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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내물왕은 북방 유목민족 모용선비 출신

기마문화를 갖춘 흉노출신 선비족의 신라 정착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4-07 11:12:51

 
▲ 정재수 역사작가
신라 김씨왕조 내물왕 계열의 무덤양식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바닥에 냇돌을 깐 다음 그 위에 상자모양의 나무덧널(목곽)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하고, 나무덧널 위로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적석) 다음 마지막 바깥은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드는 방식이다. 주로 김씨왕조 묘역인 경주 대릉원 일대에만 분포하며 조성시기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후반까지 대략 100여년으로 한정된다. 
 
이들 돌무지덧널무덤은 이전 경주 일원에 조성된 ‘흙무지덧널무덤(토광목곽묘)’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흙무지덧널무덤은 나무덧널 위에 돌이 아닌 흙으로만 쌓아 봉분을 만드는 방식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이 흉노(훈족)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무덤양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이는 적어도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조성세력이 중앙아시아 유목민족과 깊은 친연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출토 유물은 중앙아시아 기마유목민족의 제품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의 출토유물은 가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금관과 장신구, 금제 허리띠, 각배(뿔잔), 보검, 유리그릇 등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특히 유리그릇은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로만글라스’로 밝혀져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또한 무덤에서는 기마문화를 상징하는 말안장, 발걸이(등자), 배가리개(장니) 등 호화롭게 장식한 각종 마구류도 다수 출토됐다.
   
▲ 황남대총 출토 유리그릇. [사진= 국립 경주박물관 제공]
    
출토유물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의 조성세력을 추정하게 한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유목(기마)민족 출신으로 로마와 페르시아 등과 활발히 교류한 집단이다.
  
내물왕 계열의 원래 성씨는 모씨
 
「통전」<신라전>은 내물왕 계열의 성씨를 모(慕)씨로 기록한다. ‘부견(苻堅·전진) 때(서기 381년)에 그 나라 왕 루한(樓寒)이 보낸 사신 위두가 조공했다. … 양(梁)무제 보통2년(521년)에 왕의 성은 모(慕)요, 이름은 진(秦)인데 처음 백제의 사신을 따라 방물을 바쳤다.(苻堅時 其王樓寒遣使衛頭朝貢 … 梁武帝普通二年 王姓慕名秦 始使人隨百濟獻方物).’ 내물왕(17대)의 성명은 모루한(慕樓寒)이며, 그의 직계손 법흥왕(23대)은 모진(慕秦)이다. 둘 다 모씨이다. 이는 내물왕의 모씨가 법흥왕 때까지 이어져 내려온 사실을 부연한다.
 
특히 <울진봉평신라비>(524년)는 법흥왕을 ‘모즉지 매금왕’으로 적는다. 모즉지(牟卽智)는 모진(慕秦)의 신라식 표기이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수용하는 등 중앙집권 국가체제를 완성한 군주로 ‘왕’의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한 왕이다. 매금왕(寐錦王)은 기존의 ‘매금’과 신규의 ‘왕’이 중첩된 과도기적 성격의 왕호이다. 비슷한 시기의 <울주천전리각석>(535년)은 ‘성법흥대왕(聖法興大王)’으로 적으며 아예 ‘왕’의 칭호만을 쓴다.
 
흉노 출신 선비족 모용 씨의 신라 남하
 
내물왕 계열의 모(慕) 씨는 북방 유목민족 선비족의 모용(慕容) 씨이다. 동몽골 지방에서 발원한 선비족은 우문 씨, 모용 씨, 단 씨, 탁발 씨 등 4부족으로 구성된다. 이 중 모용 씨는 3세기 말경 요서지방으로 남하하며, 337년 모용황(慕容皝)이 전연(前燕)을 건국하며 고구려와 대륙 동북방의 패권을 놓고 대결했다.
 
서기 342년 겨울, 모용황은 병력 5만5000명으로 고구려를 침공했다. 이에 고국원왕은 과거 동천왕 때 위(魏) 관구검의 침공로가 북쪽인 점을 고려해 고구려 5만 주력군은 북쪽에 배치하고 1만 예비병력으로 남쪽을 방어케 한다. 그러나 모용황은 고국원왕의 허를 찌른다. 모용황의 4만 주력군은 남쪽 침공로를 맡고, 북쪽 침공로는 1만5000명의 별동군을 투입한다. 이로 인해 고구려 예비병력이 담당한 남쪽 방어선은 허무하게 무너지며 모용황은 곧바로 고구려 수도 환도성(요녕성 해성)을 유린하고 미천왕릉(요녕성 본계)을 파헤쳐 시신을 탈취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북쪽은 고구려가 승리한다. 다만 「삼국사기」는 모용황의 1만5000명 별동군이 ‘모두 패해 몰살했다(皆敗沒)’고 적고 있으나 별동군 일부는 살아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는 「삼국사기」 기록이 「자치통감」 기록을 축약한 것으로 별동군 자체가 모용황의 본진에 합류하지 않았기에 몰살(沒)의 표현을 썼을 것으로 이해한다. 아마도 모용황의 별동군 최소 수백 정도는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고구려 땅에서 사라진다.
 
▲ <울진봉평신라비>(524년), <울주천전리각석>(535년) 법흥왕 왕호 표기. [사진=필자제공]
    
모용황의 별동군은 흉노 출신 선비족으로 추정된다. 『후한서』에 흉노 10여만락(落-家)이 선비족에 귀속한 기록이 있다. 수십만명의 흉노인이 선비족이 된 것이다. 이들 흉노인은 로마와 페르시아와도 적잖이 교역도 했을 것이다. 또한 이들 중 지배층 상당수는 모용 씨 성을 하사받는다.
 
고구려 땅에서 사라진 수백의 흉노 출신 모용 선비는 신라로 남하했다. 이들의 선택에는 신라 김씨의 원조인 흉노 출신 투후 김일제(金日磾)가 있다. 과거 김일제의 후손집단과 미추왕의 오환족집단이 신라를 선택했듯이 같은 북방 유목민족이기에 자연스레 신라를 선택한다. 신라에 정착한 시기는 대략 서기 343~345년 정도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내물왕은 신라에 정착한 모용선비출신 1세대일까? 아니다. 「신라사초」는 내물왕의 출생년도를 서기 350년으로 명기하고 있다. 내물왕은 모용 선비 출신 2세대이다. 신라에서 태어나 성장해 신라의 왕위를 거머쥔 완벽한 신라인이다.
 
내물왕은 북방 유목민족 모용선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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