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공영방송 수신료의 공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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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에 수신료 부과 꼼수로 사실상 강제 징수
정치권력과 밀착해 온 공영방송 KBS 정체성이 문제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20 06:35:00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는 1949년 영국 정부가 TV 수상기 보유자들을 대상으로 BBC 이용 대가를 ‘수신 허가료’ 형식으로 부여하는 목적세를 신설하면서 시작됐다. 이처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징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에는 BBC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ITV를 비롯해 여러 방송 매체가 등장했지만 BBC 수신료 제도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방송 수신이라는 물리적 근거 대신에 공영방송이라는 사회적 근거들이 필요하게 됐다. 공영방송은 미디어 시장에서 소외될 수 있는 공익적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이 논리는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공영방송 운영에 필요한 비용지불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른바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 개념이다. 마치 모든 세금이나 공과금에 연동되어 부과되는 교육세와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서비스 이용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나 지불해야 하는 의무이다. 이용자만 비용을 지불하는 ‘개인적 공리(功利)’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서비스에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비용 책임을 지는 ‘사회적 공리’ 개념이다.

이 같은 ‘사회적 공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이를 비용 사용 주체인 기구나 조직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가 70년 넘게 수신료 제도를 유지해 올 수 있는 배경에는 공영방송이 사회적 공리를 실현하는 기구로서 정당성과 신뢰를 담보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KBS 수신료 제도가 강제성이 담보된 조세가 아니라 자발적인 특별부담금 형태로 정착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KBS는 해방 직후 미군정방송을 거쳐 정부 산하 기관으로 일종의 국영방송으로 출발했다. 이후 오랜 권위주의 정권 아래 정치적 통제 도구로 이용되어왔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은 붙였지만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영방송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독점체제가 붕괴되고 경쟁이 가열되면서 수신료 징수에 따른 비용이 장애물이 되기 시작했다. 1994년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부과한 것은 사실상 강제 징수 효과가 목적이었다. 국민들의 신뢰가 약한 공영방송이 할 수 있는 일종의 꼼수였던 셈이다. 이번에 대통령실 국민청원 여론조사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를 원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게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 월 2500원 수신료를 KBS가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국민의 불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와 특정 정치권력이 유착해 불공정·편파 방송을 노골적으로 자행하면서 국민의 불신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또한 공영방송에게 부여된 공적 책무 이행은 나 몰라라 하고 있는 KBS에게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비판여론이 압도적이다.

더구나 그동안 수많은 지적에도 KBS는 수신료 분리 회계조차 시행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과도한 인건비 비중, 방만한 경영과 불투명성으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몇 차례 실시된 감사원 감사에서 매번 유사한 지적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 공리를 대행하는 공적 기구로서 부적격 판정을 받고 있다.

한편에서는 수신료 분리 징수가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를 더 약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 주장은 지금 KBS가 공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최소한 노력하고-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 공적 책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재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KBS에 대한 국민의 원천적 불신을 도외시한 것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를 언론 장악 의도나 징수 방식 측면에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정치권력과 밀착해 공영방송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KBS 정체성과 반공영적 행태들이다. 당연히 이 논쟁의 종착점은 KBS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진정한 공영방송으로서 거듭나는 것이어야 한다.

공영방송을 둘러싼 논쟁은 제5공화국 출범 이후 무려 40년 넘게 이어져 왔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개혁은 없었다. 도리어 정치적 의도로 추진된 개선들은 KBS를 더 깊은 정치적 수렁에 빠트려왔다. 특히 지난 정권은 제도적 허점들을 이용해 KBS를 사실상 파산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현 정부의 수신료 징수제도 개편이 진정한 공영방송 개혁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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