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백성에 꼭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과 희망… 웬 검찰 타령?
제 의견도 못 밝히는 의원이 무슨 ‘국민 대변’ 거들먹거리나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4-28 11:04:02

‘Parlez-Moi D’amour(사랑한다고 말해 주오)’라는 샹송이 있다. 1930년 무렵에 만들어져 처음에 루시엔느 브와이에라는 여가수가 불렀고 나중에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줄리에트 그레코도 이 노래를 불렀다. 워낙 히트한 노래라서 그 밖에도 여러 가수가 불렀는데, 읊조리듯 나지막한 줄리에트 그레코의 목소리도 좋지만 이 노래는 역시 애잔하면서도 포근한 루시엔느 브와이에의 목소리로 듣는 게 가장 좋다.

이 노래는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에도 등장한다.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하는 한 남자가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로 가고, 거기서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을 드나들며 아드리아나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아드리아나와 춤을 추는 장면에서 아코디언 연주곡으로 부르는 ‘사랑한다고 말해 주오’가 나지막이 흐른다. 아드리아나라는 여자는 모딜리아니·마티스를 거쳐 피카소의 연인이 된, 당시 파리 예술가들의 뮤즈 가운데 하나였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을 비롯해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 헤밍웨이,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맨 레이,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같은 문화예술계의 거물급 인사 다수가 조연으로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학과 예술, 인문학을 빛낸 쟁쟁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나타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를 우리는 흔히 ‘골든 에이지’, 황금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에 수많은 예술가와 작가, 학자들이 우르르 나타나 얽히고설켜 사랑하고 헤어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명작과 새로운 학설, 이론을 봇물처럼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무렵 잘난 남자들 주변에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쥐락펴락하며 천국과 지옥을 맛보게 한 팜므파탈 급의 엄청난 여자들이 있었다. 니체와 릴케, 프로이트를 사로잡은 루 살로메도 그중 하나였다.

루 살로메는 일단 그녀를 만났다 하면 불후의 명작을 쓰거나 미치거나 자살하게 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실제로 릴케는 그녀를 만나 위대한 시인이 되었고, 니체는 사랑을 거절당한 상실감 속에서 명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다. 니체는 루 살로메와 헤어진 뒤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했는데 그 무렵 그를 보살피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어느 날 말했다. “오빠는 위대한 학자야. 훌륭한 작품도 많이 썼고. 우린 모두 오빠를 존경해.” 그러자 니체가 말했다. “그게 다 뭐란 말이냐,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

우리는 모두 제각각 여러 모습의 삶을 살아간다. 겉보기엔 훌륭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쓸쓸하고 적막한 삶도 있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알고 보면 당당해서 아름다운 인생도 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지향하는 삶이 있는가 하면 부귀영화를 좇는 삶도 있다. 그런데 2022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지금 혹시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의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용할 양식과 희망이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과 희망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의 의사를 대변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의 삶과 별 상관도 없는 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그야말로 ‘웬 검찰 타령?’이다. 그들 말고 어느 누가 검찰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한 적 있던가?

그런데 다수의 횡포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우리의 현 여당 의원들은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만장일치로 국민을 위해 검찰을 손봐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웃기는 얘기고 짜증나는 일이다. 더 우스운 것은 한 무소속 의원의 말에 의하면 그 당 소속 국회의원 중 50명 이상은 속으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의견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권한을 가진 나라에서 국민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보답 없는 사랑으로 영혼이 너덜난 것도 아닌데 국민은 어지럽다. 국민은 그런 국회의원이 없는 나라, 제대로 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들과는 다른 시공간에 살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국회의 다수당 의원 전원에게 시간여행을 권한다. 과거로 가든 미래로 가든 좋으니 그들은 좀 빠져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끼리 일용할 양식과 희망에 대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싶다. 지금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