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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자비왕의 혈통·계보 의문투성이
눌지왕의 아들 자비왕의 본래 이름은 소미
어머니는 아로가 아닌 효진일 가능성 존재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06 09:45:45
 
▲ 정재수 역사 작가
신라 자비왕은 마립간 계열의 두 번째 왕이다. 재위기간은 서기 458년부터 479년까지 22년간이다. 삼국사기가 설정한 자비왕의 계보이다. ‘눌지왕의 장자이다. 어머니 김씨는 실성왕의 딸이다(訥祗王長子 母金氏實聖之女也).’ 삼국유사’ <왕력>은 계보를 좀 더 보완한다. 어머니는 실성왕의 딸로 아로(阿老)부인이다. 또한 추가해 자비왕의 왕후도 소개한다. 미사흔의 딸 파호(巴胡)이다. 다만 삼국유사는 자비왕을 눌지왕의 ‘장자(長子)’가 아닌 그냥 ‘아들(子)’로 적고 있다.
 
자비왕의 본래 이름은 소미(小美)
 
자비(慈悲)는 불교에서 많이 쓰는 용어이다. 慈와 悲의 합성어이다. 자(慈)는 애념(愛念·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이고, 비(悲)는 민념(愍念·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의 고(苦)를 없애 주는 사랑이다. 그렇다면 자비(慈悲)는 이름(名號)일까? 아니면 시호(諡號)일까?
 
신라사초’의  <자비성왕기>에 실린 자비왕 사망기록이다. ‘22년(서기 479년) 토양 기미 2월3일, 왕이 상궁에서 붕(崩)했다. 춘추 66세다. 왕은 성품이 관대하고 인자하며 크게 자비로워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백성을 사랑하고 군사를 구휼하며 폭서와 혹한이 성행할 때는 매양 병고를 묻고 옷과 식량을 하사했다. 후궁과 종신 모두 시집가는 것을 허락하고 허물을 묻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사람들은 성왕(聖王)으로 우러러 받들었다. 마치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우는 자들이 상여에 모였고 이웃 나라 사람들도 모두 흰옷을 입고 발상했다(二十二年 土羊 己未 二月三日 王崩 于上宮 春秋六十六 王性寬仁大慈 雖一草一虫 未嘗擅殺 愛民恤軍 每以盛暑暴寒 問其疾苦賜以衣食 後宮與宗臣有私 則皆許嫁與不問其咎 時人以爲聖王仰之 若父母凶聞一播 號泣者載于京野 隣國之人亦皆縞素發祥).’
 
자비왕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은 정도로 성품이 크게 자비롭고(慈), 폭서와 혹한기에 옷과 식량을 보내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어(悲) 자비성왕(慈悲聖王)으로 우러러 받든다. 자비는 사후의 시호(諡號)일 가능성이 높다.
 
자비왕의 본래 이름은 <실성기>에 나온다. ‘목호 13년(서기 414년) 3월, 아로가 아들 소미를 낳았다. 이가 바로 자비성왕이다(木虎 十三年 三月 阿老生子小美 是爲慈悲聖王也).’ 자비왕의 이름은 소미(小美)다. 눌지왕이 태자시절인 414년 아로(阿老) 태자비를 통해 낳은 아들이다. 다만 눌지왕은 소미를 얻기 전에 아로가 아닌 다른 여성을 통해 여러 아들을 얻는다. ‘삼국유사’가 자비왕을 눌지왕의 ‘아들(子)’로 기록한 것은 이를 말함이고, ‘삼국사기’가 눌지왕의 ‘장자(長子)’로 기록한 것은 아로 태자비가 훗날 눌지왕의 정실왕후가 되기 때문이다.
 
