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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고대 한·중 간 첫 전쟁은 헌원과 치우의 싸움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7-10 10:50:52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권력투쟁에서 이기면 영웅이요 지면 역적이란 말이 있다소수의 정치집단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집권층에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해 역적이 된 경우도 있었겠으나 정적 제거에 역적이 악용된 경우도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또한 대부분의 역모는 국내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지 이웃 나라 이민족과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
 
이민족과의 다툼은 역모가 아니라 바로 전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이민족을 끌어들이거나 이민족에게 빌붙어 국가와 민족에게 큰 해를 입힌 경우도 있었으니, 이런 부류는 그냥 역적이라기보다는 민족반역자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하늘이 열린 이래로 660년 백제 멸망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이 중화에게 나라를 빼앗긴 적이 없었는데, 김춘추가 이민족을 끌어들이고 예식진과 부여융 등이 당나라에 빌붙더니만 백제가 망했고, 급기야는 당나라 요동정벌군의 선봉에서 조국 고구리를 쳐서 멸망시킨 연남생 같은 최고 악질 민족반역자까지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신라가 고구리와 백제를 항복시킨 후 신라까지 집어삼키려고 했던 당나라를 삼한 땅에서 몰아냄으로써 백제의 땅과 백성들을 지켜냈으며, 고구리 장수였던 대중상과 대조영이 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를 전멸시킴으로써 고구리 땅과 백성들과 종묘사직이 대진국(발해)으로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점이다.
 
▲ 우리 민족의 계보도, 백제는 신라에 흡수되었으나 고구리는 대진국으로 계승되었다 [한국교육방송 제공]
   
우리 치우천왕에게 항복한 황제 헌원
 
고구리·백제·신라 삼국의 정립 이전에 우리 민족국가로는 배달국과 조선과 부여 등이 존재했었다. 이들 나라들과 중화민족과의 전쟁은 있었는지 또 있었다면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우리 민족과 중화 민족은 같은 황하문화권 내에서 서로 대치하며 살았다. 중화 민족은 일명 하화(夏華)족이라고 하며 유웅(有熊)국을 세운 황제 헌원이 시조였으며, 당시 우리 민족은 시조 환웅천왕(桓雄天王)이 세운 배달(倍達)국을 당시 14대 자오지환웅인 치우천왕(蚩尤天王)이 다스리고 있었다.
   
훗날 공자는 중국의 사방을 동이(東夷)·서융(西戎)·남만(南蠻)·북적(北狄)으로 구분했다동쪽 사람들은 활을 잘 쏘고서쪽 사람들은 창칼을 잘 쓰고남쪽에는 벌레가 많고북쪽 사람들은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사방 종족들의 특성을 적은 것이었는데 이것이 훗날 후학들에 의해 모두 오랑캐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공자의 7대손 공빈(孔斌)이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吾先夫子欲居東夷(내 선조인 공자께서도 동이에 가서 살고 싶어 하셨다라고 적혀 있다만약 동이가 오랑캐였다면 공자가 거기 가서 살고 싶다고 했겠는가?
 
▲ 일본인 학자가 그린 중화 사방 사이도. [필자 제공]
 
황제 헌원은 우리 치우천왕과 10년간 73회나 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쟁은 황하 유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하화족과 배달족이 벌인 최초의 한중간 전쟁으로 중국 특유의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개념 없이 두 민족 간에 벌어진 국제전이었다. 이민족을 끌어들이거나 이민족에게 빌붙은 민족반역자 역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방의 군신(軍神)·전신(戰神)·병신(兵神)·무신(武神)이라 불리는 치우천왕은 9개 대장간(九冶)을 만들어 캐낸 철광석을 주조해 인류 최초로 칼···갑옷 등 철제무기와 투석기도 만들었으며 군대를 조직하고 진법과 전술을 개발하여 구사하니 감히 그에게 대적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사마천이 쓴 '사기'치우에게는 81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모두 짐승의 모습에 사람의 말을 하며 동두철액(銅頭鐵額)을 하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도극·태노를 만드니 그 위세가 천하에 떨쳐졌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치우천왕은 마지막 탁록 전투에서 황제 헌원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그를 신하로 삼았다. 또한 유망이 쇠약해지니 군대를 보내 정벌했다. 집안에서 인재 81명을 골라 각종 부대의 장으로 임명해 마치 질풍노도와도 같이 연전연승하니 적들이 겁에 질려 굴복하여 그 위세를 천하에 떨치었다.
  
치우천왕이 12명의 제후를 공격해 죽어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니, 서토의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 도망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치우천왕이 다시 군대를 진격시켜 탁록을 에워싸고 일거에 이를 멸망시키니, '관자'에서 천하의 임금이 전장에서 한번 화를 내자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그득했다라는 문구가 이를 두고 말함이다.
  
치우천왕이 전군에 출동명령을 내리고는 자신은 보·기병 3000명을 이끌고 사방에서 적을 참살하니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 못하게 하니 적군은 마침내 두려움에 혼란을 일으키고 도망가 숨으며 달아나니, 백 리 안에 병사와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 치우천왕에게 항복하는 황제헌원. [김산호 화백 그림]
 
갑옷·투구···활 등 철제무기로 무장한 치우천왕의 군대는 헌원과 10년 동안 73회를 싸워 모두 이겼다. 헌원도 군사를 일으켜 치우천왕처럼 병기와 갑옷과 전차를 만들어 싸움터마다 출전했다. 이에 치우천왕은 불같이 진노하며 노여움에 부들부들 떨더니 형제와 종당들로 하여금 싸움의 준비에 힘쓰도록 하면서 위세를 떨쳐 헌원이 감히 공격해올 뜻을 품지도 못하게 했다.
 
더불어 한바탕 큰 싸움이 일어나더니 아군 장수 치우비(蚩尤飛)가 불행하게도 공을 서두르려고 나서다가 진중에서 죽게 되었다. '사기'에서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는 기록은 이를 말함이다. 이에 대노한 치우천왕이 군사를 움직여 새로이 투척기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니 적진은 종내 저항할 방도조차 없었다. 결국 치우천왕에게 항복한 황제헌원은 황룡(黃龍) 지역으로 유배를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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