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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人)스토리]-이일 변호사

“전쟁은 난민을 낳지만, 난민 환대는 평화를 낳지요”

9년간 난민을 위해 버팀목이 돼준 공익변호사

기사입력 2022-04-02 00:05:10

▲ 이일(사진) 변호사는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9년째 난민과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법을 도구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억울함을 겪은 외국인들 곁에서 부당함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사진=이종원 기자] ⓒ스카이데일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세계 각지에서는 반전시위가 열렸다. 한국에서도 2월28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1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전쟁반대(NO WAR)’를 외쳤다. 이날 현장에서는 러시아의 침략으로 발생할 난민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국 정부가 뒤늦게 인권과 정의에 입각해 러시아를 규탄하고 국제 제재에 동참했지만, 전쟁 피해자에게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요. 국내 체류 중인 3800여명 재한 우크라이나인 임시체류 조치 점검은 당연하고 전향적인 난민심사를 비롯해 난민보호를 천명하는 대책 역시 수립해야죠.”
 
비영리 공익변호사단체 공익법센터 어필(APIL)에서 난민을 위한 공익 변호사로 9년째 일하고 있는 이일 변호사(42·사법연수원39)였다. 벌어지고 있는 전쟁범죄와 재난을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요즘, 안국동에 있는 어필 사무실에서 이일 변호사를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난민 관련 이야기를 들어봤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권변호사의 길 택해
 
대학 시절 법을 공부하면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고 싶었다는 이일 변호사는 탄탄한 체격과 열정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네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자부심과 신념, 아우라가 풍겨왔다.
 
이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00학번)를 졸업했다. 사법고시를 대학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 합격하는데 2년 반 정도 걸렸다고 한다. 고시 합격의 비결을 묻자 그는 그저 운이 좋았다라는 겸손한 말을 했다.
 
“대학 다닐 때 밴드 동아리를 한다든가 이것저것 동아리 활동을 많이 하고 이러다 보니까 친구들은 고시 준비를 빨리 시작했는데 저는 4학년 말 때 좀 천천히 시작했고 졸업을 약간 늦춰서 한 6학년 정도 됐을 때 붙었습니다. 고시 준비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전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거를 좋아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날 정도로 독특한 취미나 특기는 아니었어요. 과거에는 책을 두루두루 읽었는데 요즘에는 제가 하는 활동과 연관된 책들을 읽고 있죠.”
 
▲ 이 변호사는 어필에서 난민 관련 소송 및 신청 외에도 유튜브 채널 ‘공익법센터 어필APIL’을 운영하며 홍보와 교육, 연대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스카이데일리
 
공익 변호사가 된 계기에 대해 묻자 이 변호사는 학교에서 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맞는 일에 대해 고민하다가 막연히 억울한 사람들,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돕는 그런 변호사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사법고시를 치고 연수원에 들어가 여러 경험을 통해 공익 변호사로 활동하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고 한다.
 
“연수원에 들어가서 법원에서도 일해보기도 하고 검찰에서도 일해보기도 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어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만 해서는 세상이 그렇게 좋아질 것 같지도 않고 억울한 사람들, 혹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신 얘기해 주는 이런 걸 하는 게 맞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법연수원 시절, 사시 동기들에 따르면 그는 성적이 우수해 그가 원하면 판·검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주입된 기준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를 맨 먼저 고민했고 공익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연수원 시절 상위권에 들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이번에도 그는 특별한 건 없다고 말했지만 역시 노력이 답이었다.
 
“그냥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연수원의 그 당시 분위기가 성적이 더 높게 결정되면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다 보니까 일단은 어떤 걸 선택하든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성적을 잘 받아두는 게 좋았고 연수원에서 잘 배워서 좋은 실력을 갖춰 나가 인권 변호 활동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변호사는 2013년 군법무관 복무를 마치고 첫 직장으로 ‘어필(APIL·Advocates for Public Interest Law)’을 택했다. 이곳에서 9년간 난민과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속한 공익법센터 어필은 ‘공익법을 위한 변호사들, 옹호자들’이란 뜻의 영어 약자다. Advocate에서, Ad라는 말이 ‘누군가의 옆에서’라는 뜻이라 하고 Vocare라는 단어는 ‘목소리를 내어주다’라는 의미라고 이 변호사는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목소리를 내도 들리지 않는 경우들이 많고 또 목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경우들이 부지기수인데 그런 사람들의 옆에서 목소리가 되어주자는 게 어필의 설립 모토라고 한다.
 
▲ 이 변호사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 옆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늘 생각한다고 했다. ⓒ스카이데일리
 
 한국에서 난민 인정률은 0.4%
 
국내 난민법이 시행된 지 9년이 됐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다. 한국에서 난민 인정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는 사람이 1년에 100명이 안 된다고 한다.
 
