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은 품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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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18 08:42:21

“색은 건반이다.”

“영혼은 수많은 현을 가진 피아노, 화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영혼을 울리는 손이다.”

미술을 음악에 빗댄 이 말은 러시아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가 남긴 것이다. 이 말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몽환적인 색채와 함께 아름다운 선율이 느껴진다. 그가 인류의 4%에 해당한다는 공감각자, 음악을 들으며 색을 떠올리는 등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칸딘스키는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나 ‘점·선·면’ 같은 저서를 통해 이론적으로도 현대미술에 공헌을 했다. 하지만 법학자의 길을 접고 늦은 나이에 표현주의 계열의 화가로 출발한 그가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불리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1911년 어느 날, 칸딘스키가 외출한 사이 작업실을 정리하던 연인 가브리엘레가 그가 그리다 만 그림 ‘구성4’를 무심코 90도 돌려서 세워 놓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칸딘스키는 돌려 세워진 자신의 그림을 보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 감탄하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가브리엘레의 우연한 실수가 칸딘스키에게 추상회화의 비전을 제시해 준 것이다.

칸딘스키와 가브리엘레 뮌터는 1901년 무렵 스승과 제자로 만나 연인 사이가 되었다. 칸딘스키는 러시아에 아내를 두고 온 유부남이었지만 가브리엘레는 그가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자신과 결혼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뮌헨 근교의 아름다운 마을 무르나우에 집을 얻어 칸딘스키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 집은 뮌헨 아방가르드 화가들의 아지트가 되어 이후 칸딘스키와 가브리엘레를 중심으로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 유파인 ‘청기사파’가 만들어졌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러시아 국적의 칸딘스키는 독일을 떠나야 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기 때문에 가브리엘레는 전쟁이 끝나 칸딘스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젊고 아름다운 니나 안드레예프스카야를 만나 결혼해 버렸다. 홀로 남은 가브리엘레는 평생 무르나우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치 정부의 핍박 속에서 목숨을 걸고 칸딘스키의 작품을 숨겨 보관하다 세상을 떠날 무렵 자신의 작품들과 함께 뮌헨 시에 기부했다. 평생을 지속한 헌신적 사랑이었다.

남녀관계에서는 좋은 사람이 밀쳐지는 경우가 많다. 더 좋은 것, 더 나은 길을 찾아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성향의 칸딘스키에게는 가브리엘레의 헌신적 태도가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칸딘스키는 좋은 남자가 아니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했던가. 칸딘스키의 젊은 아내 니나는 칸딘스키를 뺨치는 나쁜 여자였다. 장군의 딸이라 했지만 거짓이었고 칸딘스키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젊은 남자들과 어울리며 칸딘스키의 그림들을 팔아 보석 치장과 수집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결국 보석을 노린 강도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칸딘스키가 남긴 삶의 풍경들은 화려했을지언정 아름답지는 않다. 그의 아내 니나의 삶은 추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타고나 칭송받는다 해도,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거머쥔다 해도 결국 남는 것은 한 개인이 그려 놓는 삶의 흔적이 전부다. 그 흔적이 오래도록 향기를 머금어 따뜻한 공감을 불러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처에만 가도 악취가 진동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언행 하나하나가 악취를 풍기며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는 인물이 있다. 소란스럽게 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내 온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늘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어 재기를 뽐내며 공격 또한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그의 공격 대상이 항상 아군이었다는 데 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그 주변을 집요하게 공격해 왔다. '윤핵관'이라는 그가 만든 신조어는 윤석열정부를 옭죄는 단단한 프레임으로 정착했다. 또한 지난 대선 당시 승승장구하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갑자기 내리막길을 걷게 된 시점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건 이준석 전 대표였다. 최근 여론조사의 정당지지율에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에게 역전당하는 시점도 이 전 대표로 당의 내홍이 시작된 시점과 일치한다.

그뿐인가. 4월 야당에서 검수완박 입법을 무리하게 추진할 당시를 환기해 보자.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진보 계열 시민단체들조차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국민의힘 이 전 대표가 그 현란한 말솜씨로 민주당의 폭주를 집요하게 공격한 일은 기억에 없다. 그러니 민주당에서 편을 들어주는 것도 ‘내부총질’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건 말재주도 능력도 아니다. 리더이기에 앞서 한 인간이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은 품성이다. 이쯤에서 이 전 대표는 자신의 품성을 돌아보고 그 언행이 주변에 악취를 풍기지는 않는지 세심히 살펴볼 일이다. 반드시 그러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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