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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충전할 겸 콘센트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다가 시청역 지하의 제2청년활력소라는 곳을 찾아냈다. 제2청년활력소는 대단한 시설은 아니었다. 지하광장 구석에 마련된 서너 평 남짓의 열린 공간이었다.
한쪽에는 싱크대가 마련돼 있었고 도서관 열람실처럼 콘센트가 딸린 책상이 있었다. 한쪽에는 몇 명 모여 회의하고 공부할 수 있는 스터디카페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3명의 청년과 3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다들 자리에 앉아 각자 무언가에 몰두해 있었다. 공통점을 찾는다면 휴대전화 충전기가 꽂혀 있다는 점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은 제법 오랜 시간 앉아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얼굴을 꼭 싸맨 마스크에서는 행여나 야외 활동 중에 감염병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그의 마음이 읽혔다.
노인의 차림새는 깔끔했다. 머리카락은 삐져나온 곳 없이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빗겨져 있었다. 이른 아침 머리를 감고 빗질했을 그가 어렴풋이 보였다. 헤어젤로 억지로 멋을 내려 하지 않아 그런지 단정함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리고 그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충전기와 연결해 놓은 휴대전화 화면은 켜져 있었지만 그는 휴대전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
노인은 미동도 없이 책상의 나뭇결을 응시하고 있었다. 몸이 좀 굳었다 싶을 때가 돼서야 잠시 허리를 폈지만 이내 구부러진 자세로 책상에 새겨진 나뭇결을 손가락으로 헤아리듯 짚었다.
30분이 더 지나서야 그는 지루해졌는지 책상 중앙 부분에 있는 화단의 관상용 돌을 이용해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일곱 층이 쌓였을 때쯤 탑이 무너졌다. 무너진 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노인은 엎드려 잠을 청했다. 나무 책상에 남은 나이테와 노인의 주름이 제법 닮아 있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고 찾은 탑골공원에도 비슷한 나이테를 가진 노인들이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장기 대결을 구경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하염없이 상대를 기다리는 노인들도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채 중절모를 쓰고 장기판 앞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연신 눈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내기 장기를 두다가 시비가 걸려 소주병이 날아가기도 했다. 오전 10시였다. 어린 자녀와 함께 나온 가족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런 풍경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갔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오전 11시40분부터 인근에서 시작되는 무료 급식이다. 멀끔히 차려입은 노인들도 무료 급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노인은 무료 급식을 받는 이유에 대해 ‘(자식들) 눈치 보여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70~80년대 산업 일꾼으로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굶을 걱정’은 안 하도록 해 주는 데 크게 이바지한 이들이다.
아무래도 노동을 제외하고는 일상을 채우는 방법을 몰라 방황하게 된 노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일밖에 몰랐던 이들을 위해 여가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 사회가 알려줘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노인들의 여가 활동과 문화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 줘야 해요. 우리 사회에서 돌봄의 초점이 노인보다는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보니까 오히려 새로운 사각지대가 생기는 셈이죠.”
정희남 인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이 노인 돌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 관장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도 이 같은 내용에 동의하리라 믿는다.
지금은 우리의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고 예외 없이 모두 노인이 된다. 미래의 우리를 위한 일이자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오랜 시간 썩어 들어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시발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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