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래’는 바꿀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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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0.78명 출산율로 국가붕괴 심각한 지경에
대응에 손 놓고 다들 ‘운명’만 기다리는 중
스스로 '한국의 미래'를 바꿀 수는 없나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02 09:37:09

‘우리의 미래는 곧 한국의 미래다.’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이 새 책(‘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의 한국어판 서문에 쓴 내용이다. 섬뜩한 기분이 든다. 그는 세계적으로 70년 이상 계속되어온 태평성대가 끝나고, 혼돈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사회 전반의 붕괴를 부르는 저출산 고령화는 선진국들을 넘어 거대 중국까지 확산됐다.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우리(세계)의 미래’는 각자도생의 시대이자, 빈곤과 고난의 시대다.

그의 예측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지만 에너지 노동력 원자재 등 그가 세부적으로 거론한 분야들을 따져보면 ‘한국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다룰 때 이웃나라 일본은 의미 있는 분석 대상이다. 한국은 사회경제적으로 일본의 뒤를 따라가는 흐름을 보여 왔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일본과 시차를 두고 산업화와 고도성장이라는 같은 길을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초래한 배경 중에는 일본 기업의 느려터진 의사결정 구조가 자주 거론된다. 기업 내부에서 먼저 공감대를 이룬 뒤 일을 추진하는 특유의 기업문화 탓이다. 이에 비해 오너 겸 최고경영자가 진두지휘하는 한국의 대기업은 발이 빨랐다. 물론 ‘황제 경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살벌한 국제무대에서 한국 기업의 선전을 가능케 한 강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의사결정의 문제가 기업이 아닌 국가와 정부 차원으로 넘어가면 정반대 현상이 종종 벌어진다. 한 가지 생생한 예로 국립대 법인화 이슈가 있다.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 개혁의 일환이다. 무사안일의 국립대를 법인화시켜 자율성을 확대하는 대신 책임성을 강화하려고 했다. 뛰어난 인재 양성도 이런 풍토에서 나온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시기에 법인화 정책을 추진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한국은 1987년부터 국립대 법인화를 논의하기 시작해 2011년 서울대, 2013년 인천대를 법인화했을 뿐 그 이상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반면에 일본은 한국의 국립대 법인화 움직임에 자극받아 1990년대 중반 뒤늦게 나섰음에도 19년 전인 2004년에 87개 국립대 모두를 법인화했다.

이후 두 나라의 행로를 비교해 보자.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 QS가 발표한 2023년 세계 대학 순위에서 한국 국립대로 500위 이내에 들어있는 곳은 세계 29위의 서울대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다 500위 아래 있다는 얘기다. 카이스트 등 과학기술 쪽 특수법인 국립대들을 제외하고 순수한 국립대만 보면 그렇다.

반면 일본 대학들은 같은 조사에서 100위권 이내 5곳을 포함해 13개 국립대가 500위 안에 들었다. 한국 국립대들도 일찌감치 법인화를 마쳤더라면 지금 어떤 위상을 갖고 있을지 상상해 보지만 이제 와서 부질없는 일이다.

연금 개혁도 비슷한 경로를 갔다. 일본의 연금은 우리의 기초연금에 해당하는 것과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것 2가지가 있는데 연금 개혁을 국립대 법인화와 같은 시기인 2004년 완료했다. 현재로선 일본 젊은 세대는 나중에 자신들이 연금을 못 받을 것이라는 불신은 갖고 있지 않다. 한국의 연금 제도는 지난 25년간 손을 못 대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내부에서 반발과 저항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국립대 법인화만 해도 대학 구성원들은 물론 학계, 심지어 각 현의 지사까지 나서 거세게 반대했다. 모든 국민이 해당되는 연금 개혁은 더 민감한 문제였다. 한국에서 개혁이 부진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일본은 하는데 우리는 못하는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일본의 국민성을 분석한 연구들이 1970,80년대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 봇물 터지듯 나온 적이 있다. 일본 국민의 집단주의 성향이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일본의 재기를 가능하게 했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다. 집단주의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달리 말하면 ‘국가적 위기 때 결속하는 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에선 국민들이 큰 방향이 맞다고 보고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강한 반발에도 정책이 실현될 수 있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인재 육성을 위해 또 승부수를 던지고 나섰다. 수도권 규제 등 기존 대학 운영의 틀을 확 바꾸는 방안이다. 이 정책 역시 지지부진한 한국과는 달리 빠르게 작동할 게 분명하다.

저출산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연금 부실과 인재 부족, 사회복지서비스 지출 확대 등의 과제를 야기하면서 국가의 장래에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서구 선진국이 1960년대부터 겪고 있는 ‘부자나라 증상’이기도 하다. 0.78명이라는 지난해 출산율 수치가 보여주듯 한국의 사정은 더 나쁘다. 누구보다 빨리 행동에 나서야 할 쪽이 한국이다. 그럼에도 무슨 저주에 걸린 듯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한국의 미래’를 바꿀 수 없는 걸까.

홍찬식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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