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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라는 유럽의 옛 속담이 있다. 좋은 의도가 오히려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 말이다. 고대 로마 최고 권력자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고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는 말을 남겼다. 이 같은 ‘선의의 역설’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서민층을 위해 시작한 일부 정책이 되레 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 최고금리의 인하가 대표적인 ‘선의의 역설’ 중 하나다. 법정 최고금리란 고리대금을 막기 위해 법으로 정한 가장 높은 대출금리를 뜻한다. 해당 금리를 초과한 이자 계약을 모두 무효화하므로 저신용·저소득층 서민들이 고금리 착취를 당할 일도 줄어든다. 전 정부도 선한(?) 의도를 갖고 2016년 27.9%였던 법정 최고금리를 2018년 24%, 2021년 20%로 낮췄다.
결과는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저신용·저소득층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채 불법 시장으로 빠지고 있다. 서민금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마저 대출을 받지 못해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는 최대 7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의 최대 추정치인 5만6000명과 비교해 약 27% 늘어난 수준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서민들이 누리는 빚 부담 경감 효과보다 대부업 시장에서 배제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2018~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7.9%p 하락하면서 이자 부담은 약 62만 원 줄었지만 대부업 이용자는 약 135만3000명 감소했다. 이 중 64만~73만 명(1인당 1700만 원)이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 최고금리에 그치지 않는다. 전세 대출도 ‘선의의 역설’로 볼 수 있다. 전세는 월세에서 자가로 이어주는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지만 ‘집값 급등’이라는 결과를 초래해 자가를 마련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여기서 정부는 공공기관 보증을 앞세워 수억 원 한도의 전세 대출 상품을 쏟아냈다. 너도나도 전세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면서 전세 가격이 상승했고 이에 맞춰 매매 가격도 올랐다.
이는 전세 사기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전세 대출은 기본적으로 주택담보 대출보다 금리가 낮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대출받는 데 부담이 적다는 의미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도 가능하다. 결과는 의도와 반대로 움직였다. 전세대출금은 사기범들의 ‘무자본 갭투자’를 위한 투자금으로 전락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전세로 입주한 피해자들만 수억 원의 대출금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서민 정책이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저신용·저소득층 대상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서민층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문제는 시장원리를 토대로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신용과 금리의 관계, 전세가와 매매가의 관계, 전세 사기 우려 등을 꼼꼼히 살펴야 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선의’를 내포한 정책의 면면을 거듭 검토해 봐야 한다. 서민층에게 이득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손질하는 정치적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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