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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녹지 공간 사라진 메마른 한국의 도시 풍경
장기적 정책 펼칠 정치인 뽑는 유권자 안목 필요
황폐화된 도시 풍경 속에서 사색과 성찰 어려워
배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10 09:25:53
 
▲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일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도시 풍경 중 하나는 마을 안 뿐 아니라 도로 주변에서도 쉽게 마주치는 높고 낮은 수많은 축대들이다. 도쿄의 황궁이나 각 지방의 성(castle)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축대가 일본 건축사의 한 특성이기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생활 속 곳곳에서 축대를 쉽게 볼 수 있다. 축대는 자연과 인공 사이의 명확한 경계선을 형성하는 동시에 자연의 공간을 최대한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일본 토목 문화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일본 시내 곳곳에서 흐르고 있는 많은 개천과 그 위에 놓인 다리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개천 또한 작은 대도시 근교나 작은 지방 도시들에서 가장 흔히 마주치게 되는 대표적인 일본의 특색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개천은 축대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대표적인 옛 기억 속 풍경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김영삼정부 때부터 시작된, 소위 ‘왜색’을 지우기 위한 90년대 이래의 시도들(아마도 그 가장 정점은 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해체와 철거일 것이다)은 사실상 그 때부터 도시의 주거 풍경과 전체적인 미관을 지금껏 지속적으로 숨막히는 느낌이 들게 해 온 주된 추동력이었다. 그 결과 축대나 개천과 같은 ‘왜색’ 짙은 풍경은 이제 옛 흔적만이 남겨지게 되었다. 특히 한국의 도시에서는 그와 함께 녹지도 지속적으로 사라졌다. 특히 서울의 경우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심을 땅 대신에 다세대 주택 건물, 주차장 그리고 끝없이 넓어지는 도로가 도시 면적을 점차 채워왔다.
 
사찰이나 신사와 같은 문화적인 녹지 공간이 풍부한 일본의 도시들과 달리, 한국의 도시에서는 정책적으로 녹지를 보존하려는 대대적인 시도가 없는 이상, 그리고 단기적 경제적 이해를 떠나 장기적 시각으로 그러한 정책적 시도를 지지해줄 유권자들의 마인드가 없는 이상, 도시 전체의 시멘트화·사막화는 예견된 일이었다.
 
사실상 중국의 도시들과 매우 흡사하게 변해버린 한국의 도시들은 90년대부터 줄기차게 이어져 온, 왜색을 지우자는 반일 감정을 앞세운 정치적 선동의 결과물인 셈이다. 특히 그러한 한국인 자신들의 의지와 욕망, 자부심,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최종 결과물인 서울의 3대 상징을 뽑자면 아마도 활주로같이 넓어진 도로, 녹지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다세대 주택 건물, 그리고 한국 집단주의 문화를 체화한 아파트 단지일 것이다. 도로와 건물 밖에 남지 않은 공간을 자동차들은 거칠게 질주하며, 사람들이 유일하게 안전하게 걷고 녹지를 즐길 주거 공간은 점점 아파트 단지 외에는 없어지고 있다.
 
이 찬란한 도시 풍경의 의미는 하나의 표현으로 간단히 정리된다. ‘자동차의 왕국’(the Republic of Cars)이다. 사람이 아닌 자동차들이 주인이 되어 보행자를 통제하는 공간이 되어 버린 곳이 한국의 도시이며,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울이다. 이 기괴한 도시에서는 도로와 주차장, 즉 자동차가 도시 공간의 철학과 생리학을 지배한다.
보행자의 시간은 불필요하게 설치된 (보행자 우선의 원칙이 사회적으로 결여된 결과이기도 한) 수많은 신호등과 악명 높은 긴 신호 대기 시간으로 인해 착취되고 있으며, 그 결과 이 도시의 보행자들은 걷기에 매력을 느끼기 보다 대부분 자동차에 매달려 산다. 그 결과 저 넓은 도로에도 불구하고 교통체증은 만성적이다.
 
반대로 나무와 풀들이 자라날 곳들은 지속적으로 제거되어 이제 몇 그루, 몇 평 남지 않은 나무와 녹지 공간들은 온갖 ‘힐링’을 앞세운 명패와 팻말들로 장식되어 있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며, 민주 시민의 ‘소통’을 강조하는 정치적 구호가 사회적 담론을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땅속 뿌리로 소통하는 나무들에게는 그들 사이에 흙을 통해 교감할 수 있는 군락지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집안에 두고 키우는 분재 마냥 도시 안에 나무들을 시멘트 감옥소 속에 분리시키고 소외시켜 왔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서울 사람들은 나무가 100 그루 정도 이상이 함께 심어진 (숲이라 할 것도 없는 사실상 아기숲) 공간을 구경하기 위해서 이제 몇 남지 않은 산에 올라가거나 혹은 한강에 떠 있는 밤섬을 보는 것이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렇듯, 왜색을 지우자는 선동 아래 지난 30여년간 이루어진 한국적 (사실상 중국의 신흥 도시들과 유사해진) 도시 풍경이 만들어 낸 저열화된 서울의 도시 문화 속에서, 시민들은 이제 청계천 같은 인공 개천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서양식 건축물이자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정치사적 의미를 함께 가졌던) 구 조선총독부 청사에 비하면 화장실 창고 수준의 예술사적, 유물사적 가치밖에 지니지 못하는 얼마 안 남은 오래된 서양식 건물들에 낭만적 향수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와 도로에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받는 도시인들, 그리고 아스팔트와 시멘트에 내몰려 뿌리 내릴 곳조차 없는 나무들은, 단순히 한국 사회의 메마른 정서를 넘어, 황폐화된 한국인의 자연관, 결핍된 한국인의 정신세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도시 풍경 속에선 사색과 성찰은 점차 사치가 되어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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