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심한 민주당, 국민은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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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01 08:04:49

“이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안다.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미국 남부의 황량한 한 마을이다. 그곳에서 사료가게를 하며 홀로 사는 여자, 180cm가 넘는 키에 남자보다 힘이 세고 무뚝뚝한 미스 아밀리아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친척이라며 꼽추인 라이먼이 나타나고 아밀리아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볼품없고 믿을 수 없는 철딱서니였지만 아밀리아는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카슨 매컬러스는 그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주 이상하고 별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며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일깨울 수 있다….”

아밀리아는 변하기 시작한다. 모질고 괴팍한 성격은 온순해지고 라이먼을 위해 사료가게를 카페로 개조해 주기도 한다. 아밀리아의 사랑 덕분에 황량했던 마을에 밤늦도록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특별한 장소가 생긴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으쓱대는 라이먼을 지켜보는 아밀리아의 시선은 온화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쓸쓸하다.

그러나 곧 파국이 온다. 아밀리아와 잠시 결혼생활을 했던 마을의 건달 마빈이 감옥에서 풀려나 돌아온 것이다. 라이먼은 잘생긴 마빈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린다. 그리고 아밀리아에게 앙심을 품은 마빈의 편이 되어 카페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마을을 떠난다. “그 후 3년 동안 그녀는 매일 밤 앞쪽 계단에 나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꼽추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4년째 되던 해 아밀리아는 집을 판자로 둘러막고 닫힌 방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마을은 다시 황량해진다.

“다른 사람과 한 번이라도 같이 살아 보고 난 후에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지독한 고문이다….”

아밀리아의 사랑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예외가 있긴 해도 ‘사랑’이라는 사건은 대체로 행복한 결말을 담보하지 못한다. 파국의 원인은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는 감정의 불일치, 즉 혼자 더 많이 사랑하는데 그것을 참지 못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사건 진행의 시간 또는 속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어긋남이다. 세 번째는 둘 중 한 사람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인데 우리 주변에는 이 경우가 의외로 많다.

▲ 카슨 매컬러스. 23세 때 발표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1940)으로 “미국 문단의 기적”이라는 격찬을 받으며 ‘남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산문작가’로 불리게 된다. 이 작품과 함께 ‘슬픈 카페의 노래’가 그녀의 대표작이다.

관계에서 파국을 맞게 되면 사람들은 흔히 상대의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처받는다. 우리 마음의 상식이 이러한 상황을 변심 또는 배신이라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원치 않았던 변화를 마주하면 당황한다. 변화가 한꺼번에 몰아치듯 일어나지 않고 서서히 진행될수록 상처의 정도도 심해진다. 당황했던 기억,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던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마음에 하나하나 쌓이고 새겨지기 때문이다.

지금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국민의 대다수가 더불어민주당의 변화에 상처를 받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 마음속에 기득권의 폭주에 맞서 함께 버텨 주는 동지, 영원한 야당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그 이미지가 노무현정부 때까지는 크게 훼손되지 않고 그럭저럭 지켜졌었다. 보수 성향의 국민도 민주당에 대해서는 ‘야당’이라는 이미지 외에 특별히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추구하던 가치가 언젠가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변해서 지금은 예전에 정당이 추구하던 가치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마구 질주해 나아가고 있다. 그런 변화를 국민이 감지하기 시작한 건 2019년 8월, 조국 사태 때부터였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지지하던 많은 국민이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선 민주당 지지자들은 중도층이 되거나 아예 보수 쪽으로 방향을 틀어 국민의힘 지지자가 되었다. 그들이 보기에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는 덜 낯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민주당은 새 당 대표를 선출하고 전열을 정비했다. 당 대표와 함께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쏟아내는 말에선 투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팬덤을 등에 업고 그 투지로 밀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과연 국민이 원하는 방향인지, 그것이 과거 민주당이 추구해 온 가치와 결을 같이하는 것인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민주당을 지키고 키워 온 것은 양식을 지닌 다수의 전통 지지자들이었다. 그들이 지금 상처받은 마음으로 민주당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다. 변심한 민주당은 스스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 국민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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