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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에스컬레이터 타며 ‘건강’ 걱정하는 사회
낭만주의 시대엔 자연·절제·운동이 건강에 필수
음식 배달 주문 등 편한 것 추구하는 병리적 사회
배민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16 10:55:57
 
▲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건강과 관련하여 개인주의의 가장 큰 시사점은 건강에 대한 개인의 ‘자기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영국사를 예로 들어 보면 개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한 17·18세기에 의료시장은 딱히 정부의 법적 규제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발달해 나갔다. 그 속에서 사실상 누구나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었고 수많은 다양한 의료 행위들 중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이르면 영국에서 다양한 비정통 의학들이 체계를 갖추고 정통의학에 못지않게 고급화되어 가는데, 이들 비정통 의학들은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에 의해 시술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호했다.
 
물론 과학적 기반을 가진 의학이 발달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눈으로 보면 사실상 의학을 전공한 정통 의사나 다양한 신념에 기반한 치료를 행하던 비정통 의사 간의 실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중요한 원칙은 있었다. 자유롭게 개인이 자신이 선호하는 치료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동전의 뒷면처럼 다른 하나의 측면, 즉 그 치료를 선택한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건강에 대한 개인의 자기 책임이 강조되었던 당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발달했던 것은 생활 전반에 대한 자기 통제 개념이었다. 건강을 위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법칙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졌고,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도움이 되는 책들을 찾아 읽으며 건강을 위한 지식을 얻고자 했다.
 
이런 가운데 전 유럽에서 낭만주의 사조와 더불어 유행하기 시작한 흐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쐬며 산책을 하고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건강에 필수라는 인식의 확산이었다. 도시는 산업화 속에서 건강하지 못한 온갖 자극에 노출되어 있다는 인식과 함께 ‘보다 자연적인’ 환경을 찾아 나서는 흐름은 건강과 관련해 많은 휴양지가 인기를 끌게 만들었고, 보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운동이 강조되는 사회 현상을 초래했다.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19세기 말부터 전 유럽에 요양원이 설립되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 기본 개념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의 신선한 공기 속에 환자를 최대한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보다 자세한 개념들은 그 이전의 휴양지들과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 핵심에는 약에 의지하기보다 환자 개인이 자연 속에서 자신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항생제가 개발되고 의약품의 발달이 고도로 이루어지면서 서양에서도 그 이전까지 강조되었던 건강을 위한 자기 절제와 도시를 떠난 자연 속에서 부지런히 자신의 육체를 단련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오늘날 건강과 자연의 관계는 많이 멀어졌고, 건강을 위해 생활을 통제하고 몸을 단련하려는 노력 대신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는 이른바 기능성 건강식품과 용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의식과 함께 사회적으로 조기 진단과 조기 병원 상담이 강조되는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약화되어 역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건강과 신체에 대해 무기력하고 무능력해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도시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자.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곳곳에, 그리고 거의 모든 전철역에 들어선 에스컬레이터다. 나는 서울처럼 지하철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촘촘하게 설치된 도시를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계단에는 ‘건강에는 걷기가 좋습니다’라는 문구를 붙여 놓고 걷기를 독려하는 한편, 어떤 통로에서는 아예 계단을 없애고 에스컬레이터만 설치해 놓고서는 스피커로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어서는 안된다’고 지시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여 준다.
 
걷지 못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에 가만히 서서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가는 상품들의 모습처럼 무기력해 보이지 않는가. 노약자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는 것을 선호하는 것인지 나는 항상 궁금하다. 
 
물론 그들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령 무릎이 안 좋아서 에스컬레이터가 도움이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없던 시대에도 지구상에 에스컬레이터가 한국처럼 곳곳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 대다수의 나라들에서도 사람들은 다들 적응해서 수고롭게 살아간다.
 
음식점까지 걸어가는 것이 귀찮아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것이 사회적 유행이 된 사회, 에스컬레이터가 거의 모든 지하철역에 설치되어 있는 사회, 서울과 같은 고밀집 도시에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사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러한 도시 풍경이 사실은 매우 병리적인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것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도시 풍경은 분명히 병적인 모습이다. 사람들은 몸이 편한 것을 병적으로 추구하면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고 무신경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병리적 사회 풍경의 핵심에는 바로 건강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철학, 즉 건강에 대한 개인의 자기 책임이 실종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한국 사회의 도시 풍경을 보며 아쉬운 감정과 걱정을 갖게 되는 주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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