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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대의 질문에 답을 해볼까? 조선은 그렇게 단군임금님과 공자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과 국왕이 한 마음이 되어 출발하였지. 건국 초기에는 힘든 일들도 많았어. 그러다가 태종임금 대에 이르러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단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왕자 시절 여러 번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태종께서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명나라가 건국 초기에 승상제도를 도입했는데 권력집중으로 문제가 생겨 의정부제로 바꾼 것을 말이다. 조선에 돌아온 왕자는 이것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가 왕위에 오르자 실행에 옮기지. 태종임금께서는 정도전이라는 똑똑한 신하가 구축한 ‘관료의 나라’를 뒤엎고 ‘왕의 나라’를 다시 세웠어. 아들인 세종대왕이 거리낌 없는 사랑의 정치를 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지. 왕의 나라는 곧 백성의 나라이니까!”
“그런데, 전하! 왕의 나라가 왜 백성의 나라입니까? 외람되오나 여쭙습니다.”
“엄 상궁, 자네는 내훈은 읽었지만 시경·서경 같은 유학의 경전은 읽지 못했을 것이다. 내인들에게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니까.”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런 서책이 있는 것은 보았습니다. 중전마마께서 늘 읽고 계셨지요. 하오나...”
엄 상궁이 부끄러워했다.
“서경이라는 책에는 ‘하늘’에 대해 설명하는 중요한 대목이 나온다. 이런 구절이야. ‘하늘은 백성의 눈으로 보고 백성의 귀로 듣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음...하늘의 마음은 백성의 마음과 하나이다, 이런 뜻이 아닐 런지요?”
엄 상궁이 큰 눈망울을 몇 번 굴리며 대답했다.
“그렇지, 그렇지!”
고종이 무릎을 쳤다.
“그래서 백성이 곧 하늘이다. 백성에게서 버림받은 왕은 하늘에게서 버림받는 법!”
“그리되면 왕조가 바뀌는 것이옵니까?”
“하나를 알려주면 술술 아는구나! 조선은 공자님의 가르침, 하늘의 마음에 따라 살아왔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것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결과가 아니더냐. 하지만 국왕의 마음 또한 흔들릴 수 있어서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의정부가 있어 왕권을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지. 정조 임금께서는 세조 임금 때 만들어진 규장각을 본격적으로 부활시키셨다. 도서관·문학·기록·비서기능에 경연기능이 추가되고, 여기에 재상급이 보임되어 국사를 의논하게 되었다. 정조께서는 규장각을 세워 외척과 환관을 척결하고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두어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하신 것이다.”
“전하, 정조 임금님 때에 조선은 평화롭고 백성들은 행복했겠사옵니다.”
귀 기울여 듣던 엄 상궁이 말했다.
“그렇지, 그랬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조께서 일찍 승하하시고 아드님이신 순조께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시면서 정책결정권이 두 세 세도가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지. 그대가 모셨던 철종 임금님 때까지 말이다. 짐은 세종 대왕과 정조 대왕의 지혜를 본받아 나라를 일으키고 백성을 품고 싶은데 미치지 못하는구나.”
고종이 탄식했다. 권문세족에 의해 나라가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천명을 받든 인군이라면 그것이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고종은 생각했다. 하지만 고종에게는 마음이 맞고 신임할 수 있어 가까이 둘 신하가 없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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