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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어디까지 하고 있나 <248>
동이경계(東夷境界)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9세기 이전의 동이(東夷)의 역사도 모르고 있다.
이을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4-09 11:40:14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우리나라 국민은 세계에서 제일 머리가 좋고 우수하나 제 나라 역사를 모르는 민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환국시대의 상고사(上古史)는 말 할 것도 없고 고대사(古代史)도 제대로 아는 이가 매우 적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국가영역의 경계(境界)로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을 말하며 민족은 조선족이라 하고 있으나 이는 우리들 스스로가 역사무지에서 우리가 반도인(半島人)으로 알고 있으니 이는 한심한 일이다.
 
우리가 상고시대부터 유라시아를 지배한 민족인 것은 세계의 석학들도 알고 있는데 우리만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모르고 있다. 지나(支那)의 사람들까지도 우리의 상고사(上古史)를 모르니 거론하고 있지 않으나 상고사(上古史)와 고대사를 깊이 연구한 학자들은 우리민족이 대륙을 지배한 것을 다 말하고 있다.
 
지나(支那) <25사(史)>와 우리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들은 고조선(古朝鮮)의 영역을 서화(西華;支那 河南省)중심의 동쪽에서 반도(半島)까지라고 하고 있다. 즉, 천제왕검조선(天帝王儉朝鮮)의 영역은 서화(西華)에서 반도까지 넓은 영역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민족(韓民族)이라는 것도 대한제국(大韓帝國 ; 1897년~1910년)의 대한(大韓)을 따서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하고 이를 한민족(韓民族)으로 발음하게 하고 이를 줄여서 한국(韓國)이라고 말하고들 있다.
 
한편 한(韓)을 국호(國號)로 발음한 국가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이외에는 없다. 고대 조선시대 마한(馬韓), 변한(弁韓)이 있었으나 전통성에서 볼 때 이것은 부분을 나타내는 한(韓)을 국호나 민족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합당치 않는데서 국호나 민족의 명칭이 만들어 지지 않았는데 이도 역사정립을 위해서는 이를 제대로 했어야 했다.
 
오늘은 삼국시대의 역사인물인 김유신(金庾信), 최치원(崔致遠), 장보고(張保皐),
계백(階伯)장군들이 반도에는 없었고 모두 대륙에서 활동한 것을 말하려 한다.
 
김유신, 최치원, 장보고 계백장군도 반도인 아니다
 
반도식민사관자들은 김유신(金庾信), 최치원(崔致遠), 장보고(張保皐)와 계백장군도 반도의 사람으로 꾸미고 있으나, 반도사람들이 아닌 것은 그들이 대륙에서 활동한 사적(史蹟)을 살펴보면 명백하다.
 
또한 마한(馬韓;서기전323~서기10년)도 반도가 아닌 도읍지가 목지(目支)였고, 현 위치는 중경시(重慶市) 충현(忠縣)으로 반도가 아니며 진한(辰韓)(서기전 220년~서기전 57년)도 도읍지가 진(辰)으로서, 현 위치는 사천성 성도시(四川省, 成都市)로서 반도가 아닌데도 식민사관자들은 이를 모르고 있다.
 
변한(弁韓;서기전220년~서기42년) 역시 도읍지가 변(弁)이며, 현 위치는 귀주성(貴州省) 안순시(安順市)로서 반도식민사관자들이 말하는 반도(半島)가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은 김유신(金庾信), 최치원(崔致遠), 장보고(張保皐)계백장군도 처음부터 대륙에서 활동하였으며 일본이 조작하고 왜곡한 역사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기에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세워야 하는 것이다.
 
사서(史書)에 의한 김유신은 서화(西華), 항성(項城), 덕안(德安), 무주(武州)의 동쪽 강회신라(江淮新羅=王新羅;西新羅) 사람이고, 반도(半島)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최치원(崔致遠)은 당서(唐書)에 의하면 고구려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서(唐書)는 송(宋)때 편찬된 것인데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서화(西華)동쪽의 강회(江淮)지역에 있던 동이(東夷)의 서신라인(西新羅人)으로 밝혀지고 있다.
 
지나(支那) 25사(史)에서 동쪽 서화(西華)에 강회신라(江淮新羅)가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서화(西華)동쪽의 왕(王)의 신라와 간(干)에서 왕(王)이 된 신라(新羅)가 각각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사서(史書)로는 당령고징신라국기(唐令孤澄新羅國記)와 거칠부국사(居柒夫國史)는 최치원의 모든 기록을 서화(西華)의 동쪽과 반도에 맞출 때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최치원은 장보고(張保皐)의 사후 12년 뒤의 인물인데 장보고가 반도에 살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서화(西華)동쪽의 강회신라(江淮新羅) 사람이지 반도사람이 아닌 것이 김유신전(金庾信傳)에서도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계백장군의 싸운 황산(黃山)도 곡부, 전항진, 간장진, 곽리진 등이 있는데 계백장군이 전사한 황산은 간장진의 황산으로 백제사(百濟史)를 제대로 복원해야 우리 역사도 바로 될 수 있는데. 일본은 백제사를 지우기 위해 역사를 조작했다.
 
