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 
이란 곳에 주...'))
서력 280년 서천왕이 신하들과 모여 나랏일을 논하고 있을 때 북방에서 보낸 전령이 당도했다.
“동북의 숙신(肅愼)이 국경을 넘어와 백성을 도륙하고 재물을 약탈해 갔습니다.”
왕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짐이 덕이 부족하여 백성이 화를 입는구나. 내 숙신을 쳐서 안타까운 원혼을 위로하고 만방에 위엄을 떨쳐 다시는 누구도 우리의 강토를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
왕이 국상 상루를 보며 물었다.
“누굴 보내면 좋겠소?”
“왕제 달가(達賈)가 적임입니다. 그는 용맹스럽고 지략이 뛰어나 능히 대군을 맡길 만합니다.”
왕은 달가에게 군사 1만을 주어 숙신을 치게 했다. 달가는 대사자 여민생(呂旻生)과 아우인 일우·소발 등과 함께 동북 변경으로 진군했다.
이 당시 동북방에는 숙신의 여러 부족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남부의 지륭(支隆) 세력이 가장 강대했다. 주변 부족들을 아울러 힘을 키운 지륭은 외부로 눈을 돌렸는데 그 목표가 된 곳이 바로 풍요로운 고구려 땅이었다.
고구려 변경에서 약탈을 일삼던 숙신 추장 지륭은 고구려군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겁을 먹었다. 그는 재빨리 국경을 넘어 숙신 땅으로 돌아갔다.
달가가 목단강 유역에 도착해 보니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민가는 모두 불탔고 여기저기에 타다 만 시신이 널려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변경을 지키던 군사의 시체가 걸려 있고 땅바닥에는 아기를 껴안고 죽어 있는 아낙과 옷이 갈가리 찢긴 채 혀를 빼문 처자의 시신이 버려져 있었다.
달가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함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내 반드시 백성의 원한을 갚아 주리라! 저놈들의 사지를 찢고 간을 내어 씹어 먹으리라!”
여민생이 다가와 달가를 진정시켰다.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싸움에서 분별력을 잃으면 승리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적을 물리칠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억울하게 죽은 백성의 원혼을 달래는 길입니다.”
달가는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자네 말이 맞네. 내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네. 그럼 앞으로 어찌해야 하겠는가?”
“척후를 보내 알아본 바로는 저들이 단로성(檀盧城)이란 곳에 주둔하고 있다 합니다. 그동안 충돌이 있을 때마다 철저하게 응징하지 않고 적당히 무마했기 때문에 우리가 국경을 넘어서까지 공격해 오지는 않을 거라 안심하고 있을 겁니다. 저들이 이렇게 방심하고 있을 때 친다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달가는 여민생의 계책에 따라 날랜 기병 3천을 이끌고 단로성으로 말을 달렸다. 여민생도 나머지 군사를 거느리고 뒤를 따랐다.
한편, 단로성에 있던 지륭은 고구려 백성에게서 빼앗은 곡식과 재물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군사들과 함께 질탕하게 마시고 있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지륭은 부하들을 둘러보며 호기 있게 외쳤다.
“이번 원정은 제법 소득이 있었으니 마음 놓고 마시고 놀아라!”
지륭은 잡아온 여인들을 끌고 와 시중을 들게 했다. 숙신 군사들은 술을 마음껏 퍼마시며 광란의 밤을 즐겼다.
밤새 말을 달린 달가의 군대는 동틀 무렵에 단로성에 이르렀다. 달가는 성이 가까워지자 말방울을 떼고 입에 매를 물렸다.
달가는 먼저 척후를 보내 성의 사정을 살피도록 했다. 한참 후에 돌아온 척후병은 성벽에 지키는 군사가 없다고 보고했다.
달가는 장수들을 모아 놓고 작전을 지시했다.
“적의 경계가 느슨하니 당장 성을 치도록 하자.”
왕제 달가는 일우와 소발에게 군사를 나누어 동문과 서문을 공격하게 한 후 자신은 남문으로 접근해 갔다.
성벽의 파수병들은 지난밤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여기저기서 졸고 있었다. 새벽의 어스름을 틈타 접근한 달가의 돌격대는 단숨에 성벽을 기어올랐다.
