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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기자조선을 전면 부정한 일제식민사학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17 18:10:35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기자는 조선왕조 이전에도 숭배 대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잡지 제사 편에서 당서(唐書)를 인용해 고구려의 풍속에는 음사(淫祠)가 많았으니 별()과 해()의 신령 및 기자(箕子), 가한(可汗등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라는 기록이 있고고려 숙종 때에는 평양에 기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고 한다.
  
기자조선이라는 개념은 명나라에서 제후를 자청한 이성계에게 국호 조선을 하사하면서부터 언급한 것이므로 그 이전에는 성인(聖人)이었던 기자에게 제사 올리는 차원이었을 것이다.
 
조선왕조가 신봉했던 기자조선이 허구라는 주장은 20세기 들어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했으며 훗날 한국 식민사학계의 대부가 된 이병도 박사는 기자조선을 부정하고 대신 한씨조선(韓氏朝鮮)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 일제 식민사학자들도 기자조선이 고고학적 발굴과 문헌상으로 정면 배치된다는 이유로 존재를 부정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의도는 삼국 이전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여하튼 기자조선은 후대에서 만든 허구이며 설사 실존했더라도 중국인이 세운 나라로 조선과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이마니시 류는 사기 집해에서 기자의 무덤이 량국 몽현(梁國蒙懸·현재 하남성 상구현)에 있다고 했으므로 평양의 유적은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기자의 활동 지역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기후명(㠱侯銘) 청동기 또한 한반도에서 출토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하남성 상구시에 있는 기자묘. [사진=필자 제공]
 
그들은 정황적으로도 기자조선을 부정했다. ·주 교체기의 중국 세력은 황하 유역에 불과했기에 기자가 그곳에서부터 한반도 조선까지 오려면 먼 거리라 다른 민족의 땅을 지나야 했을 것이고, 와서는 토착 세력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말도 잘 안 통하는 망명자에 불과했던 기자가 조선에서 어찌 왕이 될 수 있었겠는가.
 
여하튼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기자조선을 부정하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주 때 중국 세력은 황하 유역에 불과했다는 설명은 옳으나 조선이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에 국한되었다는 설정은 잘못된 것으로 조선의 중심부도 황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 수는 하남성 학벽시와 기현을 흐르는 강.  
 
맹자의 공손축장구(公孫丑章句)··주의 전성기에도 땅이 천 리를 넘는 자가 있지 않았다(夏后殷周之盛 地未有過千里者也)”라는 문구가 있어 당시 중국 땅의 크기는 천 리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 리 이외의 나머지 땅은 구이(九夷) 즉 조선의 땅이었던 것이다.
 
단군세기 8세 우서한 단군조에 신해 4(BC 1990) 단제께서 미복 차림으로 몰래 국경을 넘어가 하나라의 정세를 살피고 돌아와 관제를 크게 고쳤다는 기록과 37세 마물 단군조에 “56년 경오(BC 591) 단제께서 남쪽을 순시하다가 기수(淇水)에 이르러 붕어하시니 태자 다물이 즉위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8세 단군이 미행했던 하나라의 도읍은 산서성 남단에 있는 안읍(安邑)이었고 37세 단군이 붕어한 기수는 북부 하남성의 기현을 지나는 물길이다. 즉 조선의 중심은 산서성이고 동쪽으로는 한반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흉노를 통해 터키까지 아시아대륙을 지배했던 대제국이었다(기수는 하남성 학벽시와 기현을 흐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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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에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 기자조선의 존재설과 부정설이 다 같이 제기되었다. 존재설에는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기록이 항상 중요한 키워드로 대두되었고 기자의 후손인 태원 선우 씨와 청주 한씨 족보에 각 왕의 명칭과 재위기간까지 있어 존재설을 전면 부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학자들은 주 무왕이 기자를 봉했다는 조선을 나라 조선으로 해석했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천 리 땅만을 지배했던 주 무왕이 아시아를 지배한 대제국 조선의 왕에 기자를 봉할 수도 없거니와 만일 그랬다면 그 일은 송미자세가가 아니라 주 본기에 실려야 될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조선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조선은 단군이 다스리던 나라가 아니라, 바로 한서지리지에서 유주의 낙랑군에 속하는 조선현이었던 것이다. 응소가 조선현에 붙인 주석 무왕봉기자어조선(武王封箕子於朝鮮)에 의하면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현령에 봉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樂浪郡(낙랑군)武帝元封三年開莽曰樂鮮屬幽州(유주)應劭曰:「故朝鮮國也。」 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有雲鄣縣二十五朝鮮(조선)應劭曰武王封箕子於朝鮮’ 浿水(패수)水西至增地入海莽曰樂鮮亭含資帶水西至帶方入海黏蟬(점제)遂成(수성)增地莽曰增土帶方(대방)駟望海冥莽曰海桓列口長岑屯有(둔유)昭明南部都尉治鏤方提奚渾彌吞列分黎山列水所出西至黏蟬入海行八百二十里東暆不而東部都尉治蠶台華麗邪頭昧前莫夫租
  
 
▲ 중화의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이족들. 
 
또한 기자가 받은 작위는 자작(子爵)이었고, 자작의 봉지는 1개 현 정도의 크기인 50리가 전부인데 이걸 나라 조선으로 해석한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현토군에 속한 고구려(高句驪)현을 나라 고구려로 인식하게 해 고구려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이치다.
 
맹자의 만장장구 하(萬章章句下)천자의 땅은 사방 천 리이고 ()과 후()는 모두 사방 100리이며 ()70리이고 ()와 남()50리이니 무릇 네 등급인데 50리가 못 되는 나라는 천자에게 직접 통하지 못하여 제후에게 부속시키니 이를 부용(附庸)국이라 한다는 문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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