‘고구려사략의 또 다른 어머니 계보
 
그런데 ‘고구려사략’은 자비왕의 어머니를 아로(阿老)가 아닌 효진(曉辰)으로 설명한다. <장수대제기>다. ‘장수26년(458년) 무술 8월, 눌지가 죽어 그 아들 자비가 섰다. 효진이 낳았다(長壽二十六年 戊戌 八月 訥祇殂 子慈悲立 曉辰之出也).’ 효진은 실성왕이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을 때 광개토왕의 여동생 천성(天星)공주와 혼인하여 낳은 딸이다(서기 392년생). 효진은 아로와 마찬가지로 실성왕의 딸이다. 아로는 미추왕 딸 내류(內留)의 소생이고, 효진은 고구려 소수림왕 딸 천성의 소생이다. 둘 다 성은 김씨다. 특히 효진은 실성왕이 즉위하면서 11세 나이에 눌지의 처가 된다. 실성왕이 눌지를 묶어두기 위한 정략적 혼인이다.
 
그렇다면 자비왕의 생모는 아로일까, 효진일까.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신라사초’<눌지천왕기>에 따르면 자비왕은 눌지왕 재위 14년인 430년 7월 17세 나이로 태자에 봉해졌다(十四年 金馬 庚午 七月 以長子慈悲爲太子). 통상 태자는 재위초기에 결정하는 것과 달리 자비왕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으로 늦게 결정됐다. 혹여 어머니 효진의 신분문제로 자비왕의 태자 책봉이 늦춰진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만약 효진이 자비왕의 생모라면 ‘신라사초’ ‘삼국유사’ 등이 아로로 적은 것은 훗날 계보 상으로 정리한 기록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삼국사기’는 자비왕의 어머니를 ‘실성왕의 딸’로만 적어 아로와 효진 어느 쪽도 손을 들어주지 않고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자비왕의 어머니 계보도. [사진=필자 제공]
     
자비왕의 정실왕후 파호 선정 과정
 
자비왕의 어머니 신분문제는 자비왕 즉위 이후 자비왕이 왕후 파호(巴胡)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불거진다. ‘고구려사략’<장수대제기>이다. ‘장수29년(461년) 신축 3월, 자비가 미해(미사흔)의 딸(파호)을 처로 삼았다. 효진이 얻은 공주(눌지왕 딸)를 며느리로 삼고자 했으나 지금에 이르러 눌지가 죄를 지었고 또한 신분이 낮아져 허락되지 않아 스스로 서로 혼인했다(長壽二十九年 辛丑 三月 慈悲以美海女爲妻 曉辰欲得公主以爲其婦 至是訥祇得罪 而不許下降故自相婚嫁).’
 
효진이 자신의 딸을 며느리로 삼고자 하나 자비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미사흔의 딸 파호(巴胡)를 왕후로 삼은 내용이다. 이를 기록한 ‘신라사초’<자비성왕기>이다. ‘4년(461년) 백우 신축 2월, 하궁 파호(巴胡)를 상궁으로, 난궁 사량(沙梁)을 하궁으로, 상궁 섭황(攝凰)을 두을궁으로 삼았다. 섭황의 신하(私臣) 내하(奈河)는 청연의 가노인데 섭황이 상통해 임신했다. 왕이 이를 알고 섭황을 폐해 두을궁으로 삼았다. 파호의 아들 비처(소지왕)를 태자로 삼았다(四年 白牛 辛丑 二月 以下宮巴胡爲上宮 暖宮沙梁爲下宮 以上宮攝凰爲豆乙宮 攝凰私臣奈河者 靑淵公家奴也 與攝相通而娠 上知之廢攝凰爲豆乙者也 以巴胡子毗處爲太子).’
 
당시 정실왕후인 상궁 섭황(복호 딸)이 바람을 피워 임신하자 자비왕은 섭황을 상궁에서 폐하고 두을궁으로 격하시켰다. 대신 하궁 파호를 상궁으로 올려 봉했다. 이를 앞의 <장수대제기> 기록과 연결해 보면, 왕후 교체 과정에서 효진은 자신의 딸을 파호가 상궁이 되면서 공석이 된 하궁에 봉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장수대제기>는 자비왕의 왕후를 효진의 며느리(婦)로 표현하고 있다. 자비왕이 효진이 낳은 아들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자비왕의 생모는 신라계 정통인 아로(阿老)가 아닌 고구려계 효진(曉辰)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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