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황남대총의 무덤주인

눌지왕(남분)과 아로왕후(북분)의 쌍무덤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8-03 09:33:37

 
▲ 정재수 역사 작가
     
황남대총(98호분)은 신라 김씨왕조 마립간시대를 대표하는 경주 대릉원의 신라고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다. 지름 80m인 원형(圓形)의 홑무덤 두 개를 남북으로 붙여 만든 표형(瓢形)의 쌍무덤이다. 전체 남북길이는 120m, 높이는 22~23m이다.
 
황남대총 명칭은 ‘경주 황남동에 있는 큰 무덤’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3~1975년까지 3년간의 발굴 조사를 통해 쌍무덤의 실체를 밝혀냈다. 남분은 남성, 북분은 여성이다. 출토 유물은 모두 5만8441점으로 이 중 북분의 금관, 금제허리띠, 남분의 봉수형 유리병(유리잔 포함), 금목걸이 등 4점은 국보이다.
 
출토 유물 검토와 무덤주인 추정
 
남성무덤인 남분의 매장부는 바깥덧널(外槨)과 안덧널(內槨)의 이중 구조로 안덧널은 무덤주인의 시신을 안치한 으뜸덧널(主槨)과 부장품을 모아 둔 딸린덧널(副槨)로 구성돼 있다. 유물은 으뜸덧널에서 금동관, 금제허리띠, 금동장식 환두대도 등이, 딸린덧널(副槨)에서 은관, 은모, 금관관식, 금은반지, 금귀걸이, 유리병, 유리잔과 다양한 무기류, 마구류 등이 출토됐다. 특히 으뜸덧널에서 무덤주인으로 추정되는 60세 전후의 남성 인골 일부와 순장된 20세 전후의 여성의 인골도 확인됐다.
  
▲ 1973년 황남대총 발굴 장면.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여성무덤인 북분의 매장부는 남분과 마찬가지로 바깥덧널과 안덧널의 이중 구조이다. 다만 안덧널은 남분과 달리 으뜸덧널만 있고 딸린덧널은 따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부장품은 바깥덧널에 별도 공간을 마련해 모아 두었다.
 
유물은 으뜸덧널에서는 금관, 금제관드리개, 금구슬, 유리구슬목걸이, 금제허리띠, 금팔찌, 금반지 주로 다양한 장신구가 출토됐다. 북분의 출토품은 남분에 비해 장신구가 월등히 많은 반면 무기와 마구가 적은 점이 특징이다. 특히 부장품 공간에서 ‘부인대(夫人帶)’ 명문이 새겨진 은제허리띠 꾸미개가 나와 무덤주인이 여성임을 확인했다.
 
황남대총은 왕과 왕후의 무덤이다. 다만 남분의 주인공인 왕을 두고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자비왕 등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이는 무덤 덧널 형식의 변천, 출토 유물인 마구류의 등장 시기, 신라 토기의 편년 등에 나타난 고고학적 판단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축조연대를 5세기 중반 정도로 이해해 눌지왕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남분은 눌지왕의 무덤
 
신라사초는 황남대총 남분의 주인공을 눌지왕으로 적고 있다. <눌지천왕기>이다. ‘42년(서기 458년) 황구 무술 8월, 왕이 두을궁에서 붕했다. 춘추 72세이다. 왕은 사람을 사랑하고 선비를 알았으며 신(神)을 섬김에 심히 부지런했다. 동으로 야인을 정벌하고 남으로 여러 번국을 토벌해 신국(神國·신라)의 중흥을 이뤘다. 많은 내실을 두고 총애한 까닭에 아로(阿老)가 이를 질투해 별거하다 붕하니 왕은 평상시도 꿈속에서도 이를 후회했다. … 능문에 장사를 지내니 따라 죽은 자가 심히 많았다(四十二年 黃狗 戊戌 八月 王崩于豆乙宮春秋七十二 王愛人知士奉神甚勤 東征野人南伐諸藩中興神國 多內寵阿老妬之別居及其崩 而悔之常夢 … 葬王于陵門 從殉者甚衆).’
 
눌지왕은 72세(387~458)에 사망했다. 이때 ‘따라 죽은 자가 많았다(從殉者甚衆)’하니 황남대총 남분에서 발견된 여성 순사자의 인골을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지비성왕기>는 눌지왕릉의 위치를 명확히 지정했다. ‘원년(458년) 황구 무술 10월, 태왕(눌지왕)을 능문에 장사지내니 아로(阿老)태후릉이다(元年 黃狗 戊戌 十月 葬太王 于陵門 乃阿老太后陵也).’ 눌지왕릉은 아로왕후릉에 붙여 만들었다. 황남대총이 쌍무덤이 된 이유다.
 
