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조각가 안성환, 그는 왜 사람을 포기하지 못할까

깨진 기와를 골조 삼아 다분히 즉흥적인 독특한 성형

정통 석상이나 돌하르방 같은 석상들에서 영감을 얻어

절제된 표현 속 치유·위로 주는 건강한 미의식 돋보여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5-13 09:27:20

 
▲이재언 미술평론가
 여담 같지만, 조각가들은 사람 보는 것이 관상가 못지않은 데가 있다. 전통적으로 조각은 사람을 모델링하는 수련을 오래 쌓아 작가로 등단하는 장르이다. 추상 혹은 미디어 작업을 하는 조각가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인체 모델링 수련을 거치며, 또한 사람의 형상을 오래 다루어 봐야 한다. 긴 세월 사람의 외관과 내면, 성격, 감정, 의사 등을 읽고 표현하는 일에 각별한 깊이와 에너지를 쏟아 온 조각가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관상가 수준의 감각을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의 표정이나 안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은 기본이다.
 
보통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초상 조각을 할 때도, 작가들이 경험적으로 가동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하여, 인물의 특징을 상상하며 재현성을 구현하게 된다.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다르기도 어렵다. 신뢰할 만한 실록과 같은 사료나 구전들에 기반한다면, 대체로 과거의 인물에 근접할 것이다. 조각이라는 장르가 고도의 수련과 날카로운 관찰력 및 모델링 표현력을 요구하는 것은 형태의 재현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의 내면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신화나 트라우마까지도 읽어 내는 것을 생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조각가 안성환의 작업을 마주하면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명언이 생각난다. “건축의 출발점도 도달점도 사람이다.” 평범하면서도 종종 망각하기 쉬운 명제이다. 안성환의 조각 역시 출발과 귀결점이 사람이다. 또한 영화 타임투게더에서도 인용된 “다들 엔딩을 기다릴 때, 나는 이제 시작이다”라는 게리의 말도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안성환의 조각을 이해하는 데 차용할 만하다. 조각가든 화가든 다들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때, 그는 지금이야말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휴머니스트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꿈꾸는 사람, 23×15×48, 에폭시, 2020 (2)위로- love, 77×26×17, 혼합재료, 2021 (남녀의 얼굴이 하나다) (3)위안, 50×19×10, 2022에폭시 (4)LOVE, 103×25× 52/혼합재료. [사진=필자 제공]
  
작가의 작업은 부부의 사랑, 가족의 우애 등을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물론 철조나 깨진 기왓장에 석고를 덧입혀 가면서 성형을 하는 양식 등, 1인 두상 같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헨리 무어의 플래그쉽이라 할 수 있는 ‘모자상’의 영향으로 조각에서 모자상이 유행을 탄 적도 있지만, 작가는 남과 여의 속 깊고 순수한 사랑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사랑에 빠질 땐 활화산 같다가도 식으면 차갑게 돌변하는 인스턴트 사랑이 아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은근하고 깊이가 있는 초월적인 사랑을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조각 속에서 표현되는 사랑은 부드러움과 따뜻함, 평화로움, 소박함이 가득한 것이라는 신념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 Consolation (1,2), mortar, 166×60×300cm, 2020
 
그러한 순수함과 초월적인 경지를 작가는 ‘무심(無心)’의 개념으로 풀고 있다. 작가 작업의 출발점은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즉 무작위적인 모델링이다. 작가는 특이하게도 기와를 깨서 그것이 우발적으로 드러내는 파편과의 대화와 교감을 통해 무의식으로부터 영감과 모티브를 끌어낸다. 어찌 보면 신탁에 귀를 기울이면서 경건한 제의에 임하는 사제와 같은 모습으로 비쳐질 정도로 사전 퍼포먼스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오브제가 가지는 정체성의 해체와 파괴로부터 비약하여 새로운 존재의 밑거름으로 산화된다. 어떤 존재의 희생을 딛고 새로운 존재가 탄생한다는 것은 구원 혹은 변증법적인 생명의 서사를 내포하고 있다.
 
▲ together(우리), 50×25×77, 철, 2019
  
이렇듯 ‘무심’은 제의에 가까운 퍼포먼스와 무의식의 흐름에 따른 성형 등의 과정에서 잘 드러나지만, 그 밖의 양식적인 측면에서도 두루 발견된다. 형태도 단조롭고 마티에르도 톤도 무덤덤해 보인다. 단순한 형태 외의 조형요소들은 감정이나 기교에 대해 거리와 절제의 기호로 작동한다. 물성 자체가 말하는 그대로를 존중하며 작가의 기교조차도 억제하는 가운데 고요함이 느껴진다는 함축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이는 다분히 아르카익, 즉 원시적 혹은 고대적인 고졸(古拙)의 미감을 근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직립의 정적인 구조나 무뚝뚝한 표정, 어눌한 서사 등의 특징과 관련해서 보면, 미륵석불이나 제주도 돌하르방,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과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고졸미가 역력하게 드러난다. 특히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 전통의 분청사기와 같은 ‘무기교의 기교’, 즉 꾸밈이 없는 듯하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움과 소박함을 위한 손의 움직임이 차분하고도 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 조각가 안성환.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 작품 자체에서 저절로 우러나도록 한다는 미적 태도는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인 분위기를 띤다. 설명이라는 사족 같은 것은 소음만을 유발할 뿐이다. 바로 그 정적인 단조로움과 고요함, 차분함 속에서 관객은 마음을 열고 작품의 컨텍스트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향해 현실을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하는 치유 혹은 격려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작업을 통해 작가가 먼저 작업 분량만큼의 치유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미적 태도는 작가의 작업 전체에 흐르는 철학을 엿보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조건 속에서 ‘멈춤’ 혹은 ‘쉼’이 어떤 결과 혹은 효과로 귀결되는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멈춤’이나 ‘쉼’이라는 개념은 정지나 정체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기와의 예에서 보듯 초월적인 데가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인용해 설명하는 바를 귀담아 들어 보자. “날카로움을 꺾고, 묶여있던 것을 풀며(挫其銳, 解其紛 좌기예, 해기분) / 빛을 고르게 하며, 지극히 작은 것과 하나가 되는(和其光, 同其塵 화기광, 동기진)” 쉼의 본질. 차분하고 쉽게 역설하고 있음이다. 5월에 어울리는 작가 아닌가.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후속기사원해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7월 개최되는 발리볼 챌린저컵을 통해 내년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출전권 획득에 도전하는 배구남자국가대표팀 감독 '임도헌'이 사는 동네의 명사들
기세도
위본그룹
유영균
대전도시공사
임도헌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기승 부리는 사이버 공격, 대비책은 보안뿐이죠”
보안·디지털포렌식·강의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

“톡톡 튀는 클래식 콘서트… 색다른 매력 전파하죠”
클래식 음악을 편안한 친구로 만드는 사람들

미세먼지 (2022-06-26 08:30 기준)

  • 서울
  •  
(양호 : 38)
  • 부산
  •  
(최고 : 15)
  • 대구
  •  
(좋음 : 21)
  • 인천
  •  
(좋음 : 26)
  • 광주
  •  
(좋음 : 29)
  • 대전
  •  
(보통 :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