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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얼굴이 왜 그래요?”
방에 들어선 유제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피로로 붓기가 가실 사이 없이 일하는 남편이 앉은 채로 자다가 깨어나 미소 짓는 모습은 기괴했다.
“아무 일도 없소. 내 얼굴에 숯 검댕이라도 묻었소?”
베베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공사님, 차라리 숯 검댕이면 제가 떼어 드릴 텐데 피로가 다닥다닥 붙었는데요?”
손탁이 농담을 했다. 손탁의 부드러운 음성에도 염려가 묻어 있었다.
“서기관 슈테인이 당신께 이 전보를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중요한 문서라서 오늘 밤에라도 드리는 게 좋겠다고요.”
베베르는 정신을 가다듬고 봉투를 열었다. 베베르의 얼굴이 환해졌다.
“황제폐하의 대관식 날짜가 드디어 정해졌다오. 아, 초청장도 있구려. 조선의 국왕을 초청한다는!”
“언제예요? 저도 갈 수 있음 좋을 텐데요. 생전에 대관식을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지요.”
유제니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녀의 음성이 높아져 종달새처럼 팔랑거렸다. 평소에 침착한 유제니이지만 가끔은 소녀처럼 목소리가 올라갈 때가 있었다.
“어디 보자...여기 있군. 5월26일이야!”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군요. 모스크바의 공기가 느껴져요.”
손탁도 거들었다. 웅장한 크렘린 궁전에서 열리는 대관식이 눈에 선했다.
“음... 내일 일찍 전하께 초청장을 전해 드려야겠어요. 조선이 러시아에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에 정말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소?”
베베르는 피로가 싹 가셨다. 기뻐할 고종을 생각하니 그 또한 흐뭇했다.
다음날 아침 베베르에게서 초청장을 받은 고종은 곧바로 누구를 특명전권공사로 보낼지 생각했다. 물망에 오른 것은 민영환과 윤치호였다. 민영환은 정동구락부의 멤버로서 서양 공사관의 외교관들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온건한 인물이었다. 윤치호는 미국 유학생 출신에 영어에 능통한 인재로, 춘생문 사건 때 주도적 역할을 했던 윤웅렬 장군의 아들이다. 윤웅렬은 얼마 전 도피했던 상하이에서 돌아와 고종을 알현했다. 국왕을 위해 일을 도모했다가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충신이었다. 고종은 그의 손을 꼭 잡고 오랫동안 놓지 못했다. 윤 장군도 감격에 겨워 눈물만 흘렸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인재였다. 고민하던 고종은 민영환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했다. 윤치호는 죽은 김홍집을 비롯한 친일 관료들과 친분이 있어서 고종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미덥지는 않았다. 고종은 3월10일에 민영환을 러시아 특명전권공사로 임명했고 조선 정부는 13일에 이 사실을 러시아 공사관에 통보했다.
하지만 민영환은 왕비의 장례식을 앞두고 있음과 어머니의 병환을 이유로 사직 상소를 올렸다. 고종은 민영환의 임명과 특명 수행에 대한 강력한 신임의 의지를 보여 주었고 결국 민영환은 마음을 돌렸다. 윤치호는 특명전권공사 수행원이자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베베르는 본국의 허락을 받아 공사관 서기관인 슈테인이 사절단과 동행하게 했다. 참서관 김득련과 김도일, 비서 손희영이 합류하여 조선사절단이 꾸려졌다.
조선사절단은 29일에 베베르 저택에 모여 만찬을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 베베르는 서기관 슈테인에게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을 신신당부했고, 민영환과 윤치호에게는 러시아 왕가의 가풍과 곧 즉위할 니콜라이 2세 황제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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