井) 등과 박성(薄城)이 있다(熊津之東拔支羅及尹城大山沙井)고 기록하고 있다.
 
반도에는 이런 성이 없다. 그리고 백제가 망한 그 땅에 웅진(熊津)·마한(馬韓)·동명(東明)·금련(金漣)·덕안(德安) 등에 도독부(都督府)를 두었는데 반도에 도독부(都督府)를 둔 곳이 있는가. 백제는 반도가 아니고 대륙에 있었던 것이다. 반도사관은 허구이므로 과감히 버려야 한다.
 
끝을 맺으며 - 반도사관은 식민사관이다
 
백제는 대륙에서 건국하고 대륙에서 패망하였다. 의자왕 시절 전쟁터가 반도에는 한 곳도 없다. 이미 밝힌 항성(項城)·동성(桐城)·잠산(岑山)·독산(獨山)·평원(平原)·황산(黃山)·백마하(白馬河)·치청래(淄靑來)·제성(諸城), 그리고 하북성(河北省)·안휘성安徽省)·강서성(江西省) 등이 반도에는 없다. 모두 대륙이다.
 
백제가 망한 후 흑치상지(黑齒常之) 장군은 백제의 200성(城)을 다시 다 회복했다. 이 200성 중 하나라도 반도에 없다. 필자는 역사를 연구하며 우리나라 자학반도식민사관자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역사는 이제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 더 길게 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대륙을 지배하고 정벌하고 정복하여 대륙을 지배한 역사를 제대로 알 때 우리 국민은 올바른 역사를 가지고 세계로 자랑스럽게 나갈 수 있다. 우리가 대륙을 지배한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역사다(以上은 吳在成 「廣開土境平安好太王碑 硏究」 169面~173面 참조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역사를 통해 교훈(敎訓)을 얻지 못하는 민족(民族)에게는 미래(未來)가 없다”고 했다. 이제는 우리나라 국민도 우리 역사를 제대로 바로 알고 이를 바로 복원하여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바로 세우고 가야 한다. 이럴 때 우리 후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확립됨에서 세계로 웅비(雄飛)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국가 민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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