“전 세계의 난민이 지금 7000만명 정도인데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일 많은 숫자거든요. 이들 중 한국으로 피난 오는 경우는 정말 극소수예요. 게다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0.4% 수준입니다. 1000명 중에 4명. 미국은 40% 정도 돼요. 유럽도 한 33%대라고 보시면 되고요.”
 
“가끔 언론에서 차제에 난민 수요에 대해 우리가 적정하게 어느 정도 할지를 한번 논의해 볼 때가 됐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런 정도로 얘기할 것도 아니고 한국은 열심히 더 수용하고 보호한다고 해도 현재로선 국제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죠.”
 
이 변호사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여해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인도적 지원을 촉구했다. 그는 전쟁은 난민을 낳지만 난민에 대한 환대는 평화를 낳을 수 있다며 특히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 3800여명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조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중 우크라이나 국적의 고려인(한민족)이 법무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390명으로 알려졌다.
 
이 변호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전쟁으로 가족을 잃는 등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정부가 뒤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기만 하지 말고 이젠 한국에 있는 3800여명의 우크라이나인의 출국 기간을 미뤄주는 임시조치를 넘어 전면적인 난민심사와 비자발급, 재정착 등을 신속하게 고려해줘야 해요. 또 평화를 지지하고 난민 보호를 천명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 필요하죠. 
 
▲ 이 변호사는 박해를 피해 타국으로까지 온 난민이야말로 ‘약자 중의 약자’라고 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르고 인종적 편견 문제로 적절한 조치를 얻기까지 우리 사회에 처져 있는 진입금지 장벽이 꽤 두텁다고 지적했다. ⓒ스카이데일리
 
한국 사회는 사실 여러 모순과 병폐로 가득한 이슈들로 점철돼 있다. 꼭 난민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내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 게 현실이다. 난민 이외의 다른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익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넌지시 물었다. 
 
“각자 자기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가 커가고 다원화되면서 예전에는 어떤 한 사람 한 단체가 모든 이슈를 다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좀 더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 어필에 들어오기 전에는 난민 이슈가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잘 모르기도 했구요. 그런데 막상 일을 하다 보니까 제가 몰랐던 세상이 펼쳐져 있다라는 걸 알게 됐어요.”
 
어필 홈페이지에는 이일 변호사가 자신을 소개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나이 들어 앞이 잘 안 보여서 책도 볼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을 때 적막하고 메마른 곳을 음악이란 신비로 메꾸며 기타 치고 노래하며 살고 싶은 이일입니다.’ 9년 전 본인이 직접 쓴 글이라 했다. 그에게 프로필에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어떤 음악 활동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한국사회가 너무 팍팍하다 보니까 만날 일에 치여 살아가고 있는데 그 차원 이상에 있는 어떤 아름다움이라든가, 예술의 가치라든가 이런 것들을 갖고 있을 수 있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끔 저는 음악이라든가 예술에 대해 평소에는 전혀 생각할 겨를 없이 여유도 없고 바쁘지만 잠깐 노래 하나를 들었는데 다른 세계를 데려가 준다든가, 그림 하나를 봤는데 어떤 다른 세계에 잊고 있었던 감각을 깨우쳐준다든가 하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 그런 음악이나 예술 활동을 하면서 소소하게 사람들과 만나 얘기 나누고 삶을 즐겁게 살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세계 난민의 날이 6월20일인데 그때마다 찾아보니 난민에 대한 노래가 한국에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 수많은 노래 중에. 이것도 그러니까 저는 약간 상징적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난민에 대해 얘기하는 게 없구나. 어떤 다른 세상을 얘기할 때 난민들을 위한 공간이 한국에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해외에 찾아보면 조금씩 있거든요. 그래서 난민에 관련된 노래들을 제가 만든 것도 있고 다른 음악하는 친구랑 같이 만들기도 했죠. 이런 활동들을 나중에 좀 더 잘해보고 싶어요.”
 
이 변호사는 어필에서 유튜브 채널 공익법센터 어필APIL을 운영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어필이 만든 영상 콘텐츠를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구독자 수는 3000명가량이지만 NGO 활동가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채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 좀 더 많은 분들이 난민들이나 외국인들을 낯설어하지 않고 우리들과 같이 살아가는 이웃으로 여겼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미래가 더 풍요로워지고 다 같이 잘 어울려 사는 세상, 그런 이상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이제 9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까 내가 계속 이 일을 하는 게 맞나, 아니면 뭔가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일을 하려면 지금 한번 고민해야 되지 않나, 그런 때가 오는 것 같더라구요. 현재 계획은 일단 여기서 제가 해오던 일들을 계속해 나가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봐요.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눈에 보이지 않게 엄청난 어려움과 고생을 하는 분들이 한국 사회에 많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돕기 위해서는 많은 손길이 필요한 게 사실이고 그런 사람들을 계속해서 도울 수 있도록 저희들 사무실에서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임한상 기자 / hsrim@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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