성벽에 오른 고구려 군사들은 파수병을 제압하고 성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고구려군이 함성을 지르며 안으로 들이닥쳤다. 독이 바짝 오른 고구려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적군을 베어 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피에 굶주린 아귀와 같았다.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숙신 군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목이 달아났다. 이들은 저승길 노잣돈을 챙길 새도 없이 주검으로 변했다.
크게 취해서 정신없이 자고 있던 숙신의 추장 지륭은 귀를 찌르는 함성에 놀라 눈을 떴다. 지척에서 창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적의 침입에 놀란 지륭은 갑옷을 갖춰 입을 새도 없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일우가 그를 발견하고 큰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고구려 장수 일우다. 순순히 목을 드리우고 내 칼을 받아라!”
지륭은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칼날을 피한 후 몸을 돌려 북문 쪽으로 달아났다. 가까스로 북쪽 성문에 다다르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양손에 시퍼런 도끼를 든 장수가 앞을 가로막았다. 텁석부리는 핏발이 선 눈으로 지륭을 잡아먹을 듯 쏘아봤다.
“네 이놈, 어딜 도망가려 하느냐! 나는 고구려 장수 소발이다! 냉큼 이리 와서 목을 바쳐라!”
혼비백산한 추장이 달아나려 했지만 오금이 저려 움직일 수 없었다. 이때 소발이 달려들어 단번에 그의 목을 베었다. 머리가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털벙거지처럼 툭 떨어졌다. 머리가 날아간 후에도 몸은 선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소발은 지륭의 머리를 창끝에 꽂아 높이 쳐들었다.
“적장의 목을 베었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단로성은 쑥대밭이 되었다. 성에 주둔하고 있던 숙신군 중 살아남은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고구려 백성을 도륙한 것에 대한 처절한 복수였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끝나자 소발이 추장의 머리를 달가에게 바쳤다. 광장에는 숙신 군사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달가는 지륭의 머리를 들고 외쳤다.
“이것이 우리 고구려 백성의 피를 본 침략자의 최후다! 이 머리는 백성의 무덤에 바칠 것이다.”
고구려군의 함성이 성안을 가득 메웠다.
단로성의 참극이 알려지자 지륭을 따랐던 부족들은 겁을 먹고 앞다퉈 항복했다. 달가는 혹시 있을지 모를 반란을 막기 위해 부족의 상류층에 속하는 6백여 호를 고구려 접경에 있는 오천(烏川)으로 옮겼다. 숙신의 땅이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부족민도 고구려 백성이 되었다. 달가는 이렇게 손쉽게 숙신을 평정했다.
서천왕은 단로성 전투에서 승리한 달가에게 안국군(安國君)의 칭호를 내리고 내외 병마사로 삼아 양맥과 숙신의 여러 부락을 통솔케 했다. 달가의 아우들인 일우와 소발은 형에게만 편중된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었다.
편전에서 물러 나오면서 일우는 동생 소발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적장을 죽인 건 우리의 공인데 어찌하여 형님에게만 큰 상을 내리신단 말이냐.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
“맞습니다. 폐하께 상소를 올려 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형제는 논공행상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서천왕은 두 아우를 괘씸하게 여겼다.
“무릇 명령에 따라 공을 세우기는 쉬우나 명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 달가의 지휘에 따라 쌓은 공을 오로지 자신의 역량으로 여기다니 참으로 불민하구나! 게다가 왕이 내린 결정에 불복하고 이의를 제기했으니 이는 불충이로다! 지금 당장 그 죄를 물어야 마땅하나 그간의 공을 생각해서 참는 것이니 가슴 깊이 뉘우치도록 하라.”
서천왕의 비답을 받은 일우와 소발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국상 상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왕에게 아뢰었다.
“지난날 신의 아비가 말하길 왕제 일우와 소발은 반골의 상이라 했습니다. 이번 일로 저들이 폐하께 원망을 품었으니 언제 역심을 드러낼지 모릅니다.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왕은 충고를 받아들여 두 왕제를 대사자로 임명해 조정에 두고 감시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천왕은 국상 상루, 안국공 달가와 더불어 나라 안팎을 안정시키고 태평성대를 이뤄 나갔다.
명림홀도는 근신들의 위세에 눌려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일우와 소발도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맡은바 직분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차츰 이들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졌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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