북분은 아로왕후의 무덤
   
▲ 황남대총 출토 유물(왼쪽부터 유리병·금관·부인대 명문 꾸미개). [사진=필자 제공]
     
그렇다면 눌지왕의 왕후 아로는 언제 죽었을까? 아로왕후는 실성왕의 딸로 눌지왕이 태자시절 혼인한 여성이다. 눌지왕의 아들 자비왕을 낳고, 눌지왕이 쿠데타를 성공시켜 즉위하면서 상궁(上宮·제1왕후)에 봉해졌다. <눌지천왕기>이다. ‘39년(서기 455년) 목양 을미 2월, 상궁(上宮) 아로 부인(夫人)이 붕했다(三十九年 木羊 乙未 二月 上宮阿老夫人崩).’
 
아로왕후는 눌지왕보다 3년 앞서 455년 65세(391~455)로 사망했다. 특이한 것은 아로를 왕후가 아닌 부인으로 기록하고 있는 점이다. 신라사초의 일관된 필법에 맞지 않는 이례적인 표현이다. 아마도 아로왕후가 눌지왕의 여러 내실(후궁)들 때문에 장기간 별거한 점으로 미뤄 보아 당시 아로의 호칭이 왕후가 아닌 부인으로 격하된 듯하다. 황남대총 북분의 은제허리띠 꾸미개의 명문 ‘부인대(夫人帶)’는 이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황남대총 남분의 배치 문제
 
황남대총의 봉분과 주변 무덤들의 배치를 보면 다소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봉분의 경우 남분과 북분 연접이 유달리 밀착돼 있다. 이는 쌍무덤인 황남대총 우측의 90호분과 북쪽의 노서리고분 134호분과 비교하면 밀착 정도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주변 무덤 배치의 경우 황남대총 남분에 인접한 비교적 규모가 큰 97호분(지름 47.9m)과의 간격이 매우 협소하다.
 
이 두 가지는 황남대총 남분이 북분과 97호분 사이에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을 준다. 다시 말해 북분과 97호분이 먼저 조성되고 이후 남분이 그 사이에 들어선 모양새다. 아마도 처음 북분, 남분, 97호분의 무덤주인을 미리 결정하고 위치를 잡으면서 무덤 설계자들이 일부 착오를 일으킨 듯 보인다.
  
▲ 황남대총 남분, 북분, 97호분 무덤주인. [사진=필자 제공]
 
97호분은 누구의 무덤일까? <눌지천왕기>이다. ‘12년(428년) 황룡 무진 10월, 태태궁 보반(保反)이 붕했다. 춘추 69세이다(十二年 黃龍 戊辰 十月 太太宮保反崩春秋六十九).’ 428년 69세(360~428)로 사망한 눌지왕의 어머니 보반(保反)태후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황남대총과 주변의 딸린무덤(배총)은 처음부터 눌지왕의 왕가묘역으로 계획되고 준비된 공간이다. 그래서 눌지왕의 가계에 속한 인물 중 누가 죽으면 어디에 묻힐 것인지를 사전에 지정됐을 것이다. 이에 따라 432년 눌지왕의 어머니 보반태후가 사망하자 97호분이 만들어지고, 455년 눌지왕의 상궁 아로왕후가 사망하자 북분이 만들어지며, 마지막으로 458년 눌지왕이 사망하자 남분이 만들어진다. 물론 딸린무덤에는 눌지왕의 후궁들이 골품과 서열에 따라 무덤 크기를 달리하며 묻혔을 것이다.
 
황남대총은 눌지왕과 아로왕후의 쌍무덤이다.
 

 [스카이데일리 / skyedaily__ , skyedaily@skyedaily.com]
  • 좋아요
    25

  • 감동이에요
    8

  • 후속기사원해요
    7

  • 화나요
    0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기적’ ‘졸업’ 등 수많은 명곡을 부른 가수 '김동률'이 사는 동네의 명사들
김동률
뮤직팜엔터테인먼트
윤석제
쥬씨
조인원
서울문화사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탄생‧소멸의 과정 거칠 뿐… 암호화폐 사라지지 않아”
핀테크·분산금융·암호화폐 연구하는 디지털자...

“목수는 엄연한 전문직, 자긍심 없인 못 버텨요”
“사회선 여전히 ‘막일꾼’ 인식… 당당한 대접...

미세먼지 (2022-08-18 10:30 기준)

  • 서울
  •  
(양호 : 38)
  • 부산
  •  
(최고 : 15)
  • 대구
  •  
(좋음 : 21)
  • 인천
  •  
(좋음 : 26)
  • 광주
  •  
(좋음 : 29)
  • 대전
  •  
(보통 :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