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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지만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역사 인식
논쟁적인 역사적 사건에 의도적으로 논쟁 억압
국민이 다양한 해석·정보 접할 자유 보장돼야
배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17 10:53:06
 
▲ 배민 숭의여고 역사 교사·치과의사
 
며칠 전 ‘5.18 북한 개입설’과 관련된 지만원 박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한 신문에선 그의 판결(징역 2년형)을 전하는 기사에 ‘조만간 감옥으로…’라며, 신이 나서 들떠 있는 듯한 어조의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나는 역사를 전공하긴 했지만 광주 5.18 사태에 대해서는 그 사건을 자세하게 깊이 연구한 바가 없으므로 ‘잘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은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현대사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열려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는 위에서 광주 5.18 사태라고 적었다.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홀로코스트처럼 반인륜적인 범죄 사건이 아니라) 사회 집단 혹은 정치 세력 간의 (광의의) 권력에 대한 투쟁이라는, 정치사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마치 프랑스의 시민혁명 사건과도 같은) 극도의 ‘정치적’ 사건이었다. 그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 진상 규명을 위해 (특히 당시 사건과 관계된 많은 이들의 사인과 관련하여) 아직 한참 더 학문적·전문가적 연구가 많이 필요한 분야다.
 
지만원 박사는 학문적·전문가적 능력을 가진 연구가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그가 과격한 표현을 쓰고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과, 그가 연구한 사건에 대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사회적으로 알리고자(promotion) 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나는 광주 5.18 사태라는 이 정치사적 사건에 대해 적어도 어느 한쪽의 편에서 편견을 갖고 바라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사태’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이 칼럼은 내 개인의 사견을 펼칠 수 있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 공간이므로 그렇다. 한쪽에서는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폭동이라고 부른다면 그 사건은 분명 논쟁적인 측면을 가진 사건이고, 객관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용어 선택도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폭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이다’라고 주장할 것인가? 물론 이러한 주장은 소수의 의견을 억압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아마도 성숙한 시민이라면 이런 유치한 사고를 가지고 광주 5.18 사태를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논리를 펴진 않을 것이다.
 
혹은 이번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서처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법적·역사적 평가가 확립’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영원히 민주화 운동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대법원 판결은 한국 사법부의 사고의 기저에 깔려 있는 몰역사성을 잘 보여줄 뿐이다. 논쟁적인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역사학적·사회적 논쟁을 억압하기 위해 사법부가 무리를 하고 있는, 혹은 정말 단순하게 법관 자신들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는 모습일 뿐이다.
 
판사들이 언제부터 현대 정치사학자의 권위까지 겸하게 되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설사 그렇다고 한들 위의 판결문처럼 ‘평가가 확립’되었다는 이유로 그 평가에 담긴 사회적 시각과 다른 시각의 의견을 말하면 ‘조만간 감옥으로’ 보내는, 마치 중세 종교재판의 사제들처럼 행세하는 모습은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참 안타깝게 한다. 한국의 사법부는 그 사고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는 안 되는 것인가.
 
이를 보면 한국 사회는 르네상스와 과학혁명 이전의 이탈리아, 종교개혁 이전의 독일 사회와 아직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광주 5.18 사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각과 지식은 다분히 감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재판부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지만원 박사가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빨갱이’  ‘공산주의자’라고 칭하여 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을 했는데, 나 같은 대한민국의 일반 시민이 5.18 사태와 같은 역사적 사건을 두고 그에 관한 다양한 해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권리와 자유가 훼손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왜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특정 인물이나 단체가 주장하는 역사적 해석만을 접해야 하고, 다른 시각의 역사적 해석을 접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인가.
 
이는 그 특정 인물이나 단체가 주장하는 바는 맞고 그와 다른 시각을 가진 자가 그 사건에 대해 주장하는 바는 틀리다, 혹은 그 특정 인물이나 단체가 주장하는 바는 선하고 그와 다른 시각을 가진 자가 그 사건에 대해 주장하는 바는 악하다라고 하는, 참·거짓 혹은 선악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마치 ‘1+1=2’ 혹은 십계명의 ‘사람을 죽이지 말라’ 정도의 단순 논리로 5.18 사태를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판결문의 문장들은 나의 이런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해 준다. 판결문에선 ‘지 씨의 행위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폄하하는 것으로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했다. 바로 위에서 내가 말한 참·거짓 그리고 선악의 논리를 바탕으로 ‘법적·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사건에 대해 그 평가와 다른 시각을 표현하는 것을 ‘의의와 가치를 폄하’하고 ‘비방’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 판결문을 만약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썼다면 앉혀 놓고 조곤조곤 ‘네가 지금 왜 그렇게 적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잘 생각해 보렴’ 하고 지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을 것이다.
 
단선적 사고·단순화된 세계관·선악의 흑백논리로 상대방의 의도를 ‘비방이다’ ‘훼손했다’ 등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모습은 학교의 어린 학생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혹은 자신과 친하지 않은 친구를 나쁜 친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나쁜’ 친구가 수업 시간에 토론을 하게 되어 반대되는 주장이라도 하게 되면 그 ‘나쁜’ 친구의 주장은 반대되는 주장이 아니라 나를 음해하고 비방하려는 ‘나쁜’ 주장으로 해석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은 나이가 어리고 미숙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제발 (판사들을 포함해) 한국인의 역사적 인식이 유아기를 속히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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