사기와 신구당서는 강회신라가 있음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지나(支那)의 사기(史記)와 신구당서(新舊唐書)는 강회신라(江淮新羅)가 있음을 분명하게 말하며 1060년 편찬된 <당서(唐書)>에서는 최치원(崔致遠)은 신라사람 아닌 고구려사람이라 하였다.(唐書 卷60 禮文志 又 桂花筆耕 20卷)
 
박혁거세(朴赫居世)도 반도인(半島人)이 아니다. 그의 무덤도 강소성(江蘇省), 오현, 호구산에 있다. 사로신라(斯盧新羅)가 663년에 계림도독부(鷄林都督府)가 됐다. 또한 918년~1030까지 사료(史料)가 없어지고 지증왕(智證王) 위의 사로신라(斯盧新羅), 백제(百濟), 왜(倭), 가야(伽倻)가 대륙에서 빠지게 됐다.
 
김유신(金庾信)의 선조(先祖)는 서화(西華)서쪽 한수(漢水(黃河))유역에 있었다. 금성(金城)은 대륙 팔공산(八空山)에서 7~8km 지점에 있다. 반월성(半月城)은 성(城)이 아니다. 그리고 안휘성(安徽省)에 있는 토함산에는 간혈천이 있고, 합비(合肥)가 바로 경주(慶州)다. 김유신 장군도 안휘성 중심으로 활동했다.
 
대륙의 우리역사는 반도 안에 가져다가 교묘히 조작되고 있으나 신라(新羅)도 대륙의 신라(新羅)는 안휘성(安徽省)과 강소성(江蘇省)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은 1883년 신라방(新羅坊)을 조작하여 반도의 신라가 대륙에 갔다고 하나, 이는 허구(虛構)이며 이는 왜곡된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三國史)는 90%가 유연제노(幽燕齊魯) 오월(吳越)지역 기록이다. 삼한(三韓)을 한반도(韓半島)로 가져온 자가 김일연이다. 일연(一然)은 낙랑국(樂浪國)에 위만(衛滿), 기자(箕子), 한사군(漢四郡)을 가져다 놓는다.
 
김일연은 1277년 운문사(雲門寺)에 부임하여 5년간 시무하며 여기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써서 9편으로 엮었다. 이 책은 편년제 형식으로 된 책이고, 5편은 불교사상이다. 삼국(三國)에 남겨진 역사라 하나 너무 왜곡한 것이 많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서화(西華)동쪽의 왕신라와 반도에 간(干)에서 왕(王)이 된 신라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음은 물론 그 도읍지가 난주(蘭州), 명활성(明活城), 월성(月城), 달현(達縣) 동천도(東川道), 송악군(松岳郡) 신주(信州)이고 변주(邊州)인데 지금은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이며 기주부경(跂州府境)이다. 그리고 안읍(安邑)인데, 경주(慶州)는 반도에 있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 동이족은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지금은 5국이 되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지나(支那) <25사(史)>,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에서 9세기이전 우리민족의 영역은 지금 지나(支那) 서화(西華), 항성(項城)중심의 동쪽에서 반도까지였던 것이다.
 
민족의 이름도 동이(東夷)외에 동철(銅鐵)으로도 기록하였는데 그 뜻은 동쪽에서 쇠붙이를 사용하는 사람들(鐵古夷字也)이라 하였는데 고구려, 백제, 가라(加羅), 신라(新羅), 왜(倭)도 동이(東夷)의 각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사서(史書)를 보면 <삼국지(三國志)>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남사(南史), 구당서(舊唐書), 당서(唐書)에 나와 있다.
 
현재 9세기 이전 동이(東夷)는 고구려의 속국이었던 선비(鮮卑)의 후예인 위구루(爲溝漊), 초기 고구려(北夫餘)였던 몽골(蒙古), 14년에 고구려에 합병된 예(濊)의 하북민(河北民), 21년에 고구려에 병합된 동부여(東夫餘)후예 북만주민, 32년과 56년에 고구려에 병합된 옥저(沃沮)의 후예인 남만주민도 동이들 이다.
 
또, 32년에 고구려에 병합된 낙랑국의 후예인 반도민, 396년에 고구려의 속민이 된 백제의 산동성민, 300년에 고구려민이 된 강회신라(江淮新羅)의 후예인 안휘(安徽), 강소성민(江蘇省民), 한(韓)의 비미(卑彌), 구로(狗盧)의 후예인 왜(倭)였던 오월민(吳越民)들은 모두 동이족으로 9세기 이전의 동이영역은 현재 5개국으로 분리되어 대한민국, 북한, 중공, 타이완, 몽골로 나눠져 있는 것이다.
 
이들의 문자(文字)는 동이고어인 한자(漢字)외에 몽골문자와 한글을 각각 사용하고 있었는데 960년 황하 이남에 세웠던 송(宋)은 주(周), 진(秦), 한(漢)의 전통을 이은 한족과 동이를 중화(中化)시키는 중화사상에 의하여 동이 고어의 문법을 역순하는 문법정리를 완성하여 동양에서 고어의 문법을 말살시킨 것이다.
 
나머지 동이(東夷)는 고려(高麗)와 요(遼), 고려와 금(金), 고려와 원(元)조선과 후금으로 나뉘어져 서로가 같은 뿌리인 고구려후예임을 자각 못하고 실권자에 의하여 분리시켜 유구한 동이민족은 600~700년간 언어를 달리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삼국사기가 기록되던 1145년에는 변경(卞京)이나 개경(開京)의 말인 한자(漢字)의 어순이 같았는데 1428년경에는 말이 다르다 하였으니 이는 11~14세기 사이에 중화사상에 의한 한자문법으로 변혁시켰기 때문이다. 사서(史書)에서 3세기 이전에는 한자도 한글과 같은 어순으로 문장을 만든 기록을 역으로 돌려놓은 만행을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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