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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의 개인주의 시선] 배부른 삶과 배고픈 삶
배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15 06:32:30
 
▲ 배민 숭의여고 역사교사·치과의사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켜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삶을 산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 그가 배부른 돼지의 삶을 살 것인지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삶을 살 것인지 질문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가치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사회는 일단 배부른 사회다. 최근에는 전기세 인상으로 사람들의 걱정이 많다고 하지만, 여름에 에어컨 가동이 너무 많아져서 전기 부족을 걱정해야 하는 모습은 사실 이러한 배부른 사회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배부른 삶에 추가로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자동차가 너무 많아진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도시의 모든 공간과 기능이 자동차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을 정도이다. 그 덕분에 사람과 나무·동물은 이들 도시에서는 점점 그 존재가 위협받고 있다.
 
한 마디로 배부르고 편안한 삶. 많은 한국인들이 즐기고 있는 생활 모습이다. 이러한 만족감과 쾌적함을 추구하는 한국인들의 모습 속에 상실된 것은 무엇일까? 우리 자신이 한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자문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는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 나오는 돼지로 변해버린 아빠·엄마의 모습에 가까울지 아니면 소크라테스의 모습에 가까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자주 던지는 질문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그리고 동료를 바라보고 또 재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더 높은 혹은 더 안정적인 혹은 만족스러운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주 결핍된 부분은 ‘나는 왜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러한 가치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거나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가치 추구 이전에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개념 규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 즉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안정적인 경제적 조건과 높은 사회적 지위는 나를 단지 배부른 돼지에 머무르게 할 뿐이다.
 
아무리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고 다른 돼지들이 그 돼지에게 머리를 조아려도 그 돼지는 결국 배부른 돼지일 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는 다른 모든 질문에 우선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의미를 찾기 위해 혹은 지켜나가기 위해, 또는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의미를 다시 되찾기 위해 살아가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때 우리는 흔히 우리가 꿈꾸는 직업, 꿈꾸는 직장, 꿈꾸는 저택 혹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눈에 보이는 나를 둘러싼 외적 환경 속에서 나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완성시켜나갈 것인가이다.
 
결국 우리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할 대상은 그러한 모든 우리를 둘러싼 그리고 우리를 포장하는 눈에 보이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조건들 안에서 구현해야할 우리 자신의 정신세계다. 이 정신세계는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시각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나의 정신세계는 바로 나와 나의 외적 세상 간의 조화를 이루어 나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조건이다.
 
나와 세상과의 조화는 그래서 내가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개념 규정 그리고 어떠한 의미를 가장 중요하게 추구할 것인가라는 물음, 더 나아가 이 의미를 바탕으로 내가 형성하는 나 자신의 정신세계를 통해 이 세상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음으로써 완성되게 된다.
 
이러한 나와 이 세상 사이의 조화는 이 세상을 나의 독선적인 철학에 바탕한 개념 틀에 끼워 맞추려는 노력과 대비된다. 우리는 끝없이 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 조화하려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나의 시각에 이 세상을 끼워 맞추려는 치기어린 젊은 열정이나 독선적인 철학가나 혁명가의 굳은 의지는 오히려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고통과 불행을 초래할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가는 위험한 직업이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요와 압박으로 현실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 정치 체제의 직업 정치가들은 그저 배부르고 쾌적한 삶을 위한 사회적 욕망과 타협을 해나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음을 결국 깨닫게 된다. 불행한 직업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신세계를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오히려 어설픈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그러한 잘못을 저지른다. 아무런 정신세계를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가 하면 어설픈 정신세계를 가지고 타인의 삶을 규정하고 구속하려는 사람들... 이 세상에는 우리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장애물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장애물조차 결국 이 세상의 일부이다. 우리의 정신세계와 조화를 이루어내야 하는 이 세상의 흔하디 흔한 장애물 중 한 부분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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