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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대학에 자유를 허락하라

반도체 인재 부족, 교육부만 탓할 일 아니다

온갖 규제로 꼼짝 못하는 대학의 족쇄도 풀라

‘평등’에서 ‘자유’로 시대정신 바뀌어야 할 때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6-22 09:45:44

 
▲홍찬식 언론인·칼럼니스트
 세계 최초의 대학은 1088년 세워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이다. 그동안 대학이 발전해온 과정은 대학의 자유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초창기 대학이 자유를 확보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4세기 후반 교회의 대분열이었다. 교황이 이탈리아 로마에 한 명, 프랑스 아비뇽에 한 명 등장하면서 대학들도 의견이 갈라졌다. 볼로냐 대학은 로마의 교황, 파리 대학은 프랑스의 교황에게 각각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세상에 진리는 하나밖에 없다고 역설해 온 곳이 대학이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대학은 종교와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유럽에서 대학 구성원들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학문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프랑스에서 독일로, 독일에서 스코틀랜드로 이동했다. 대학의 자유라는 토양 위에서 꽃을 피운 것이 근대 과학이었다. 서구문명이 세계를 주도해온 힘은 과학에서 나왔고 그 근간에 대학의 자유가 있었다.
 
미국 대학의 뛰어난 경쟁력도 대학의 자유와 맞물려 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에서 활동하던 과학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옮겨갔다. 나치 등의 압제를 피해 자유롭게 연구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익숙한 이름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제임스 프랑크(192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엔리코 페르미(1938년 노벨물리학상), 존 폰 노이만 같은 인물들이다. 이들이 미국 대학에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 과학 최강국의 기반을 만들었다. 같은 시기 미국 뉴욕에 샤갈, 몬드리안, 에른스트 등의 예술가들이 전란을 피해 모여들면서 뉴욕이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올라선 것과 같은 배경이다.
 
최근 반도체 인력 부족 사태를 놓고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를 질책했다. “(교육부가) 목숨을 걸고 (인재 양성을)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 입에서 목숨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만큼 사정이 급박하기는 하다. 경쟁국들은 국가 총동원 체제로 나서는 데 비해 한국은 만성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 반도체 회사들은 해마다 1만명의 인력을 채용하지만 그 중 반도체 전공자는 1400명에 불과하다. 교육부가 인재 수요에 대처하지 못한 잘못은 크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한국 대학들은 자유를 누리는 주체가 아니라 철저한 규제의 대상이었다.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명문대 졸업장이 출세를 위한 자격증으로 작용하는 한국적 풍토 때문이었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치열한 입시 경쟁이 벌어지면서 과도한 사교육비 등 부작용이 빚어졌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어느새 세계 1위에 올랐다.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서는 시장에서 대학들은 무사안일에 젖어들었다. 이런 배경이 규제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대학 운영의 원칙에서 평등의 논리가 너무 오래 지속됐고 또 정도가 지나쳤던 점이다. 그 중요한 변곡점이 2008년 경제 위기였다. 그 이전까지 대학들은 눈치도 없이 해마다 5%, 10%씩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경제가 갑자기 얼어붙으면서 정치권에서 들고 나온 반값 등록금이슈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에도 등록금 규제가 교육의 부실로 이어지고 그 피해가 결국 국가와 수요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등록금 인하 문제가 시대적 과제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금은 지난 14년 동안 동결돼 왔다. 2009년 대비 202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4%였던 점을 감안하면 대학 형편이 요즘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흔히 자유평등이라는 대립적인 가치 중에서 평등쪽이 우세하게 되면 반드시 나타나는 게 하향평준화다. 오늘날 한국 대학의 현실이 그렇다.
 
대다수 대학에서 교수들의 연봉은 사실상 마이너스가 됐고 특히 반도체 같은 첨단 분야에는 교수 지망자가 사라졌다. 기업으로 가면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다. 실험실 수준은 그나마 낫다는 서울대 반도체연구실조차 1990년대 장비를, 그것도 겨우 기증받아 사용 중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졸업생을 배출한다고 해도 기업에서 처음부터 다시 훈련을 시킬 수밖에 없다. “대학은 사실상 죽은 목숨이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사업은 인접 분야 전공자도 많이 필요하지만 그쪽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학과의 정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의 경우 입학 총원이 117000명 이하로 묶여 있다. 수도권 규제의 차원이다. 벌써부터 지방 대학에서는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지방부터 배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정원을 분배하느냐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질 것이다. 또 한번 타이밍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 정원을 늘려주는 권한을 갖고 대학 위에 군림해온 교육부가 과연 기득권을 내려놓을지도 궁금하다.
 
일이 바로 안 풀리면 대학마다 주어진 입학 정원 내에서 반도체 학과의 정원을 늘리는 방안이 있기는 하다. 그러려면 같은 학교 내의 다른 학과에서 정원을 줄여야 한다. 한국 대학의 집단이기주의는 악명이 높다. 정원을 내놓게 되는 학과에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차례나 입에 올렸다. 자유를 말할 때 우선순위에 올라야 하는 게 대학의 자유다. 우리 헌법에도 학문의 자유(22)를 강조하면서 따로 대학의 자율성(31)을 명시해 이중의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보편적이고 당연한 원칙이 여러 사정으로 표류하면서 국가 곳곳에 알게 모르게 내상(內傷)을 입혀 왔다.
 
한국 대학은 원하는 학생을 뽑을 자유도, 학생 수를 선택할 힘도, 등록금 액수를 정할 권한도 없이 꽁꽁 손발이 묶인 상태다. 이런 대학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나마 젊은 세대 사이에 평등보다는 공정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정이 확보된 자유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의 시대정신을 평등에서 자유로 옮겨야 할 때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절실해진 인재 육성 문제에 출구가 열릴 것이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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