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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공영방송 수신료의 진정한 의미
공영방송 필수조건은 정치적·상업적 압력 배제된 공적 재원
대통령실 KBS 시청료 징수 방법 문제점 지적은 전향적 태도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14 10:08:40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이탈리아의 굴리에모 마르코니는 자신이 발명한 무선전신 기술을 여러 나라에 판매했다. 영국에서는 왕실에 판매했지만 왕이 없던 미국에서는 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팔았다. 영국 BBC가 왕실 재산의 위탁 운영권이라 할 수 있는 국왕의 칙허장(Royal Charter)’을 받아 운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민간 소유의 상업방송이 주도하게 된다.
 
그렇지만 영국 역시 처음부터 공영방송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1920년대 초 라디오 방송이 등장했을 때는 정부 허가를 받거나 공익적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아예 없었다. 오늘날 BBC의 전신인 ‘BRC(British Radio Company)’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군용 통신장비를 공급했던 기업들이 민간용 수신기를 팔기 위해 설립한 방송사다. 전쟁용 군수물자를 생산해 성장한 군산복합체의 산물이었다. , 방송은 군용 무선수신기를 상업적으로 팔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매개 상품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런 BRC를 공영방송 BBC로 전환시킨 사람이 존 리스 경이다. 1927년 초대 BBC 총국장이었던 그는 BBC시청자들에게 품격 있는 정보·교육·오락 프로그램을 제공해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민주주의 기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문화와 학습 증진을 목표로 하는 방송을 만들고자 했다. BBC가 가부장적이고 청교도적인 리스주의적 윤리(Reithian Ethic)’를 추구하는 공영방송이 된 이유다.
 
이 같은 공영방송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이 정치적·상업적 압력이 배제된 공적 재원이었다. 그 방안으로 공영방송 서비스 이용 대가인 조세 형태의 수신료 제도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BBC는 대부분의 재원을 수신료로 충당하고 있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공영방송도 수신료를 주된 재원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재정을 지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공영방송에게 공적 책무를 부여하고 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규제·감독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국에서는 수신료의 가치(value for money)’라는 명분으로 BBC 경영·편성을 평가하고, 매년 채널별 편성계획을 승인해 계약 형태로 수신료를 지급하는 책임입증(accountability)’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처럼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부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자 수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조건은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축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수신료가 공익적 목표에 부합되게 제대로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엄격한 사후 평가와 감독 시스템이다. 수신료가 방송사와 구성원을 위한 지원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수신료 제도는 ‘KBS 수신료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이 두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KBS가 징수 주체로서 사실상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KBS 수신료는 정권에 충성하는 방송의 대가로서 인식되어 왔다. 실제로 역대 모든 정파들이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장악하고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패권적 행태를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편파성을 강요하고 정권에 종속시키는 정치 병행성의 매개체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KBS가 시청료를 어떻게 또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실효적 감독 장치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국회 결산심의라는 제도가 있지만 수신료 사용에 대한 평가보다는 여·야 간 정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KBS 수신료는 ‘KBSKBS만을 위한 잔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와 무관한 마치 정부 후원금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도 독립되지 못하고 공익적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대통령실에서 KBS 시청료 징수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민 의견을 묻는 것은 진일보한 전향적 태도라 할 수 있다. 집권 직후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수신료 인상을 추진해왔던 잘못된 관행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참에 아예 공영방송을 폐지하자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수많은 상업방송들과 정제되지 않은 인터넷 매체가 난립하는 상황에서 공영방송 역할을 절대 간과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공영방송 체제를 구축하고, 합리적 재원 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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