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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천마총 무덤주인을 찾다
복호와 왜 왕녀 보미 사이에서 태어난 장이(章伊)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8-17 18:16:23
 
▲ 정재수 역사 작가
 천마총(155호분)은 말다래(障泥)의 천마도(天馬圖)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경주 대릉원 황남대총(98호분) 좌측에 위치한 신라 김씨왕조를 대표하는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의 중형급 홑무덤이다. 원래 봉분은 지름 47m, 높이 12.7m이나, 1973년 발굴 후 기존 보다 약간 크게 복원했다. 현재 봉분은 동서지름 57.1m, 남북지름 52.6m이며, 높이는 12.2m이다.
 
출토 유물은 장신구류 8767개, 무기류 1234개, 마구류 504개, 용기류 226개, 기타 796개 등 모두 1만1526개이다. 천마총은 가히 신라 유물의 보물창고이다. 이 중 천마도 장니(障泥)를 비롯하여 금관(金冠), 금제관모(冠帽), 금제허리띠(銙帶) 등 4개는 국보로 지정됐다.
 
▲ 1973년 천마총 발굴 장면.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천마도 장니와 천마총 금관
 
천마도 장니는 시신을 안치한 목관이 아닌 부장품 보관장소에서 출토됐다. 천마도는 두 종류가 있다. 1973년 발굴 당시 공개한 자작나무껍질(白樺樹皮) 바탕에 그린 ‘백화수피 채화(彩畵)형 천마도’와 2014년 추가로 공개한 대나무 살을 엮어 만든 바탕에 금동으로 투조 장식한 ‘금동 투조(透彫)형 천마도’이다. 채화형 천마도는 2점이며, 투조형 천마도는 1점이다. 이 중 국보로 지정된 천마도는 채화형 천마도 중 하나이다. 천마도는 말 그대로 무덤주인의 상징물이다.
 
천마총 금관은 지금까지 발견된 5개의 신라금관 중 가장 늦은 시기에 제작돼 신라 금관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금관은 나뭇가지 모양의 ‘出’자형 입식을 3단에서 4단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으며, 금관에 달린 각종 곡옥(曲玉)과 달개(瓔珞) 등의 장식이 유달리 많은 점이 특징이다. 한 마디로 천마총 금관은 화려함의 극치이다.
 
천마총 금관의 제작 시기를 고려하여 천마총을 마립간시대 후기 무덤으로 이해하고 조성 시기는 대략 서기 5세기 후반~6세기 초반으로 추정한다. 이에 근거하여 천마총 무덤주인을 5세기 후반의 소지왕(21대)이나 6세기 초반의 지증왕(22대)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천마총의 봉분은 대릉원에 소재한 왕릉급 무덤의 봉분(지름 80m급)과 비교하면 다소 왜소할(지름 47m) 정도로 크기가 작다. 결코 왕릉이 될 수 없는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다.
 
▲ (사진 위) 천마도 장니(障泥)(채화형/투조형), (사진 아래) 천마총 관모, 금관, 관식. [사진=필자 제공]
  
신라사초가 기록한 무덤주인
 
무덤주인의 단서가 신라사초 <눌지천왕기>에 명확히 나온다. ‘9년(서기 425년) 청우 을축 7월, 보미가 복호공의 아들 장이를 낳았다. 성명이 입궁하자 복호공은 좋은 짝이 없다며 신궁의 보미를 얻고자 했다. 상이 이를 허락하고 궁중에서 길례를 행했다. 보미가 꿈에 천마(天馬)가 흰 구름 속에서 내려와 그녀의 배에 교합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깨어났다. 이를 복호공에게 말하자 공이 “좋은 꿈이다”하고 이내 합환해 임신했는바 태어날 때에 보랏빛 안개가 산실에 가득하고 향기가 났다(九年 靑牛 乙丑 七月 宝美生卜好公子章伊 聖明入宮 卜好公無好偶 欲得新宮宝美 上許之 使之行吉于宮中 宝美夢見天馬自白雲中下來交于其腹 氣爽然而覺之言于卜好公 公曰好夢也 乃合而娠 生時紫霧滿室而香).’
 
무덤주인은 복호(보해)의 아들 장이(章伊)이다. 장이는 어머니 보미(宝美)공주가 서수(瑞獸·상서로운 동물) 천마와 교합하는 태몽으로 태어난다. 원래 보미공주는 왜(야마토) 인덕왕의 딸이다. 복호의 동생인 미사흔(미해)이 왜에 볼모가 가 있을 때에 혼인한 여성이다.
 
통상적으로 서수(瑞獸) 출현의 태몽은 왕의 신성성을 부여할 때 서상(瑞相·상서로운 조짐)으로 인식돼 만들어지며 기록화한다. 신라사초는 마립간시대 왕들도 서수 출현의 태몽을 적고 있다. 내물왕, 눌지왕, 지증왕의 서수는 황룡(黃龍)이며, 실성왕, 법흥왕의 서수는 백마(白馬)이다. 그런데 장이는 왕이 아님에도 천마와 교합하는 태몽을 당당히 기록하고 있다.
 
보미의 천마 교합 태몽은 당시 왕실과 지배층을 포함한 신라사회에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장이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자신이 왕 못지않은 특별한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했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평소 타고 다니던 말의 말다래(장니)에 천마도를 그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가감없이 표현했다. 그리고 죽어서 자신의 무덤에까지 이를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 복호 가계도. [사진=필자 제공]
       
장이는 서기 490년 66세(425~490)로 사망한다. <소지명왕기>이다. ‘12년(서기 490년) 금마 경오 12월, 국선 장이가 졸하였다. 나이 66세이다. 보해(복호)공의 서자이다. 욕심이 없고 깨끗했으며 세상에서 빼어난 풍체를 지녔고 진경의 통함이 깊었다. 왕이 이를 애석하게 여겨 각간의 예로 장사지냈다(十二年 金馬 庚午 十二月 國仙章伊卒 年六十六 乃寶海公庶子也 淡然有絶世之風 深通眞經 王惜之 以角干禮葬之).’
 
장이는 진경(眞經)에 통달한 당대 최고의 석학이다. 장이의 마지막 관직은 국선(國仙)이다. 국선은 화랑도의 모체인 신라 선도(仙徒)를 이끄는 최고의 수장이다. 신라사초에 장이의 살아생전 관직이 줄줄이 나온다. 자비왕 시기인 470년 진경잡판(眞經匝判), 475년 골문잡판(骨門匝判), 소지왕 시기인 483년 신관이찬(神官伊飡), 485년 대등이찬(大等伊飡) 등이다. 장이는 비록 복호의 서자이지만 신라 사회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한 왕실의 일원이자 주체이다. 그래서 소지왕은 장이를 각간의 예로 장사지내며 최대한 예우했다.
 
천마총 무덤 위치의 배려
 
장이는 어떤 사유로 천마총에 묻힐 수 있었을까? 이는 전적으로 장이의 혈통 관계에 따른 배려이다. 아버지 복호와 어머니 보미의 신라왕실내 위상을 반영한 위치 배정이다. 복호의 경우 적자인 습보(習寶)의 아들이 지증왕이 되며, 보미의 경우 외손녀 연제(延帝)가 법흥왕의 어머니가 된다. 특히 보미는 훗날 신라여왕의 혈통계보인 진골정통(眞骨正統)과 쌍벽을 이루는 대원신통(大元神統)의 조(祖)로 당당히 자리매김한다.
 
▲ 경주 대릉원 천마총. [사진=필자 제공]
  
천마총은 복호의 서자이자 왜 인덕왕의 외손자인 장이(章伊)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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